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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이슈

[이슈] 부끄러움 많고 숫기 없는 도의원 때문에 또 망한 인사청문회

글 | 박우성 (투명사회국)




  지난 6월 3일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전라북도 출자·출연 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지 1년 반, 두 번째 인사청문회다.


  작년에 열렸던 첫 번째 인사청문회에서의 실망감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이번에도 하나마나한 청문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에 제풀에 김이 빠져버린 탓도 있었으리라. 청문회 전날 오후가 되어서야 의회 사무국에 참관 신청을 했다. 상임위 회의실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했던 작년의 기억을 곱씹다가 “여쭤보겠다”는 담당자의 말에 일말의 기대가 생겼던 것도 잠시, 결국 돌아온 대답은 “외부인이 있으면 불편해서 질문도 잘 못하고 자연스러운 진행이 힘들다셔서” 회의장 입장을 허가할 수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답변이었지만, 그 이유가 기상천외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차라리 작년처럼 장소가 좁아서 힘들다는 답변을 반복했다면 더 참신한 핑계를 개발하지 않는 게으름을 나무라는 수준에서 끝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켜보는 사람이 많아서 불편하다고? TV의 경연 프로그램 같은 인기투표는 아니지만 적어도 주민들의 지지를 모아 대표로 선출된 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지 두 귀를 의심할 일 아닌가 말이다!


  청문회는 모름지기 의정활동의 꽃이라 불리며 의원들이 자신의 실력과 존재감을 과시하는 일종의 쇼케이스 역할을 한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정치인들이 청문회에서의 활약 덕분에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어 스타 의원의 자리에 오르곤 했다. 시민들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사이다 발언으로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기도 하고 주목 받지 못하던 문제를 이슈화시키는 정치적 역량을 과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도의원들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숫기가 없는 얌전한 사람들이니까 이해가 좀 필요하다. 정치인이라고 모두 남 앞에 나서서 말도 잘하고 떨지 않아야 한단 법이라도 있느냐는 얘기다.


  며칠 지나지 않아 청문회의 소관상임위 위원장인 정호윤 의원이 라디오 방송의 전화연결에서 한 발언 때문에 또 깜짝 놀랐다. 진행자가 청문위원들의 준비 부족으로 인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고 하자 “도민들 관심이 많으면 의원들도 더 긴장하고 준비할 텐데 도덕성 검증이 비공개라서 도민들과 언론의 관심이 크지 않고 그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의원들에게 영향을 준 측면이 있다”고 대꾸한 것이다. 단체장의 인사행위를 견제하고 후보자를 검증하는 주체인 의회 스스로가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니 참신하기는 하지만, 이번 청문회가 망한 이유로 시민들의 관심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하면 좀 억울할 노릇이다. 부끄러움은 많이 타면서도 관심을 가지고 돌봐주지 않으면 숙제도 않고 시험 준비도 안 한 채로 ‘비뚤어져서 질풍노도 하는’ 사춘기적 감성이 잘못이라고 한다면 시민들도 약간은 너그러운 심정으로 용서해 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언젠가는 도의회가 조금 더 철이 들어서 남 탓은 이제 그만두고 철저한 준비와 노력으로 청문회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기특한 모습을 보여주겠지. 부모님이 자식 걱정하는 애틋한 마음을 이곳에서 느끼게 되니 눈물이 글썽해진다.






 

전북도 인사청문회 도입이 늦어진 이유는?


  지자체 산하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전라북도가 상당히 일찍부터 논의를 시작한 축에 속한다. 전북도의회가 「전라북도 공기업사장 등의 임명에 관한 인사청문회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이 2003년의 일이었으니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조례에 의해 인사청문회를 실시하고 있는 제주도의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인사청문회 조례(2006.5.10.제정)」보다 무려 3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전라북도가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한 시점은 2019년 1월 16일이다. 세종을 제외한 광역단위 가운데 꼴찌에서 두 번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2003년 전북도의회가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당시 강현욱 도지사는 법령 위반이라며 의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일종의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하지만 의회는 재의결을 강행하고 조례를 공포했다. 전북도는 행정소송을 진행했고 결국 2004년 대법원에 의해 ‘지자체장의 임명 권한을 제한할 수 있는 법령의 근거가 없으므로 상위법령을 위반한 조례’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효력을 상실하게 됐다.


  그러나 단체장의 인사전횡으로 지방 공공기관이 단체장의 공약이행기구로 전락하거나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 등의 문제가 이어지면서 의회의 견제·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공감을 얻었고 2014년 즈음부터는 인사청문회를 도입하는 지역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북에서도 민선6기 송하진 지사 임기 시작과 함께 인사청문회 도입을 위한 논의가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북도의회는 2004년의 대법 판결에서 지적한 ‘지자체장 임명 권한의 침해’를 피하기 위해 사전 검증 대신 사후 검증을 골자로 하는 내용으로 조례를 다듬어 2014년 11월 25일 「전라북도 출연기관 등의 장에 관한 인사검증조례안」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이번에도 도지사가 재의요구와 행정소송을 통해 이를 막아섰다. 2017년까지 이어진 소송 끝에 대법원에서 또 한 번의 ‘전북도의회 인사청문회 조례의 법률 위반’ 판례를 만들어내는 동안 타 지역에서는 단체장과 의회의 타협을 통해 협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사청문회를 실시했다. (하단의 표-1 참조)


  전북도의회의 인사청문회가 행정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커녕 도지사의 인사에 정당성만 부여해주는 요식행위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대다수의 지자체가 인사청문회를 실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지사가 선심 쓰듯 내민 협약서를 감지덕지하며 받아 들었던 도의회 탓이다. 


  두 번이나 실시된 청문회에서 전라북도 건설국장 출신 공무원을 업무관련성이 높은 개발공사 사장에 임명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3차례에 걸쳐 공모를 진행하며 대표이사 자리를 5개월 넘게 공석 상태로 남겨둔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도 못했던 도의회의 모습이 이러한 무능력을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2019년 말에는 협약 체결 이전에 임명되었던 측근 인사의 신용보증재단 4번째 연임을 위해 인사청문회를 회피하려는 노골적인 움직임이 있었음에도 도의회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해 인사청문회가 무산되었다. 송하진 지사를 포함한 역대 단체장들의 반대가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이 늦어지도록 만든 가장 주된 이유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도의회의 역량 부족과 도지사 눈치 보기가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측근인사, 정실인사, 낙하산인사로 평가되는 도지사의 인사 관행을 개선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적임자를 가려내는 것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게 요구되는 지극히 당연하고 필수적인 사항이다. 현재의 조건에서나마 청문회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도의원들의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다. 청문회를 거듭해가며 문제점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법률 개정을 통해 인사청문회 근거를 마련하는 일 이상으로 도의회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과감한 인식 전환을 이루어 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표-1[표-1] 지방의회 인사청문회 도입시기와 근거규정



2020년 6월 3일, 도의회 기자실에서 인사청문회를 모니터하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