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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탐방]"설렘과 호기심으로 두근거림”- 백종만 대표

인터뷰·정리 | 김숙 (민생희망국)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없지 않았고, 후회한 일도 있었지만, 

크게 아쉽고 후회한 일은 많지는 않았다. 

그것이 내 인생이었고, 내가 선택했고 내가 걸어 온 길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 이 후의 삶에 대한 설렘과 호기심이 더욱 크다.

-정년퇴임 고별 강연 중에서-




정년의 의미

요즘 기분 어떠세요? “특별한 건 없고, 요즘 사람들이 ‘기분’이 어떠냐고 많이 물어보네요. 아마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보니 그런 질문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기분이 어떠냐면요.......”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는 그는 얼마 전 47년간 후학양성에 힘을 쏟고 정년퇴임을 한 우리단체 백종만 대표다. “담담해요. 섭섭한 감정보다는 시원한 감정이 많아요.” 

왜 그럴까요? “섭섭하다면 미련이 남아서 그럴 텐데 미련은 없어요. 할 만큼 했고, 65세는 정년으로 정해진 것이니 떠나야 할 때 떠나는 것에 미련을 가지면 안 되죠. 또 내가 떠나야 새로운 사람이 오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일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해요.”


누군가는, 오랫동안 하던 일을 공식적으로 그만두게 된다고 생각하면 무언가 잃어버린 듯 공허함과 허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의 담담한 모습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아낸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나와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사람들이 퇴임 인사를 건네면서 축하한다고 해야 할지 섭섭하다고 해야 할지 고민하더라고요.(웃음)” 그럴 때는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충분하게 사회에서 주어진 일을 하고 별 탈 없이 은퇴를 하는 거니까 축하받고 싶다고 말했죠.(웃음)” 


사회복지와 인연을 맺고 후학을 양성한지 47년, 후회 없이 살았다면 아마도 이 길이 천직이 아니었을까.

“교육자의 길을 걷고자 사회복지학과를 들어간 것은 아니고요, 사회학과와 사회복지학과를 놓고 고민했었는데 사회복지학과가 점수가 낮더라고요. 불안한 마음에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했죠.(웃음) 그때는 사회복지학과가 사회사업학과였는데 우리나라가 사회복지에 대한 개념이 없던 때라 많은 사람들이 사회사업학과를 자선사업으로 생각하고 있었죠.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하면 영아원이나 육아원 원장 할 거냐고 묻더라고요.” 



소셜업(social work)과의 결별 사회복지와의 재회

70년대 사회복지환경은 한국전쟁이후 수많은 전쟁고아들을 위한 고아원이 설립되면서 고아원등의 수용시설 운영자들을 자선사업가라고 불리 우며 우리나라 사회복지 현장을 대표하게 되었다. 여하튼 그는 대학 입학 후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내면에서 그 무언가의 꿈틀거림이 시작되었다. 


서울 참여연대 활동도 하셨는데 사회복지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대학 들어가자마자 유신반대운동이 대학가에서 활발히 일어났죠. 개인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억압된 시대였기 때문에 그런 사회적 상황 속에서 대학은 항상 최루탄과 휴업이 반복되는 시기였어요. 그런 엄중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사회의식이 강화 되었죠. 그런데 제가 배웠던 사회사업학(social work)은 시대의 고민과 문제에 대한 답을 보여주기에는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사회의 거시적 관점이 결여된 미시적인 관점에만 좁혀진 사회사업학 접근에 대한 적합성에 회의를 가졌고, 그런 목마름에 우리 동기들끼리 자율적 학습동아리를 만들어서 토론하고 고민했던 기억들이 있어요.”


그가 행정대학원에 진학했던 이유도 사회사업학이 가지는 미시적 한계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사회사업학과를 우연과 필연의 조화로 선택해서 그 속에서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열정과 정의감으로 우리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토론했던 과정 속에서 작은 뿌리가 생성되었다.


“서울참여연대 활동은 대학 선배에게 이끌려 94년부터 활동했죠. 지금도 회원이고 실행위원으로 들어가 있는데 잘 안 나가요.(웃음) 초창기에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으로 3년 넘게 했어요. 사회복지위원회 활동하면서 의약분업, 건강보험 통합,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 많은 일들이 있었죠. 국민생활최저선 확보운동을 기치로 내걸고 활동을 했죠.”



교육자로서의 길 시작

그가 첫 강의를 시작한 곳은 부산 경성대학교다. 1984년에 개교를 했고, 1986년에 부임했으니 대학의 운영체제가 정착이 되어 있지 않던 시기였다. 그는 그곳에서 사회복지학과를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뭐든지 새로 출발하고 만드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교수진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정열이 없으면 학과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죠.”


그리고 전북대학교에서의 또 다른 시작, “전북대학교에 89년 8월에 부임했는데 상황은 마찬가지였죠. 교수가 부족했던 시기라 윤찬영 교수와 강의 품앗이도 많이 했어요.”


그는 늘 학생들과 함께 있었다. 심지어 학년별 MT도 모두 따라다녔다고 하니. 

학생들이 눈치를 줬을 텐데요. 너무 눈치 없으셨던 거 아니에요? 하하

“글쎄요.(웃음) 그때는 학생들과 술자리도 많이 했어요. 그 속에서 학생들에 대한 교육, 사회복지에 대한 이해가 생겨났던 자리죠. 부족한 상황 속에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전인적인 교육을 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야말로 에너지 80% 이상을 쏟았던 거 같아요.”


회원탐방 몇 주 전, 그의 정년퇴임 고별 강연이 있었다. 강연 중 사제지간의 관계를 말하면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각자도생으로 변화되면서 사람들과 만드는 관계와 나눔이 점점 사라져 가고 그러한 부정적 현실이 대학 내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수로서 그러한 것들을 함께 고민하고 치유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그를 엄습했으리라. 나는 감히 그에게 말한다. 그날 그의 눈물에서 47년의 교육철학을 보았다고. 학생들은 행복했을 것이라고.


강의를 하면서 주안점을 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취업이 어렵다 보니 학생들이 사회문제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현실을 인식하는 게 사회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첫 걸음이에요. 요즘에는 사회복지 공무원 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많아요. 고용안정도 중요하지만 공무원의 역할이 사회 삶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분야니 너무 시험과목 위주로 공부하지 말라고 하죠. 그러면서도 미안하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사회 현실적 문제가 있는데 내가 너무 이상적인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한 시간 넘게 인터뷰를 이어가는데 그의 표정이 무겁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힘들어 보였다. 이실직고 하면, 40분을 ‘사회복지계의 변화’, ‘공공부조’, ‘구민법’ 등등 사회복지 관련 질문을 어쭙잖게 던지고 있었으니. 47년 징글징글(?)했을 텐데. 나또한 너무 어려운 그의 대답에 ‘아차’ 싶다, 아니나 다를까 녹취를 푸는데 거의 다큐다. 하여, 싹둑!



설렘과 호기심으로 두근거림


어딘가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다. 여행도 낯선 곳으로 가고 싶고, 하루하루의 반복적인 삶으로부터 떠나고 싶다. 일상의 게으름 습관으로부터 떠나고 싶다. 익숙한 걸로 떠나는 일이야 말로 재생이 아닌 새로운 탄생이다.   

-정년퇴임 고별 강연 중에서-


정년 후 좋은 계획 있으세요? “정년 후 무엇을 할 것인가, 정해진 건 없어요. 다만 여행계획을 많이 가지고는 있어요. 시베리아 횡단열차타고 밤하늘의 별을 보러 가고 싶은데 아내는 싫다고 하네요.(웃음) 그래서 따로 가자고 했죠. 하하하. 기본적으로 둘이 좋아하는 게 많은데 이렇게 가끔 안 맞는 것도 있더라고요.”



그와 아내는 육체를 쓰는 것을 좋아해서 산타기, 자전거 타기 등 수년 째 취미를 함께 하고 있다. “여행을 가게 되면 차로 다니는 것보다는 많이 걷는 편이에요. 우리나라 4대 적멸보궁은 다 가봤어요. 불심은 약한데 절심이 강하죠. 하하하. 십년 전부터 인생을 생각해보니 많이 안 남은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틈나는 대로 놀자는 생각을 하고 됐어요. 제가 자전거를 오랫동안 타고 있었는데 아내도 자전거를 십년 전부터 배우기 시작했고, 자전거로 여행을 많이 했어요. 아내는 자전거로 지구 한 바퀴는 돌았을 거예요. 자전거 여행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자전거 얘기에 그의 눈은 벌써 전주-완주 일대를 종주 중이다. 

“제가 좋아하는 코스가 전북대학교에서 출발해서 고산을 지나 대야 저수지로 올라가는 코스를 좋아해요. 동상저수지 옆 끼고 위봉사 가파른 길을 올라가서 소양으로 내려가 학교로 오면 75km정도 되는데 그 코스가 너무 좋더라고요.”


‘호기심이 사라지면 늙은 것’이라고 했던가. 60세를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20대 못지않은 열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그가, 시샘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 


생활을 위한 소심성을 초월하는 용기 

안이함에 집착을 초월하는 모험심 

청춘이란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20살의 청년보다 60살의 노인이 더 청춘일수 있네. 

우리는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어갑니다.

세월은 살결에 주름을 만들지만 열정을 상실할 때 영혼이 주름지고 

-사무엘 올만‘청춘’중에서


지금 이 순간 이후에 삶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호기심이 충만하다는 그는 다만 조금 낯선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감사’, ‘행복’, ‘설렘’, ‘호기심’,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자주 등장한 단어들이다. 그리고 정년퇴임 고별 강연회 때 그가 말했던 ‘민들레 홀씨’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 본다.

“47년간 생활을 하면서 능력에 비해 중간에 불리움을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우리 단체만 보더라도 그렇고요. 주변에서 어떤 형태로든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 활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이 지역의 ‘어른’이란 표현을 써 줬거든요, 그 ‘어른’ 이라는 의미가 나름대로 균형점을 가지고 활동했다는 좋은 의미로 해석을 하거든요. 지역에서 이런 얘기를 듣는 게 결코 나 혼자 이뤄낸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과의 ‘동행’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란 생각이 들어요. 민들레 꽃말이 감사의 마음과 행복의 마음을 갖고 있더라고요. 저와 함께 사회적 삶과 개인적 삶을 동행하고 동반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행복을 민들레 홀씨처럼 후 불어서 보내고 싶어요.”


민들레 홀씨 되어 낯선 곳에 있을 그를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훗날 내 모습을 덧대어 본다. 설렘과 호기심으로 두근거리게 되길, 나는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