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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글] 지역 중심의 마인드 (2019.03월)

글 | 이선 회원 (전북대학교)



프로젝트로 이루어지는 사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구성원들 모두가 사업의 의미와 가치를 위해 똘똘 뭉쳐서 뛰어다녔다고 하더라도 그 프로젝트가 다시 선정되지 않으면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자꾸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더 나은 것을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행정의 방식에 ‘이제까지 열심히 하던 것을 이후에도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이젠 알고 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나는 프로젝트형 사업에는 애정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애정을 쏟았다가 더 이상 진행하지 못 하게 되어서 안타까워하거나 속상해하면 지는 거라고, 아쉬운 건 내가 아니라 저들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그런데 바보같이 나는 요 며칠 간 또 속상해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에 국립무형유산원에서 두 달 간 진행했던 <책:쓰기 강좌>가 프로젝트에서 떨어져서 올해에는 강좌를 개설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형 사업에는 애정을 주지 말았어야 한다는 그 원칙을 또 잊어버렸던 것이다. 어떡하나. 올해는 참여하신 분들과 함께 책을 출판하기로 했는데……. 나는 이들에게 공수표를 날린 셈이었다.


그러나 나의 공수표에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근거가 있었다. 작년에 국립무형유산원의 책마루 도서관에서 이루어졌던 인문강좌는 국립무형유산원이 자체 사업 외에 시민 대중을 위해 기획한 최초의 사업이었고 전주 지역에서 열린 여러 인문강좌 중에서도 유독 칭찬이 자자했던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인문강좌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했던 선배를 만나 도대체 왜 사업이 선정되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서울에서 왔더라고. 기획사 같은 전문 업체가. 아무리 작년에 성과가 좋고 잘했다고 하더라도 서울에서 돈 벌려고 온 사람들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어.”


“그냥 업체 성과에서 밀린 거야. 작년에 어떻게 했는지는 상관없이.” 지역 사람들과 함께 인문학 강좌를 운영하는 것이 어떻게 경쟁의 논리로 밀어붙일 일인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여기 좀 오세요’라고 전단지를 보이면서 홍보하고 좋은 프로그램이라며 생경한 장소인 국립무형유산원의 책마루 도서관에까지 지역 주민들을 애써 끌어 모아 몇 달 동안 강좌를 진행하는 지역 사업을 잘 나가는 서울의 업체에게 줘야한단 말인가. “하여간에 서울 사람들은…….”하는 얄미운 생각이 드는 것이 과연 자격지심에 편협한 소지역주의의 발로일 뿐인가. 중앙에서 내려 온 기관들의 사람들이 전주는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곳이라고 이마에 써 붙여 놓은 양 기관 옆 원룸에서 지내다가 금요일 일이 끝나자마자 서울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지역 주민을 모아서 진행하는 인문강좌 같은 사업마저도 서울 업체에게 공정하게(?) 떼어주실 거면 우리는 도대체 우리가 사는 지역의 공간을 뚝 떼어 내줘 가면서 이들을 환대할 이유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서울 중심의 발전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산업화는 지역의 농민들이 생산한 쌀과 농산물을 헐값으로 후려쳐가며 중앙을 부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더 이상 지역에서 버틸 수 없던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이주한 뒤 하층 빈민으로 전락한 채 낮은 비용의 노동력을 제공한 덕에 이루어진 경제 성장이었다. 지금이야 주요한 국정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지역균형발전정책은 사실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철저하게 억압받고 착취당해 온 지역의 문제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시작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때늦은 감이 있다. 중앙이 잘 나가고 여유가 있어서 지역에 수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성장 없이 우리 사회의 질적 성장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나온 정책들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지역 문제의 인식과 관련한 기본적 마인드도 없이 이 지역으로 내려오게 되고 그래서 불행하게도 서울 뜨내기 신세로 살게 되신 사람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냥 다시 서울로 돌아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지역에 산다는 것은 조금 불편하고 조금 뒤떨어지고 조금(?) 촌스럽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곳에서 천천히 자신의 삶과 그 터전을 가꾸면서 함께 성장하려는 삶이다. 우리 사회가 경쟁과 돈, 성과를 추구하면서 정신없이 달려오던 산업사회를 거쳐서 다시 지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산업 발전 속에서 소외시켜 온 삶의 질을 회복하고 사회 발전의 패러다임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람 그 자체를 중요시하는 의미와 가치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회복과 전환을 이룰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지역 중심 마인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다시 한 번 부탁드린다. 제발 그 살기 편하고 수준 높고 세련된 서울로 ‘올라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