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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우리반 시집 제작기

이주희

 

국어 시간 감각적 표현을 배우고 시쓰기를 하게 된 아이들. 시를 생전 처음 써본다며 어렵다고 말하더니 금세 줄줄 쓴다. 시는 어른의 세계에 낯선 언어처럼 있기도 하나 어린이에게는 모국어다. 아이들의 말은 받아적기만 해도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걸 수도 없이 봐 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자기 생각과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건져 올리기만 하면 시가 되는 거라고 말하곤 한다.

우리반 아이들의 시를 읽어보니 김수영의 풀 같은 시도 있고 바다는 자신의 속은 안 보여주고 하늘만 보여준다는 걸 생각해 낸 시도 있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런 시가 아이들 책 속에만 적혀 있는 게 아깝다. 마음속에서 스스럼없이 흘러나오는 시가 아이들 삶에 내내 흐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얘들아, 우리 시쓰기 조금 더 해서 우리반 시집 하나 만들까?” 하니 교실이 떠내려가게 좋다고 한다. 학기 말 업무로 바쁜 때 시집을 만들려면 꼬박 이삼일 정도는 매달려야 하지만 아이들의 뜨거운 반응은 모든 걸 잊게 한다. 우리반이 다 함께 하는 일은 모두가 찬성해야 하는 룰이 있어 자신의 의견을 손을 들게 하였더니 반대가 3. 먼저 반대하는 아이들이그 까닭을 친구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쓰기가 어렵다, 재미가 없다 그리고 이미 추억이 많은데 굳이 하나 더 만들 필요가 있냐고 했다. 이번엔 반대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말을 부드럽고 상냥하게 할 수 있는 사람하고 물으니, 아이들이 우르르 손을 든다.

 

민혁아 시쓰기 어렵지? 맞아 어려워. 시 쓸 때 내가 도와줄게.”

나도 민혁이 시 쓰는 거 도와주고 싶어.”

그랬더니, 민혁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 도와줄 거지? 그럼 할게.” 아이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진우야 우리가 살면서 재미있는 것만 하면 보람이나 의미가 없을 수도 있어. 재미없는 것도 하고 나잖아 그럼 보람이 생겨서 더 좋아.”

나도 재미있는 것만 하고 싶긴 해. 그래도 재미없는 것도 참고할 줄 알아야 한대.”

아이들의 차분차분한 설명에도 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진우랑 가장 친한 태후가 말을 이어갔다.

, 너 생각해봐. 공부하는 게 더 재미없지? 시쓰기 하면 공부 안 해도 되잖아. ”이 소리에 바로 진우는 할래! 할래!” 아이들의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추억은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많아도 계속 만들어야지.”

우리반이 지금까지 추억이 많긴 하지. 그치만 이번 추억은 달라. 세상에 24권밖에 없는 시집을 만드는 거니까. 특별한 추억이지 않을까?” 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의 와~ 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아직 승호의 마음은 열리지 않았나 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22명의 예스에도, 1명의 노에도 화답해야 하니까. ! 그러고 보니 국어 시간에 이미 써 놓은 시가 몇 편 있는 게 생각났다. 아니라고 한 친구는 더는 시를 쓰지 않아도 시집 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으니 괜찮겠다 싶어 물어보니 흔쾌히 좋다 한다. 아이들은 친구의 오케이에 환호성을 치며 손뼉을 치고 고맙다는 말까지 한다.

 

, 그럼 이제 시집의 제목을 뭐로 해볼까? 하니 10개도 넘는 제목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은 나름의 의미를 친구들에게 설명했다.

나무라고 하면 좋겠어. 왜냐하면 우리가 처음에는 서로 따로따로 각각 이었는데 지금은 서로 도와주고 이해해주면서 하나가 되었으니까.”

“3학년 5반의 아름다운 시집. 우리반 친구들의 시 하나하나가 모여있잖아. 그래서 아름다운 이란 말을 넣었어.”

우리는 시대장 어때? 우리 시쓰기 엄청나게 잘하니까.”

치열한 논의 끝에 정해진 시집 제목은 시끌벅적 우당탕탕 우리반. 내가 고르지는 않았지만, 맘에 쏙 든다.

 

이제 시를 조금 더 써볼 차례. 아이들에게 호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한 조그마한 수첩을 나눠주었다. 가지고 다니면서 세상에 돌아다니고 있는 시와 마음속에 떠오르는 시들을 채집해오라고 했다. 세상에나 하루 사이에 수첩을 모두 쓴 아이도 있었다. 어린이들은 어른을 놀라게 하는 재주꾼들이다.

 

 

 

 

그럼 이제 내 차례다. 열심히 시를 모으고 있는 아이들을 본받아 열심히 시집 첫머리에 넣을 글을 쓰고 편집 작업을 할 것이다. 시집 첫머리에는 이런 글을 넣어보려 한다.

 

시집 발간을 축하해요.

이 시집은 여러분 삶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모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크게 애쓰지 않아도 고맙다는 말도 잘하고 미안하단 말도 잘하는 여러분.

작은 일에도 웃음을 터트리는 여러분.

별일도 아닌데 눈물을 글썽이며 금세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여러분.

선생님이 여러분 때문에 속상하다고 말하면 선생님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하고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는 여러분.

명랑한 얼굴로 아침이면 어김없이 교실 문을 들어서는 여러분.

어려운 곱셈, 나눗셈, 분수를 배우면서 끙끙거려도 끝까지 배우고야 마는 여러분.

선생님은 그런 여러분과 조금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웃을 때 웃으며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을 여러분보다 먼저 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선생님은 순수한 시절을 보낼 수 있었어요.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인쇄소에서 나온 따뜻한 시집을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전날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러분도 모두 알다시피 이 시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에 24권뿐인 시끌벅적 우당탕탕 우리반!”그럼 아이들은 와!! 소리와 함께 박수를 치며 시집을 펼쳐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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