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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보내며

글 김경숙 편집위원

 

모처럼 방학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3학년 담임을 한 덕이다. 대입전형자료를 보내기 위해 일찍 학생부를 마무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도 생활기록부 쓰기에 여념이 없었으리라. 1,2학년 담임을 맡았더라면 방학 동안 보충 수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게고. 3학년 담임도 할 때는 나름의 고충이 있었지만, 지나놓고 보니 홀가분함 또한 있었다.

덕분에 이번 방학은 가고 싶은 곳도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하고 싶던 자원봉사도 할 수 있었다.

 

며칠을 집에서 뒹굴거리다 보니 답답함이 몰려왔다. 몸이 싫다는 내색을 하는 바람에 뛰쳐나가 천변이라도 걷다가 돌아오고 걷다가 돌아오기를 몇 번, 손위의 언니한테 전화를 받았다. 모악산에라도 다녀오자고. 모악산행은 역시 좋았다. 눈이 많이 온 뒤에 날이 푹해져 산에 오르는 내내 계곡의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위틈을 휘돌아 흐르는 물소리의 청량감이 겨우내 잠든 자연에 생기를 불어넣은 듯 봄을 제촉했다. 대원사에 오르니 등산객들의 출입도 아랑곳하지 않고 토끼 한 마리가 요사체 토방에 앉아 햇볕을 즐기며 점심 공양에 여념이 없었다. 잠시 쉬면서 물 한 모금 마시는 사이 어느새 마루에 오른 토끼가 열린 방문을 통해 잽싸게 사라지는 모습을 보니 사람과 자연의 경계가 없는 듯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토끼가 궁금해 다시 모악산을 찾았다. 하늘이 맑고 볕이 좋아 눈이 걷힌 모악산은 근육을 드러낸 체 운동을 위해 기지개를 켜는 듯 탄탄한 골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대원사에 오르는 동안 부쩍 많아진 물소리가 상큼하여 봄이 지척에 왔음을 실감했다. 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찾은 대원사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토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운함을 뒤로하고 잠시 쉬며 주전부리를 나누고 있는데 토끼가 토방 댓돌 위로 올라와 자기도 먹을 것을 달라고 고개를 내밀었다. 가져온 과자를 주니 잘도 받아먹었다. 그러기를 서너 번 녀석은 과자가 없어지자 마루 밑에 들어가 대자로 자리를 잡고 누웠다. 그 모습이 우리 집 강아지 둘리 같았다. 역시 좋았다. 경계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집 가까이에 도서관이 있다니 행운이다. 학교까지 가기가 뭐해서 찾은 삼천도서관은 내가 대학 때 보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리모델링 되어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기 좋게 공간을 바꾸어 가서 책을 보기에 좋았다. 딸아이와 함께 가서 길을 튼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찾게 되었다. 오전에 가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오후가 되고 금방 저녁이 되었다. 시간을 보내기엔 제격이었다. 특히 그동안에 못 읽었던 고전을 읽는 재미는 쏠쏠했다. 군주론의 저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말년에 직장에서 돌아와 밤이 되면 성현을 알현하는 의식을 치르느라 정장을 갈아입고 꼿꼿이 앉아 책을 읽었다는 말이 이해가 될 듯했다. 고전을 읽으며 성현과 만나는 동안 예를 갖추었다는 이야기가 고전의 진가를 알고 책을 대하는 그의 성정을 알게 했기 때문이다.

 

카페 우정에서의 바리스타로 2주일간 자원봉사는 나에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재미를 선사했다. 아침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6시에 문을 닫는 시니어들의 일터 카페 우정. 5일 동안 3명의 어르신이 하루 4시간씩 시간을 나누어 3일씩 근무한다니 한 달에 60시간이 채 안 된다고 한다. 자원봉사를 하기 전, 커피머신을 다루어보고자 카페에 갔을 때 만난 어르신은 집에만 있다가 카페에 나와 근무하게 되니 너무 좋다고 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할까 걱정도 되고 잘못하면 어쩌지 조바심도 나서 딸아이와 카페 놀이도 하며 메뉴엘을 익혔다고 하는데, 지금은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가족들의 지지 속에 하는 주 34시간씩 하는 근무는 금방 갈 뿐 아니라 삶을 활력을 준다며 많이 즐거워하셨다. 특히 판매 수입에 대한 부담이 없어 편안하게 일할 수 있어 더 좋다고 하셨다. 해서 카페 일을 지원하는 시니어들이 많아 경쟁률이 높다고 하셨다. 단정한 제복에 모자까지 쓰면 멋진 근무복장을 갖추게 되는데 청결하고 깔끔한 근무 여건에 커피, 음료에 시니어들이 만든 청과 에너지바, 과자 등 간식거리도 판매했다. 또한 매장 한쪽에 어르신들이 손수 뜨신 덧신이며 핸드폰 가방, 카드지갑, 컵 받침, 손가방들도 진열하여 팔고 있었다. 게다가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다회용 컵 사용을 원하는 사람은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정부가 일회용 컵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가 이를 번복하면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무분별하게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데, 시니어사무실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회용 컵을 사용하며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어 이러한 모습이 확산되어 정부 정책을 견인해 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것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지원한 사람들이 많아 일하고 싶지만 다 수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면접을 통해 신청자의 3분의 1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했다. 카페에서 봉사하는 동안 우연치 않게 듣게 된 고객의 통화내용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 70이 넘은 어르신인데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자 신청을 했다가 떨어졌다고 했다. 자기가 떨어질 줄은 몰랐다며 속상하고 안타까워하며 차를 마시다 말고 한참을 친구한테 하소연하다 가셨다. 말로만 듣던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함을 실감했다. 카페에서 일하시는 사부는 60대만 되어도 연금을 받기도 하니까 그 정도는 아닌데 70대 노인의 경우 한 달에 30, 40만 원은 큰돈이라며 생활에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저리 애달파 하시는 거라고 하였다. 생각해 보니 자식들이 있어도 자기들 살기에 바쁘기 때문에 부모에게 용돈을 드리기가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나도 아이 키우며 살림하다 보니 늘 돈 쓸데가 많아 부모님께 용돈 한번 제대로 못 드렸으니까.

 

결혼식이 있어 서울 나들이를 두어 번 했다. 덕분에 웨스턴 조선 호텔과 여의도 콘레드 호텔을 구경할 수 있었다. 요즘은 식장을 예약할 수 없어 식장 예약 가능한 날이 결혼을 할 수 있는 길일이라고 한다. 선남선녀의 결혼에 초대받은 사람만 갈 수 있고 지정된 좌석만 앉아야 되는 문화가 낯설게 느껴졌다. 코로나 이후 천정부지로 오른 예식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그런다고 한다. 예전엔 결혼이 양가에서 지인과 친지들을 모시고 제법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치뤄진 혼례였다면 요즘은 신랑 신부 중심의 즐겁고 경괘하게 치뤄지는 축제 같았다. 결혼을 결심한 젊은이들의 용기와 당당한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아 축하를 보내면서도 결혼을 포기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나 집안의 역량에 따라 사랑도 결혼도 선택과 포기를 결정해야 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우리 딸도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

 

방학이 있어 좋다. 잠시나마 하던 일을 멈추고 재충전을 할 수 있었던 시간 들이 나를 기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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