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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을 다녀와서

글. 김경숙 / 편집위원

 

비 온 뒤 기온이 차다. 구름은 걷혔지만 바람은 간간이 불어 계절을 실감케 하는 아침, 여름을 수놓았던 백일홍도 꽃잎을 떨군 지 오래고 오래도록 화사함을 자랑했던 수국도 자취를 감춘 자리 로즈베리 노란 꽃잎이 즐비하게 교정을 채우더니 어느새 색색의 국화가 그 탐스러움을 자랑하는 가을, 하늘은 높아지고 햇빛은 비스듬히 각도를 낮추어 두런두런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듯 나무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사이, 우주의 정적을 깨고 나뭇잎 하나 핑그르르 잎을 떨군다. 무성한 여름 초록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아 앗, 나뭇잎 하나 잎을 떨군다. 채움을 위한 비움, 비움을 준비하기 위하여

 

주말 모악산행은 여느 때와 달리 힘겨웠다. 준비 없이 나선 산행이라 버스노선을 잘 모르는 바람에 버스를 타기 위해 40분을 기다려야 했고 조금이라도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고자 버스정류소를 두 번이나 옮기는 등 산에 오르기 전 미리 진을 뺏기 때문이다. 중인리 종점에서 내려 모악산 입구까지 걸어가는 시간엔 한낮의 햇볕이 지루하게 느껴져 피곤이 더한 데다 오랜만의 산행인 탓에 걷다 보니 비교적 완만하다고 택한 계곡 길이 낯설고 길게 느껴졌다. 비단길을 거쳐 무제봉, 정상에 오르는 4K 길이 어찌나 팍팍하던지, 남편은 전에도 왔던 길이라며 뭐 이정도 가지고 그러냐고, 이게 가장 완만한 길이여 택한 거라며 딴에는 나를 배려했다고 거듭 밝혔지만 쉬 정상을 내보이지 않는 산인지라 고개를 오르고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무제봉까지는 한참이었고 무제봉에서도 정상이 있는 송신탑까지는 한참을 올라야 했다. 모악산은 많이 올랐지만 개방된 송신탑은 처음인지라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모악산의 인상은 자못 장엄했다. 산줄기가 남서와 북동으로 골골이 도도하게 흘러내리는 것이 줄줄이 새끼를 끌어안은 어미의 모습같이 느껴져 새삼 엄뫼라는 옛말이 실감이 났다. 어미 산, 어머니의 산이여 모악산이라고 했다더니 굽이굽이 흘러내려 전주의 삼천천과 김제 원평천 금산천의 발원이 되었다는 말이 적이 실감이 났다. 간간이 등산객들을 반기는 샛노란 들국화와 바스락거리는 갈참나무 마른 잎을 뒤로한 채 하산은 금산사 방향으로 정했다. 북봉 쪽으로 내려오다가 갈림길에서 모악정으로 향하는 길은 유난히 계단과 데크가 많았다. 구이 길이나 중인리 길보다는 경사가 급하고 토사가 휩쓸려서 그랬는지 모래주머니를 계단 옆에 쌓아 내려가는 계단이 마치 물길이 흐르는 계곡의 내리막 같은 느낌이 들게 조성해 놓아 길은 좋고 거리는 짧았지만 산이란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어려운지라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송신탑으로 연결된 케이블카 타는 곳에 다다랐다. 거기서부터 모악정에 이르는 길은 완만한 둘레길이었다. 금산계곡을 따라 숲길을 내려가게 길이 닦인 데다가 간간히 데크를 놓아 계곡을 가로지르며 풍경을 볼 수 있게 하는 등 계곡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아, 금산사에서 모악정까지 마실 삼아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려오다 보니 심원암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심원암은 작년 여름 두어 번 찾았던 곳이다. 더위를 피해 걷기에 좋은 곳을 찾다가 왔던 곳이라 반가웠다. 그때는 갈림길 저쪽이 어딘가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궁금증이 풀렸다. 익숙하다는 것은 예측 가능한 데서 오는 편안함을 준다. 갈림길에서 금산사까지는 익숙한 길이여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 내려오다 보니 금방 절집이었다. 정상에서 금산사로 내려오기로 정한 것은 남편의 말대로 볼거리를 고려한 선택이여 약속대로 금산사에 들렀다.

산사에는 간밤의 개산대재를 지내면서 설치해 놓은 등들로 절집이 가득 찼고 오가는 방문객들도 산사를 연 것을 축하하는 분위기여 절집은 조용한 가운데 활기가 있었다. 백제법왕 원년인 599년 창건하여 올해로 1424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자리라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전주에서 가까워 툭하면 들렀던 산사인데 신라 경덕왕 때 진표율사가 미륵장육존상을 세우고 미륵전을 지어 민중을 교화하면서 규모가 커졌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니 나란 사람이 참 건성이었고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란이 있을 때마다 화마의 시련을 겪었다고 하니 종교도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며 내려왔다. 8K가 넘는 산행인데 정상에서 간단한 간식으로 점심을 대신했는지라 일주문을 빠져나오며 피곤과 배고픔이 밀려왔다.

주차장까지 내려오니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았다. 410분에 도착했는데 버스는 47분에 떠났다고 했다. 여차하면 주차장 근처 상가에서 저녁을 먹을까 하고 다음 차 시간을 보니 다음 차는 450분에 있고 그 다음 차는 515분이었다. 6시 차는 주말은 운행하지 않는다고 하니 밥을 먹었다가는 꼼짝없이 7시가 가까워서야 전주에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전주에 와서 먹는 걸로 하고 주차장을 둘러보았다. 남편은 젊은 시절 자주 왔다는 민박집을 찾는 것으로 시간을 거스르고 나는 주차장 끝에 조성해 놓은 화단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시장기가 더해지자 여러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노점에서 번데기만 사 먹을 게 아니라 옥수수도 사 먹을 걸, 아니 그냥 내려왔더라면 차를 탈 수도 있었겠는데 등등 쓸데없는 생각들이 지나가는 사이 내려와서 식사할 요량에 참았던 일을 생각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할 거면 차 시간을 미리 점검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나의 주변머리가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가을 산이 보고 싶어 나선 산행, 중인리에서 출발해 모악산 정상을 올라 금산사로 내려오는 코스는 우리 부부의 오랜 바램 중 하나였는데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일까?

 

수능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반 친구들은 이 좋은 날씨, 황금 같은 주말에도 책과 씨름하겠지. 그럴 줄 알면서도 나는 지난 금요일 아이들에게 수능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당부했었다. 대입, 생각보다 문턱이 높다고. 준비하는 사람에게 좋은 결과와 함께 기회가 온다고.

준비! 준비! 나는 입버릇처럼 아이들에게 준비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나는 시행착오를 겪고나서야 준비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특히 산행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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