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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이야기(4)

글 배선수 / 회원

 

기무부대에 불려 갔다 온 뒤로 부대에서는 나의 동향을 수시로 보고하는 것 외에 별일 없이 그럭저럭 군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부대 배치 3개월이 지날 무렵이었다. 우리 부대 초입에 경비초소가 하나 있었는데 그날 나는 병장과 한 조가 되어 보초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연대본부에서 우편물을 받아 오던 행정병 선임이 다급하게 초소로 달려와서 배 이병 앞으로 이상한 우편물이 왔다며 대봉투 하나를 건네는 것이었다. 그 선임은 상병이었는데 석사학위를 받고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해서 가방끈이 길다는 이유로 본부소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 중이었다. 성품이 워낙 온화하고 행동 또한 신중한 선임이었다. 군에서는 이런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문관이라 불린다.

 

그 선임이 건네준 행정 봉투를 뜯어 보니 전주지방법원에서 보낸 문서였다. 법원 1심 판결에 불복하여 검사가 항소하였고 피고인 신분이 군인이므로 본 사건을 군 고등법원으로 이첩한다는 내용이었다. 난 보초 근무를 마치고 어쩔 수 없이 뜯어진 봉투를 들고 중대장을 찾았다. 문서를 받은 중대장 얼굴은 울긋불긋해졌고 문서를 잡은 손이 심하게 떨렸다. 이런 엄중한 문서를 본인이 직접 받아 상급부대와 상의한 후에 면담을 통해 나에게 전달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일개 병사가 그것도 개봉된 봉투를 직접 들고 왔으니 군 위계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그 행정병 선배는 중대장에게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 그렇게 맞고도 나에게 궂은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 선배 이름이나 얼굴, 고향도 생각나지 않지만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부대는 아니 일반 병사들은 이런 사실조차 잘 몰랐고 간부들만 또 한 번 발깍 뒤집어졌다. 중대장은 연대장, 사단장에게 그리고 기무부대에 이 사실을 보고하였고 여기저기 대책 회의에 불려 다니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대책 회의를 한다 한들 별반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저 문제 사병인 나를 잘 감시하고 나의 동태에 대해 수시로 상부에 보고하는 것이 전부였다. 2주쯤 지나서 사단 법무관실로 불려 갔다. 사단 법무관은 재판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다만, 고생 많다며 편하게 하루 쉬다 가라고 했다. 받침까지 있는 잔에 커피를 타 주고 간식 과자를 챙겨주고는 조사나 질문도 없이 본인 일을 할 뿐이었다. 물론 그런다고 편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법무관은 그렇게 나를 아니 내가 한 행동에 동의하고 인정해 줬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재판기일이 하루하루 다가오자 누가 나를 육본까지 인솔할지, 가면 언제 갈 것인지, 교통수단은 무엇으로 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이틀 전에 결론이 났다. 인사계(지금은 행보관)가 인솔하여 하루 만에 다녀오고 차량 제공은 불가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것이 상부의 명령이었다. 나에게 그 어떤 편의를 제공하는 자체가 그들에게는 큰 부담이었던 것이다.

 

재판 당일 인사계는 퇴근하지 않고 부대에 기다리고 있다가 2시 경에 나를 깨워 부대 근처에 있는 본인의 관사로 데려갔다. 집에 도착해 보니 그 새벽에 사모님은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계 처지에서는 윗선에서 어떤 편의도 제공하지 못하게 했지만 그래도 본인이 할 수 있는 나에 대한 최고의 배려였다. 아침을 부담스럽게 먹고 첫차를 타고 서울 육군본부에 도착했을 때도 인사계는 네 덕분에 군 생활 25년 만에 처음으로 육군본부 구경한다라는 농담으로 나를 안심시켰다. 늘 전방부대에서 근무한 부사관에게는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육군본부였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재판장에 도착해 있는데 웬 대위가 나에게 다가와서 본인이 담당 변호사라며 인사를 건넸다. 하도 기가 막혀서 무슨 변호사가 사전에 피고인 접견도 없이 재판장에서 처음으로 인사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느냐!”며 따져 물었다. 대위 아니 변호사는 당황해하면서도 본인이 준비한 거라며 자료 한 보따리를 내놨다. 자료는 시국사건 관련자들의 사면 복권과 관련된 기록들과 신문 스크랩들이었다. 87년 당시 시국사범들은 대부분 사면 복권되었고 나는 재판이 계류 중이므로 사면 복권 대상에서 제외되었을 뿐 당연히 사면 복권 대상이므로 이를 주장하면 재판에서 큰 문제 없을 거라는 그의 견해였다. 변호사가 있는지조차 몰랐고 변론에 큰 기대도 없는지라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

 

육군본부 재판정은 2심 재판이다 보니 1심에서 이미 실형을 선고받고 군 교도소에 수감 중인 피고인이 20명 정도에 민간인 방청객도 상당했다. 피고인들은 모두 머리를 완전히 밀고 계급장이 없는 군복을 입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3명의 판사로 구성되는 민간의 합의부 법정과는 달리 판사석에 7명이 입장해 앉았다. 그 중간에 대령 계급장을 단 판사가 자리했다. 재판은 각 판사가 담당하는 사건에 대해 진행하다 내 사건이 호명되자 가운데 앉은 대령이 재판을 진행했다. 사건 진행은 그리 길지 않았다. 군검사는 1심 사건 내용을 거론하며 1심 구형과 같은 징역 5년 형을 주장하였고 변호사는 지금의 유화적 정세와 이미 사면 복권된 다른 시국사건과의 형평성을 들어 검사의 항소를 기각해 줄 것을 청원했다. 그렇게 재판이 종료되고 몇 주 후에 검사의 항소가 기각되었다는 판결 결과를 구두로 전달 받았다. 그러나 판결문은 송달받지 못했다. 후에 공무원 시험을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군 재판은 판사의 판결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판결문에 소속 부대 사단장이 최종서명을 해야 비로소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내 사건은 판결 후 3개월가량 지나서 사단장이 서명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그렇게 늦게 서명했는지 판결문은 왜 보내주지 않았는지 지금도 모른다.

 

내가 근무한 부대는 전방 철책을 지키는 부대의 바로 후방에 주둔해 있는 예비사단이었다. 유사시 최전방으로 투입되는 사단으로 같은 예비사단인 11사단과 함께 훈련이 고되기로 소문난 부대(27사단 이기자 부대)였다. 내가 신병훈련을 받았던 35사단 같은 지방 사단이나 논산훈련소 병력은 자체 훈련소에서 2주간 추가로 훈련을 받고 자대 배치받을 정도였다. 군에서의 다양한 훈련 중에서도 태권도 훈련이 나에겐 늘 곤혹이었다. 다리가 짧은 데다 뻣뻣하기까지 해서 발차기 자세가 영 나오지 않아 선임 둘이 양쪽에서 다리를 잡고 찢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다고 짧은 다리가 길어질 리는 만무했다.

 

통상 사회 단증이 있거나 군에서 단증을 받을 경우에는 태권도 훈련에서 열외 되는 특혜를 누렸다. 군 단증은 부대에서 가능성 있는 병사를 사전선발하고 사단에서 실시하는 최종 단증 심사를 통과해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병장이 될 때까지 본 심사는커녕 부대 자체 심사에 통과한 적이 없었다. 병장 고참이 되어 부대 예비 심사가 있었는데 예상대로 또 떨어졌다. 그러나 병장이 본심사에 출전 한번 못해 보고 제대하는 게 말이 되느냐! 떨어지더라도 본선에는 한번은 보내주라~”고 우겼더니 선심을 쓰듯 본선 진출을 허락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으면서....

 

사단에서 진행된 단증 심사는 대위가 심사관이었다. 연병장에 20명씩 줄을 세워 태권도 품세와 발차기, 앞지르기 등을 실시하게 하고 심사관이 탈락자를 골라내고 통과자는 23차 심사를 계속하는 방식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1차에서 발차기 몇 번에 예상한 대로 심사관이 나를 지목하며 너 나가~”이러는 거다. 정의가 실현된 거다. 그렇게 본심사 참가라는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나는 당연하다 여기며 미련없이 돌아섰다. 그런데 뒤에서 저기! 거기요~ 거기는 다시 들어와요~”라는 말이 들려 뒤돌아보니 나를 지목하는 것이다. 그것도 방금과는 달리 반존대어로 말이다. 그렇게 심사 대열에 다시 복귀한 나는 23차 심사에서 여전히 개발질을 시전했음에도 무사히 심사를 통과했고 드디어 단증을 교부받게 되는 부정의가 실현되었다. 단증 심사관인 대위는 사단장 참모였기에 늘 동향이 보고 되는 나를 간접적으로 알고 있었고 그렇게 작은 선심을 베풀었던 것이다.

 

아들 초등학교 입학 전에 태권도 단증을 보여 주며 아빠의 태권도 실력이 얼마나 출중한지 자랑질을 했었다. 그런 아버지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기까지 했던 우리 아들에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니 이제는 말해야만 한다. “아들아! 아빠 태권도 단증 야메다. 미안하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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