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배선수 회원
이번엔 나의 군대 생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집행유예로 교도소에서 나오자 바로 군 영장이 나왔다. 정상적으로 하면 형 2년에 집행유예 3년이면 당연히 군면제 대상임에도 영장이 나왔고 군에 끌려가게 되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상전벽해한 송천동에 있는 35사단에서 4주 훈련을 마치고 기차로 배치받은 자대로 가는데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같이 훈련받은 동기들은 하나둘씩 내렸다. 그런데 나는 마지막 종착역에서 내려 102보충대로 배치를 받았다. 거기서 하룻밤 자고 흔히 육공트럭이라는 군용트럭에 실려 최종적으로 배치받은 부대가 강원도 화천에 있는 27사단 이기자부대 79연대 전투지원 중대였다.
이기자 부대는 예비사단으로 훈련이 고되기로 유명한 부대인데 그것도 전투 지원중대라니 대체 이 부대는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 불안한 이등병에게 고참들은 전투 지원중대는 전쟁이 일어나면 전방부대에 전투에 필요한 실탄이나 포탄, 식량 등을 산 정상 진지까지 지게로 지어서 날라주는 그야말로 전투를 지원하는 부대로 개인화기인 소총도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전시에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엄청 겁을 주었다. 물론 며칠 지나서 알게 된 부대 임무는 연대 직할부대로 4.2인치 박격포와 106미리 무반동총을 보유한 부대로 연대 소속 부대의 전투를 화력으로 지원하는 부대였다.
이등병으로 4.2인치 박격포 소대에 배치를 받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휴식시간에 침상 끝에 정자세로 앉아 하늘같은 고참들이 점호 준비를 위해 바닥 청소며 관물대 정리로 분주한 모습을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이는 신병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고도의 심리전으로 신병들의 군기를 잡는 나쁜 관행이었다. 그렇게 신병 군기 잡히기를 시전하면서 침상 끝에 앉아 있기 3일째 되는 날 내무반 방송에서 ‘이병 배선수 복장을 갖추고 행정반으로 와라’ 라는 방송이 들렸다. 주섬주섬 군복을 입고 있는데 당직사관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데리러 왔다. 당직사관과 함께 행정반 앞으로 가보니 군용 지프차 한 대에 운전병과 중사 한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이들은 군 기무부대 소속이었고 나는 이미 내무반에서 방송을 듣는 순간 이게 무슨 의미인지 감을 잡고 있었지만 정작 당직사관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고 퇴근한 중대장은 보고를 받고 황급히 부대로 복귀 중이라고 했다. 직업군인인 그들 입장에서는 군 생활 꼬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지프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당연히 기무부대 조사실이었다. 기무부대장이 조사를 시작하는데 이미 경찰에서 조사한 자료를 가지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작업과 더불어 주로 당시 전북의 학생운동 수배자들의 근거지를 묻는 것이었다. 나는 교도소에서 나와 바로 군으로 끌려왔기에 동료들의 근황을 알 리도 없어 그들은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럼에도 각오한 것보다 조사가 수월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무부대장이 하는 말이 ‘너는 정말로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지금 사회에서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난리가 아니다. 너는 그 덕을 보는 줄 알아라’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87년 1월 15일 군번이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1월 14일이니 그럴 만 했다.
그렇게 밤샘 조사를 받는데 조사받는 내 태도가 영 맘에 안 들었던지 조사하던 기무부대장이 갑자기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깐죽거려 저쪽 벽에 붙어’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당황하여 얼떨결에 차렷 자세로 벽에 붙었는데 기무부대장은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내 관자놀이에 대고 ‘너 여기가 어딘줄 알어~ 여기서 누구 하나 죽여 나가도 아무도 몰라 이 새끼야! 겁도 없이 이등병 놈이 기무부대장하고 농담하려 들어~’라고 하는데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고 잠시 정적이 흐르자 권총을 내리면서 기무부대장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쫄았냐! 우리 잘하자~’이러는 거다. 이런 나쁜새끼~
조사는 밤새 계속되고 새벽 5시경에 누군가가 조사실 문을 두드리는데 전입신고 때 딱 한 번 본 중대장이 한 손에 뭔가를 들고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밤새 고생하시는데 본인의 아내를 시켜서 김치전을 준비했는데 드시고 하시면 어떻겠냐고 너무도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중대장 심정이 이해가 가고 남았다. 새로 배치받은 이등병이 자기에게는 아무런 언질도 없이 헌병대도 아니고 기무부대로 끌려갔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고 그렇다고 기무대에 무슨 일인지 물어볼 수는 없고 밤새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가 생각해 낸 것이 아마도 김치전이었을 것이다. 그날 기무부대장의 허락으로 같이 나눠 먹은 김치전으로 하루 종일 설사를 해야만 했다. 이미 내 내장은 기름기 없는 군대 짬밥에 길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조사가 끝나고 기무부대장은 편한 보직으로 자리를 옮겨 주겠다고 제안을 했는데 나는 거절했다. 그렇게 군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는 전입 2개월이 지날 때쯤 나에게 또 다른 사건이 생겼다. 육군 고등법원에서 군사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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