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서용운 회원
정부에서 코로나 백신을 고령층부터 먼저 접종하겠다고 했을 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참 열심히 일하거나 공부하는 젊은이나 어린이들부터 맞게 해야지 많이 돌아다니지도 않고 방역수칙도 얌전하게 잘 지키는 노인들부터 하는 게 맞는 거야?’ 그런데 그 고령층 중에 낯설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저였습니다.
호기심에 고령층에 대하여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사회 구성원 가운데 중년이 지난 썩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나무가 나이테 두르듯 저도 썩 나이가 많은 사람이 되었는데, 그러면서 제 삶에 아쉬운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대학 때 ‘나무’에 대한 전공을 한다고 했는데 마치 ‘남의 공부’처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참 좋은 공부였고 저에게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교회 안에 있었지요. 그래서 나무나 식물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고 배우고 지내고 있는 것으로 위로를 삼고 있습니다.
마침 제가 사는 집 바로 옆에 우람찬 편백숲이 있는 산이 있어서 걷고 머물기에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편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카시아, 밤나무, 졸참나무까지 함께 있어서 계절의 변화를 향기로 느끼며 지냅니다. 5월이면 아카시아향이 전해오고 그 향기가 사라지고 나면 밤꽃 향기가 또 진동하지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은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바람에 나뭇가지 흔들리며 내는 소리를 듣노라면 마치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 하늘과 땅과 나무와 물 이런 것들은 지구에서만 가능한 생명 현상, 물리 현상이겠지요. 사람들이 달이나 화성을 탐사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사는 지구와는 전혀 다른 별이지요. 우주 세계에 1억 5천 개쯤이나 되는 수많은 별들이 있다고 하는데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별이 지구가 아닌가 합니다. 그곳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한 일인지요.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나무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합니다. 산에 있는 나무 뿐만 아니라 길가에 심어진 나무도 있지요. 사람들은 흔히 가로수라고 합니다만, 처음부터 가로수로 태어난 나무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가로수로 ‘차출’ 되어서 심어진 것 아니겠는지요. 그리고 또 사람들이 보기 싫다는 이유로 혹은 관리하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가지가 잘려나가면서도 그것을 견디고 또 가지를 내고 잎을 내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 안에 심어진 소나무만 해도 그렇습니다. 짐작하기에 아마도 어느 산에 심어져 있었을 것이고 무리를 이루고 숲을 이루어서 살아왔을 것인데 뿌리째 뽑히고 새끼줄에 꽁꽁 묶여서 반출되어 왔겠지요. 키가 크고 날씬하여 보기 좋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그래서 도시의 낯선 곳 남의 집에 보기 좋으라고 심어져 있는 것을 보면 참 외로워 보이고 낯설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제 눈에는요. 그나마도 값이 조금 나가는 것들은 사람들이 관리를 잘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나무들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는 것들도 꽤나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해서 조경수로 심은 것 같은데 되레 조경을 해치고 있는 풍경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반려 동물들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동물 복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하고 법으로도 규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나무 복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서 나무를 대하지 말고 나무를 나무답게, 나무가 더 나무답게, 나무와 사람, 나무와 도시가 조금 더 조화롭게 어울리는 도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전주시가 천만 그루 정원도시로 가꾸겠다고 하니 아마도 ‘나무 복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신경쓰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전주 시민의 한 사람으로 보고 느낀 것들을 말씀드리는 것이지요.
오늘 글의 제목을 ‘나무를 보라’고 했는데, 가수 조동진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것입니다. 제가 웬만하면 클래식 공연이나 뮤지컬 콘서트는 빠짐없이 다녀보려고 하며 살아왔습니다만, 좋아하는 가수 중에 조동진하고 김광석 공연을 보지 못했습니다. 김광석은 너무 일찍 가버렸고, 조동진은 좀처럼 콘서트를 하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도에 정말 오랜만에 콘서트를 한다고 해서 일찌감치 제일 앞 좋은 자리를 예매해놓았는데, 공연 전에 그만 세상을 떠나버렸지요. 그 다음 해 조동진 추모 콘서트를 보는 것으로 위안을 받았습니다. 제가 알기로 조동진은 나무에 대해서 참 좋은 노래들을 불렀던 가수일 것입니다. 대표곡 중에 하나인 ‘나뭇잎 사이로’는 많이들 아실 것입니다만, ‘나무가 되어’, ‘나무를 보라’, ‘겨울숲’, ‘그’, ‘해저문 공원에’ 등등 참 많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나무 한 그루처럼 그렇게 한결같이 살다가 갔습니다. 나무를 노래한 사람 조동진의 나무를 보라 노랫말을 적으면서 마칩니다.
나무를 보라
나무를 보라/ 눈부신 잎사귀
나무를 보라/ 높게 오르는 가지를
나무를 보라/ 어둠 속 깊은 곳
나무를 보라/ 홀로 잠기는 뿌리를
빛과 어두움/ 사랑과 미움
별과 꽃들/ 슬픔과 기쁨
함께 거두어/ 살아 있도록
모두 그대로/ 그대 가슴에
모두 그대로/ 그대 가슴에
서용운 님은 전북대학교와 한신대학원을 졸업하고 전주임마누엘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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