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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스스로라는 힘

| 이주희 회원

 

교단일기 #41

 

전주 변두리의 한 학교에서 근무할 적에, 아이들이 유독 의욕도 없고 이리저리 건드려봐도 반응이 없던 적이 있다. 아이들은 생기 대신 말라버린 채소 마냥 축 늘어져 수업 시간이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간 쌓아둔 나름의 방법을 동원하여 아이들만이 가진 무언가를 깨우는 일을 했으나 더디고 잘 안 되었다. 하다 하다 안되니 포기되는 마음이 생길 무렵, 속에서 부아가 올라왔다. ‘아니 내가 이렇게나 노력했으면 어느 정도 시늉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냐?’ 하고 말이다. ‘나는 이제 니들에게 해 줄 것도 없으니 어디 한번 니들이 해봐라라며 시작된 일이 재미있게도 나의 학급 운영의 모든 것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맡기는 학급 운영을 경험 한지 올해 5년째이다. 하면 할수록 아이들이 살아나는 진기함을 경험하니 확신이 생긴다.

 

학기초 아이들과 매일 시간을 내어 학급 가치 세우기를 한다. 다양한 가치들을 읽어보며 올해 우리반이 중요하게 생각할 가치들을 각자 고른다. 재미, 우정, 배려부터 시작해 건강, 휴식, 수면까지 다양한 가치가 등장한다. 칠판에 한가득 적힌 가치들을 비슷한 것들끼리 묶어보며 가치에 담긴 각자의 까닭도 자연스럽게 나눈다. 그러면서 모아진 가치들을 중심으로 학급 가치를 함께 정한다. 올해 아이들은 도전, 즐거움, 배려, 봉사를 학급가치로 정하였다. 아이들은 지금껏 못하거나 싫어서 해보지 않은 것과 새로운 것들을 해보자는 의미의 도전을, 즐거움 안에는 가치 세우기에서 나왔던 우정을 넣어 우정을 위한 즐거움으로 배려에는 소통과 공감을 봉사에는 노력과 사랑의 의미를 담았다.

 

정해진 가치의 중요성과 방향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나면 가치를 실현해나갈 수 있는 부서를 만든다. 우리반은 도전부, 즐거움부, 배려부, 봉사부가 만들어졌다. 아이들 전원은 각 부서에 들어가는데 우리반이 마침 24명이고 부서는 4개라서 한 부서에 여학생 3, 남학생 3명씩 구성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본인이 좀 더 관심 있는 부서를 선택하게 하였다. 그러고 나면 부서별로 모여 한 학기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때 시간을 충분히 주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거리낌 없는 소통이 이루어지게 하는 게 중요하다.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당연히 서툴고 교사가 기대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계획한 것이 형편없다 하더라도 교사는 함부로 판단의 말을 하거나 개입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그 가치를 향해 가기 위해 이야기 나누며 계획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곧 목표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별로이다’ ‘좋다라는 평가적인 말보다는 , 그런 아이디어도 있을 수 있겠네.’ ‘좋아, 여기서 조금 더 이야기 나누어보면 또 뭔가 더 나올 거 같은데정도만 말해주어도 아이들은 지금의 생각을 징검다리 삼아 한 발짝씩 나아간다. 그리고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이니 언제든지 바꾸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말해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 같은 것을 쉰다. 아이들이 지금의 계획이 완벽한 결과가 아니어도 된다는 걸 알게 되면 이야기는 더욱 활발해진다. 이렇게 해서 부서별로 세워진 계획은 자세하게 공유되고 학급 전체가 함께 활동하게 된다. 아이들이 쌓았다 무너뜨리고 다시 모래성을 쌓는 사이 나는 교실에 일렁이는 작은 변화들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봉사부 감자 수확

 

봉사부

학급 텃밭을 가꿔 수확물 기부하기, 교통봉사를 하시는 부모님들에게 감사 인사 드리기, 교실    과 복도의 쓰레기 줍기 캠페인 등을 계획하였다최근 학급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는 2시간에 걸친 회의를 통해 코로나19 의료진들에게 보내    드렸다. 물론 쉽게 결정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수확한 감자를 보니 기부보다 집에 가지고  가고 싶다고 하였다. 가족들에게 자랑도 하고 함께 맛있게 먹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갈등은  참  좋은 기회다. 이럴 때 나는 아이들이 갈등 속에서 충분히 고민하게 한다. 기부할 것인지 집  에 가져갈 것인지 회의를 한참 한 아이들은 스스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감자를 집에 가져가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되면 감자는 우리한테만 있는 것이고 기부를 하면 누군가에게 전해지게 되니 감자는 더 훌륭해지게 돼요. 그러니 작고 못난 감자는 나눠서 집에 가져가고 잘생기고 큰 감자는 기부를 해요.”

 

 

도전부 발표대회 1등 수여식

 

도전부

지금까지 하기 싫거나 못해서 안 했던 일에 도전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도전부에서는 아이들에게 각자 도전 카드를 만들어 나누어주고 도전내용을 적게 하였다. 그런 후 5월에 도전발표대회를 열었다. 본인이 도전한 내용을 담은 영상이나 사진을 촬영하고 발표대회 때 보여주는 형식인데 아이들의 많은 호응과 공감을 받은 도전자에게는 상품도 주어졌다. 편식이 심한 아이는 하루 급식 다 먹기에 도전했고, 파쿠르에 관심을 가지고 엄마 몰래 연습하던 것을 발표한 아이도 있었다. 한명 한명 발표될 때마다 아이들의 박수와 칭찬이 터져 나왔다. 한 아이는 줄넘기를 10개도 못했는데 꾸준히 연습하여 50개를 한 번도 안 걸리고 성공해 아이들의 큰 호응을 얻어 도전발표대회에서 1위를 하였다.

 

 

 

즐거움부 마파이 게임

 

즐거움부

친구들과의 우정을 위해 보물찾기와 마피아 게임, 마니또 등을 계획하였다. 보물찾기는 부별 행사 중 첫 시작이라 준비와 운영의 어려움이 있었다. 행사를 마치고 살짝 귀띔해준 것을 잊지 않고 즐거움부는 피드백 설문을 하고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운영한 마피아게임은 아이들을 무작위 3그룹으로 나누어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도 우정을 나누는 기회를 주었다. 아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앵콜 요청도 쇄도했다.

 

 

 

배려부 아침청소활동

 

 

배려부

배려부는 학급 친구들을 배려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를 고민하면서 학용품이나 실내화를 가져오지 않는 친구들을 위한 배려학용품과 학급실내화, 체육시간 머리끈이 필요한 여자친구들을 위한 머리끈 등을 준비하여 관리하였다. 이뿐이 아니라 친구들에게 깨끗한 교실을 준비해주자는 생각으로 아침 일찍 등교하여 교실 청소를 3월부터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이 일찍 등교하여 청소하는 걸 말리고 말려 지금은 1주일에 1회 교실 청소를 하고 있다

 

, 우리반 배려하기 활동으로 배려 친구를 추첨하여 그 친구를 배려하는 활동을 3가지 이상하고 배려카드에 적어 배려부에 제출하는 이벤트도 운영하였다. 아이들은 자신의 배려친구를 위해 교과서를 가져다주거나 책상 줄을 맞춰주기도 하고 인사를 상냥하게 하기도 하였다.

 

물론, 잘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계획은 세워두고 추진을 하지 않아 몇 번의 독촉을 해야 하는 일도, 부원들끼리 생긴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뒷걸음질 칠 때도 제자리걸음만 할 때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멈추지만 않으면 다시 앞으로 한 걸음씩 가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갖는 더 큰 믿음은 이렇게 하다 보면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한 아이들이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갖게 되고 생기를 띄게 된다는 것이다. 반 분위기가 점점 활기차지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갈등과 문제 앞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좋은 방향을 찾아가려 하고 무엇보다 서로의 일에 따뜻한 시선으로 함께 한다.

 

그래서 나는 이걸 이렇게 부른다.

스스로라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