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포커스/› 회원기고

[마음시] 내일은 수요일(오은)

내일은 수요일 
체육 시간이 있다

농구도 축구도 못해서
여름이어서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서
하굣길에 벌써 울적하다

국어 시간에도
영어 시간에도
수학 시간에도
나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

눈치껏 몰래 그리기도 한다

그리고 체육 시간에도 손이 근질근질하다
공을 던지는 손이 아니라
펜을 쥐는 손이

눈치를 보기에 운동장은 너무 넓다

화요일에도 수요일에도
여름 방학에도 크리스마스에도
나는 만화를 그리고 싶은데
어떤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마냥 흥미진진하고 싶은데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체육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한다

나는 갑자기 아픈 것 같다

다음 장면은 운동장일 것이다
말풍선은 오늘 떠오르지 못할 것이다

 


 

 

글 | 이형월 회원

 

 

한 아이가 있습니다. 참 다양한 색깔을 가진 소년입니다.


수업시간에는 없는 틈을 혼자 만들어 교과서 구석구석에 그림을 그립니다. ‘쉬는 시간에 해야지!’ 손목을 잡아도 연필을 놓지 않고 끄적입니다. 제법 볼만한 그림입니다. 


그 아이는 동물을 무척 좋아합니다. 야외수업 중 학교 꽃밭에 있던 지네를 돌 밑에 숨겨줬는데, 친구들이 기어이 해코지하자 욱 화를 내어 친구들과 한바탕 사건을 벌였습니다. 어쩌다 강당에 날아와 출구를 찾지 못한 새가 안타까워 이리 나가면 돼 저리 가야 해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아이입니다. 


배구도 무척 좋아합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축구를 하고 있어도 자기는 배구가 좋다고 쉬는 시간에도 혼자 강당에 달려가 공을 가지고 놉니다. 배구 경기하는 날에는 ‘저 배구 하는 것 보셨죠?’ 으쓱합니다. 


문제는, 쉬는 시간에 배구를 하느라 수업 시작하면 화장실 간다고 자꾸 나서고, 교과 시간에 그림 그리느라 선생님 말씀을 안 듣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러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그냥 친구들과 마구 얘기를 하고 장난을 친다는 것입니다. 교사가 말하는 공부와는 담을 쌓은 아이입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어 실랑이도 벌이고 혼내고 윽박지르고 했지만 지금은 알게모르게 서로 양보와 타협(?)을 했습니다. 삽화에 동물이 등장하면 그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파충류는 이름과 생태까지 줄줄 꿰고 있어 막힘이 없습니다. 자꾸 쳐다보고 옆에 서고 이름도 부르고 하니, 아이도 이것은 꼭 해 드려야(?) 하는구나 생각하는지 필기도 하고 대답도 하고 고개도 끄덕이고 나름 공부하는 척합니다. 그 모습이 밉지 않습니다.


마음 속 아픔이 있는 아이입니다. 더 아프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더 깊고 진하게 만들어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