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황지욱 (회원)
질문 자체의 황당함
연일 언론지상에 보도되는 기사를 읽거나 TV의 뉴스를 듣다 보면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부동산투기꾼과 사기꾼들이 득실거렸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집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인데 혼자서 수십 수백 채씩 집을 가진 자들이 들끓고 있으며, 땅은 좁아 터져 집 지을 터도 재대로 없는데 혼자서 매점매석 해둔 자들이 무수히 많기도 하다. 또 직무와 관련된 정보를 가지고 부동산을 저가에 사놓고는 고가에 팔아 막대한 개발이익을 거둬들이는 수법은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벌써 몇 해 전부터 도시계획과 부동산분야의 학자들도 부동산정책을 어떻게 펼쳐야 할지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를 펼쳐왔다. 개인이 집은 한 채만 갖도록 허용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아니면 수도권에 한 채 그리고 비수도권에 한 채 더 갖기까지 허용하는 것이 맞는지, 그런데 만약 원룸으로 이뤄진 다가구 주택을 한 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몇 채로 보아야 하는지? 이렇게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다가 터져 나온 말이 “아니, 열심히 저축하고 아껴서 적법하게 마련한 사람까지도 집 몇 채 가지고 있다고 죽일 놈을 만들어버리는 게 맞냐? 상속받은 것도 죄냐? 이게 시장경제를 이룬 자본주의의 나라에서 할 짓이냐? 아니, 정부는 보유세든 거래세든 세금을 계속해서 올리는데 정부의 정책독과점과 과세독과점은 선이고, 집 몇 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악이냐? 이런 정책행위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 점점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집 없는 사람의 설움이 얼마나 큰데.” 라는 고성이 터지기 시작한 순간, 사회자는 토론이 원래 논점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적절한 정책을 찾는 것에 국한시키자고 진정시켜야 했다. 하지만 논의가 끝나고 난 뒤 삼삼오오(거리두기 때문에 삼삼사사) 모인 담소시간은 훨씬 더 뜨겁고 활기차 보였다. 당시에 논란이 되었던 것이 정책이라고 다 정책이 아니란 이야기였다.
정부 정책은 시장경제의 기능이 잘 돌아가도록 메커니즘을 만들어주는 것이요, 정말 문제가 있는 부분을 찾아내서 그것을 제거해 내도록 섬세하게 만드는 것인데, 지금은 이것저것 다 무시하고 그냥 과세기준을 급격히 올려 거의 때려잡기 수준의 정책을 만들어 놓는 것 같다는 비판이었다. 마치 과거에 의사가 감기만 걸려도 무조건 항생제를 7일씩 처방하던 그런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거의 때려잡기식 정책이 펼쳐졌고 이제 언론까지 부동산적폐로 편을 나누면서 LH 직원은 거의 전부 도둑놈이 된 듯하다.
이런 이분법적 논리, 부동산이 선인지 악인지를 생각해보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내부정보를 개인적인 부의 증식을 위해 편취한 것은 당연히 정당화될 수 없는 불법행위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부동산 소유 자체를 선악의 잣대로 젤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하는 상황은 정말 위험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부를 늘려가는 것은 거의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속성이기도 하고 사회구성원에게 주어져 있는 기회추구 행위일 수도 있다. 국가 자체도 과거보다 더 ‘부’강해 지려고 하지 않는가? 부동산은 주거용 공공재의 성격뿐만 아니라 부동산시장이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시장재로 보는 것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런 양면성 때문에 의사가 정확히 진단을 해서 곪은 데와 독소를 제거해 내듯이 시장참여자의 부당거래 행위나 과열현상을 정확히 제거해 낼 수 있도록 정책을 펼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이런 정밀성보다는 거의 모든 국민을 물질욕에 병든 중증환자처럼 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이들의 처방은 시장에서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 이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소수의견인 듯하나 정책오류를 다른 관점에서 찾는 경우도 꽤 있다. 정부는 주택가격 상승이 그저 주택부족을 해소하면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주택부족의 원인으로 수도권에 특정 소수가 과도하게 주택을 소유하기 때문에 이것을 강력하게 통제하면 주택가격이 낮아질 것이며, 나아가 부족한 주택을 공공기관이 지속적으로 저가로 공급하면 해소될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지만 그것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단기적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게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현실을 보자. 우리 사회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3~4년 뒤에는 대학의 반이 없어질 위기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같은 방식의 대규모 공공주택 공급은 4~5년 뒤에는 어떤 상황을 만들어 낼까? 거주자 없는 공급과잉으로 정부가 집값 폭락을 유발한 원인자가 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거주자 없는 주택가격상승을 유발시킨 원인자가 될 수도 있다.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정부는 뭐로 설명할 것인가? 즉, 주택가격 상승은 인구와 상관없이도 발생할 수 있다면 말이다. 실제로도 인구보다 시중에 풀린 돈이 너무 많고, 그 돈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안전자산이라고 생각되는 부동산으로 몰리는 경향이 분명했던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안전자산이 집중된 대도시에 또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한다면 시중의 자산가들은 다시 새롭게 만들어진 신규 안전자산에 투자하려 들지 않을까? 아니 자산가들뿐만 아니라 영끌도 또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사실 이것은 현실이었고, 앞으로도 거의 동일한 현실로 충분히 반복될만한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권에 더욱 가성비 뛰어난 주택을 계속 공급한다는 것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부동산투자를 부추기는 거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수도권에 그린벨트를 일순간에 부셔가면서 3기 신도시니 미니 신도시니 하면서 지어대는데 이것을 노리는 사냥꾼이 자꾸 생겨나지 않겠냐는 말이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4~5년 뒤에 우리나라는 ‘자연이 가득한 지방을 가진 자랑스런 서울민국’으로 승화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는 것이다. 뭐 나라도 좁아 터졌는데, 서울민국이면 어떻고 지방이 조금 비면 어떻겠냐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려면 차라리 낙후되고 노후화된 지방을 가능한 빨리 비우고 전부다 서울과 수도권에 모여 살게 만들어야 맞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최고조로 효율성이 극대화된 집약적 국가형성이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외의 지역은 전부다 야생이 살아 숨쉬는 천연자연의 공간으로 만들자! 나, 지금 비꼬는 중이다.
국토부의 역할을 무엇인가?
국토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국토부는 부동산부가 아니다. 국토부는 서울수도권부가 아니다. 국토부라는 명칭 자체가 말하듯이 국가 전체의 국토를 관리하고 균형발전을 추구하여 국민 모두가 어디에 살든 골고루 잘 살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해야 할 역할을 맞고 있다. 왜곡되어 있는 불균형의 요소를 찾아내 불균형성을 해소하고 국가 전체가 골고루 발전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쳐가는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처다. 이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 왜곡의 문제가 심각히 발생하고 있는 것은 모르는 듯 하다. 부동산은 공공재이기도 하지만 시장재이기도 하다. 소모품 같아 보이지만 투자재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면만 보고 그것이 전부인 냥 대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재요 시장재의 가격을 낮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투자재와 시장재의 가격이 적절히 유지될 때 건강한 사회가 형성된다.
잘못된 처방 또는 한 면만 고집하고 있는 처방에 목매달고 있는 정부정책을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예를 들어 전문의가 일상적으로 취해 온 처방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이것은 단순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 전문의들의 의견도 들어보아야 한다. 접근방법을 완전히 바꿔보기도 해야하고, CT를 넘어 MRI를 찍기도 하고, MRA를 찍기도 해야 한다. 그러면 원인이 밝혀지고 해결책이 찾아진다. 이처럼 집 공급하는데, 그리고 집 가진 사람 때려잡는 부동산 정책을 쏟아 붓는 것을 넘어 국토라는 큰 그림을 보면서 정책을 펼칠 줄 알면 좋겠다.
수도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것이 다 있다. 회사도, 대학도, 주택도, 하다못해 놀거리와 볼거리도 그곳에는 다 있다. 이런 곳에 사람들이 돈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어디다가 투자하겠는가? 누군가 나에게 투자하라고 한다면 나도 그곳에 투자하겠다. 다만 문제는 수도권의 빨대효과가 지방의 목을 조르고 있는 현실이다. 만약 지방에도 수도권과 같이 가장 좋은 것을 나눠서 가지고 있게 한다면 부의 편중이나 왜곡된 지가앙등 같은 문제는 훨씬 누그러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분산효과다. 그러려면 지방에 젊은이들이 찾을 만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들어서게 정책을 펼쳐주어야 한다. 대기업도 지방으로 올 수 있도록 세제혜택을 비롯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인프라시설도 더욱 강력하게 구축해야 한다. 세종시가 성공한 모델이요, 혁신도시가 성공한 모델이라고 자평하듯이 그런 혁신도시와 기업도시가 지방에 더욱 많이 더욱 빠르게 확대되어야 한다. 나는 노무현의 균형발전 정신을 계승했다는 지금 정부에서 그와 같은 정신을 발견하기 어렵다. 인구로 꽉 찬 수도권에다 3기신도시를 빼곡히 짓겠다고 얼빠진 정책을 펴는 정부가 무슨 노무현 운운하고 있단 말인가?
도시재생은 어디로 갔나?
문재인 정부가 시작될 때 커다란 정책적 화두는 도시재생이었다. 그만큼 도시재생을 추진하고자 했을 때 학자들이나 정책가들이 공감했던 고민거리는 재개발, 재건축과 같은 사업이 빚어내는 폐해와 폐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재개발, 재건축이 가진 폐단은 민간사업자 주도로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주거 등의 기능이 개선되는 것보다도 돈의 논리에 따라 집값 상승이 더욱 두드러졌고, 가난한 원주민은 치솟은 주거비용으로 재정착은 엄두를 내지도 못하는 형편이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된 대도시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일찍 재건축시장에 진입하려고 난리를 쳤었지만 사업성이 떨어지는 지방과 시골에서는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사업조차도 진행되지 않는 답보만의 연속이었다. 이런 격차의 문제는 빈부의 갈등을 넘어 사회적 불평등, 지역간 불균형의 갈등으로 나타났고 주거에만 초점을 맞춰 이뤄진 재개발 지역은 결국 도시의 자족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제2의 초고밀 주거밀집지역만 양산해 버렸다.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며 해결방안을 고민했던 것이 도시재생이었고 정부도 이것을 제1의 국토정책이요 대표공약으로 내세웠다. 무엇보다 도시재생을 통해 ‘돈’에만 눈을 고정시키고, 귀를 세운 사람들의 사고를 조금이라도 바꿔 보려는 정책적 도전도 있었다. 또한 관주도형 또는 민간사업자 주도형 개발을 넘어 지역주민과 관 그리고 민간의 삼자가 수평적 협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이루는 구조로 바꾸고자 하는 도시정비방식의 대전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때 추구했던 그 가치를 얼마나 어떻게 실현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도시재생의 가장 작은 가치 중 하나였던 지방도시의 정주환경을 정말 바라던 데로 그렇게 개선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곳에 살던 분들이 계속해서 그곳에 정착하고 나아가 새로운 분들이 도시로부터 역류하게 만들고 있는지 묻고 싶다. 무엇보다 정책적 의지를 가지고 정부가 이를 제대로 추진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이뤄지도록 정부는 세심히 관찰하고 정책적 도움을 일관성 있게 베풀었는지도 묻고 싶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추진한 도시재생을 통해 그렇지 않게 만든 요인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놓칠 수 없는 가치, 국토균형발전 그리고 LH의 역할
요즘 LH를 때려잡느라 정신이 없다. LH에 다니는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자신들이 지능형 투기꾼, 지능형 범죄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아 어쩔 줄 모르겠다고 한다. 이렇게 때려잡으려면 차라리 LH를 없애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때려잡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LH를 국토균형발전의 기구로 재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수도권이나 대도시와 관련된 일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고 중소도시 규모 이하로 낙후지역의 발전과 도시 및 농어산촌 관리와 재생에 초점을 맞춘 조직으로 개편해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관할부처도 국토부 단독의 관할을 받는 기구가 아니라 국토부, 농축산부 그리고 해양수산부의 공동관할을 받거나 지역균형발전위원회의 부속실행기구로 만들어 공간과 관련하여 균형적 발전에 기여하는 기구로 개편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또한 이번에 드러난 문제를 기반으로 LH가 민간개발회사처럼 부동산 개발사업으로 벌어들였던 돈은 지역불균형 극복을 위한 기금으로 재투자될 수 있도록 하고, 앞으로는 제도적 장치를 갖춰 이와 같은 유사행위가 발생할 때는 모든 수익이 지역발전기금으로 재투자되도록 할 필요가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부동산 문제를 특정투기꾼만의 문제로 몰아가는데 몰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과거정부를 비롯해 지금 정부까지 정책오류도 일조했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남 탓만 할 것도 아니다. 대도시에서 대도시민만을 위한 대도시의 잔치로 끝나버리는 정책이 계속 이어진다면 헌법전문에 나와있는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는 즉, 국민 누구나가 어디서 살든 골고루 행복하게 사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가치는 결코 실현할 필요도 없는 가치가 될 것이다.
이 마지막 말을 잘 새겨보면 좋겠다.
황지욱 회원은 전북대학교 도시공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도시계획가가 궁극적으로 어떤 ‘정체성’과 ‘자화상’을 지녀야 하는지를 늘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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