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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글] 12월의 기억

| 서용운 회원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고 우울해 하기 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이해인 수녀의 ‘12월의 기도중에서)을 가져야 하는 12월입니다.  한 장 남은 달력이 마지막 잎새처럼 매달려있습니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오래 전의 기억을 꺼내서 거울처럼 들여다보곤 합니다. 벌써 40년도 더 지난 기억입니다만, 저에게는 소중하기만 하지요.


학원에 대한 기억입니다. 입시학원 아니고, 기타 같은 특기 적성을 배웠던 학원도 아닙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함께했던 야학이지요. ‘야학이라는 말을 기억하시는 분들 별로 없겠지요. 학원의 이름은 운장산에서 따왔지요. 그리하여 운장학원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일터로 나가야 했던 이들을 모아서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고 검정고시를 치르게 했던 학원이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 4학년이 되기 전까지 3년 동안 학원의 선생으로 참 열심히 했습니다. 학원이 있던 곳은 예수병원에서 근영여고 넘어가는 뒷길 꼭대기에 있었지요. 원래는 양재학원으로 쓰던 네 칸짜리 건물을 선배들이 마련해서 두 칸은 교실로 한 칸은 교무실로 다른 한 칸은 숙직실로 썼으니 꽤나 규모가 갖추어진 건물이었습니다. 열 명 남짓한 학생들 숫자와 비슷하게 선생들이 각기 자기의 전공에 비슷한 과목을 가르치고 함께 웃고 울고 지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교무실 벽에 붙어있는 운장학원 설립 취지문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가난은 결코 죄일 수 없다. 더군다나 순백의 어린 영혼들에게 무지의 처형을 내릴 수는 없다. ...” 이렇게 시작되었지요. “비사벌 옛 터전 요한대 위에 참사랑 참마음으로 모여......” 교가도 있었습니다.


제가 야학에 거의 투신하게 된 이유는 일종의 저만의 사명감이었지요. 제 기억으로 당시에 대학생은 고등학교 졸업한 학생들 중 18퍼센트 정도였고 더군다나 학비가 싼 국립 대학생은 10퍼센트가 안되었습니다. 그런 통계를 기억하는 것은 그 만큼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런 혜택은 누리라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누라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운장학원을 알게 되었고 꽤나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꽤나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121일은 학원 개교기념일입니다. 저도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꽤나 여러 학교를 다녔습니다만, 개교기념일을 기억하는 것은 이 날이 유일합니다. 언니 오빠 교사들과 학생인 동생들이 함께 연극도 노래도 시도 쓰고 꾸미고 연습해서 그 날을 준비했습니다. 졸업한 선배들도 선물 꾸러미나 후원금 봉투를 가지고 왔습니다. 대학 정년 퇴직 하실 때까지 지도 교수를 맡으셨던 철학과 이교수님께서 기념사를 하셨고, 오랫동안 학원 운영비를 후원해주셨던 소아과 박원장님께서 축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운장학원 설립 취지문을 낭독하고 교가를 부르면 기념식은 끝나지요. 그 뒤에 벌어지는 뒷풀이는 말 그대로 잔치였습니다. 여학생들이 김치찌개를 끓였고 전을 부치고 떡을 했습니다. 거기에다 막걸리를 서너 통 나눠마셨는데 해마다 부족해서 후배들이 한밤중에 문 닫은 가게문을 두드려서 더 사다가 마시면서 웃고 떠들고 얘기하며 거의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숙직실에서 칼잠을 자고 일어나서 관통로 뒷길에 있는 삼백집 콩나물국밥까지 나눠먹으면 우리들의 12일 개교기념식은 끝이 났습니다. 가난하고 추웠고 어설펐던 그 때의 기억들이 수많은 세월이 흘러갔어도 저한테는 12월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살아야 된다는 생각도 함께 합니다.


한국 교회가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심지어 조롱을 당하기까지 하는 것은 어쩌면 가난을 도둑맞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너무 가진 것이 많아져서 그것 때문에 가난했던 예수를 따라갈 수 없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가난을 도둑맞았다는 말은 박완서 선생의 소설 제목에서 빌려왔습니다.

요즈음 오래 전 책에 대한 기억도 다시 한 번 더듬어보고 있습니다. 지난 늦가을에 박완서 선생이 쓴 도둑맞은 가난을 읽었습니다. 제목이 참 괜찮지요?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이 돈 받아라. 이 돈으로 너도 이 더러운 가난에서 도망쳐버려!” 한 여자는 그 돈을 한 남자 얼굴에 뿌려대며 악을 쓰며 소리 질렀지요. 그러다가 혼잣말로 부자들이 탐욕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가난까지 탐낼 줄은 미처 몰랐다.” 다시 읽어도 그 울림은 여전합니다.


12월의 기억은 개교기념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지요. 정말 가난했고 힘들었던 어릴 적의 성탄절 기억도 아직 까지 새롭습니다. 작은 것도 감사할 줄 알았고 나눌 줄 알았던 때였습니다. 어른들은 아낌없이 헌신했고 아이들은 마냥 설레었습니다. 가난은 불편하기는 하지만 불행한 것은 아닐 뿐더러 결코 죄일 수는 없겠지요.

12월은 금년 한 해 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 전의 12월도 한 번 추억 해 보는 달이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지나온 내 기억 속에 앞으로 살아 가야 할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서용운 목사는 전북대학교와 한신대학원을 졸업하고, 전주 임마누엘 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metase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