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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글모음/› 회원기고

[회원의 글] 아이들이 나를 초대해주었다


글 이주희 회원



01.

저기 마이쭈 온다! 마이쭈!”

쭈희~ 안녕!”

우리 1학년 아이들이 나를 만나면 하는 말이다. 주희라는 이름이 쭈희로 그리고 쭈희는 본인들이 좋아하는 마이쭈로 자연스레 이어져서는 마이쭈라는 애칭까지 만들어 나를 열심히 놀려댄다. 귀여운 녀석들...


어느 날 퇴근길 학교앞 마트 앞에 우리반 아이가 서 있길래 반가워 차창을 내리니 아이는 나를 보고! 마이쭈다!!”한다. 그 때 뒤쪽에서 나오시던 아이의 어머니께서 굳은 표정으로 ! 너 그게 무슨 말버르장머리야! 선생님께 그렇게 하면 안돼!”하시며 큰소리로 혼을 내시는 거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던 아이도, 장난칠 준비가 되었던 나도 순간 얼어붙었다. 마침 내 차 뒤로 차들이 오고 있어 그냥 짧게 웃으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연우야 내일보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우리들 사이에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애칭과 친구처럼 말하던 일들을 생각하여보았다. 한 아이가 텃밭에 다녀오는 나를 보고 주희 안녕~”하며 창 너머로 손을 흔들어서 나도 하영 안녕~”하고 손을 흔들어줬던 일이 시작이었던 것도 같다. 그 후부터 쉬는 시간, 점심시간, 지나가다 만나면 마이쭈 어디가?”“마이쭈 내일 만나~.”하면서 친구한테 하듯이 말을 건넸는데 신기하게도 수업 시간 만큼은 꼬박꼬박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요?”, “선생님, 저 다했어요.”이런다. 그래서 딱히 이런 우리들 사이의 오가는 말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걸 지켜보는 어른들은 선생님에게 반말하고 이름 부르고 하는 것이 예의 없이 느껴지는 것이고 더 나아가 예의 없는 사람으로 자랄까 하는 걱정까지 이어지는 것이었다.


나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주위의 어른들에게 어떤 논리로 이해를 시켜드려야 하나 하고 여러 날 골똘히 생각하여보았다. 그런데, 내 마음에 떠오르는 말은 이것 뿐이다.

아이들이 저를 아이들의 세계로 초대해주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저를 사랑해주고 있어요.’

 



02.

얼마 전 오후 시간, 낯선 번호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통. 받아보니 어떤 아이가 가느다랗고 떨리는 목소리로 선생님~~”하고 부른다. 누군지 몰라, “누구야?”하고 물으니 저 희민이에요.”한다. 희민이는 작년과 재작년 2년 동안 가르친 지금 중1이 된 제자다.

전화번호 바뀌었어? 샘이 저장한 번호가 아니네.”

, 네네하고 급하게 대답한다. 분명하고 우렁 찬 목소리의 희민이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갑자기 이 녀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런다.

선생님... 선생님 사랑해요

예상치 못한 한마디에 녀석과 내가 함께 지나온 2년의 시간이 한꺼번에 달려오는 것만 같았다.

희민아, 선생님도 희민이 사랑해. 희민이랑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희민이가 샘 제자여서 고마워. 샘도 희민이 좋아하고 사랑해.”

이렇게 답을 하면서 울컥해졌다. 희민이는 엄마, 여동생과 떨어져 시설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나랑 함께 했던 5학년 첫 해에는 마음가득 했던 분노와 원망과 아픔들을 꽁꽁 숨기고는 혼자 끙끙 앓다가 어느 날 화산 폭발하듯이 터져 말도 못할 갈등을 겪기도 하였었다. 두 번째 해인 작년 학기 초에는 네 마음 가는대로 어떤 말도 좋으니 샘에게 후련해지게 말하면 좋겠다, 샘이 아무것도 도와줄 수도 없고 해결도 못 해 줄 테지만, 네 마음 시원하게라도 해주고 싶다, 작은 것도 좋고 속상한 것도 좋고 다 좋다, 샘에게 말이라도 해보면 어떠냐는 부탁을 해보았었다. 녀석이 자신에게조차 닫혀 있던 마음을 어떻게 열고 나올 수 있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그 후 별 도움도 안 되는 나에게 찾아와 울기도 하고 소리치며 하소연도 했다가 깔깔깔 웃긴 이야기도 하고 바깥 활동을 나갈 때는 내 손을 잡고 걷기도 하였다. 그리고 졸업식날은 서로 꼭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런 희민이가 갑자기 전화해서 떨리는 작은 목소리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니 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아니 될 수 없었다. 이런 말을 한 후 짧지만 분명한 침묵이 있다가는 더 떨리는 목소리로, “선생님, 정말 정말 사랑해요.”하고는 우는 것이 아닌가. 나도 왈칵 눈물이 나서 희민이가 샘이 생각도 못했는데 이렇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줘서 감동받았어.”하였는데 이 녀석은 아예 엉엉 운다. 그때,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희민이 도덕 선생님이에요. 지금 도덕시간인데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고 사랑한다는 대답을 받는 미션을 하고 있었어요. 애들아, 이렇게 감동적인 통화를 해주신 선생님과 희민이에게 큰 박수 쳐주자.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전화기너머로 아이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들려오고 희민이는 선생님 하면서 우는 것이다. ~ 이런 생각도 못한 순간을 선물처럼 받고는 나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면서 울다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살아가면서 많은 잘못과 실수를 하루도 빠짐없이 저지르면서도 내가 옳다, 내가 맞다, 내가 깨끗하다 하는 사람이다. 머릿속에는 나쁜 생각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오고 마음 곳곳에는 삐뚤어지고 뾰족뾰족한 가시들로 금방 온기를 잃고 차갑고 뻣뻣한 죽은 마음이 되는데 아이들은 그런 나를 사랑해주고 자신들의 세계로 기꺼이 초대해주고 불러주며 그들의 따뜻한 온기를 서슴없이 나에게 전해준다. 나는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나를 사랑해주고 그 사랑을 나는 받아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사랑해주어서 나는, 삐뚤어져가다가도 꼿꼿하게 허리를 세울 수 있는 것이고 온기를 꺼뜨렸다 하더라도 다시 작은 불빛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었다는 부끄러운 착각을 지운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를 사랑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다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