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단 한권의 책
속수무책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느냐 묻는다면
척하고 내밀어 펼쳐줄 책
썩어 허물어진 먹구름 삽화로 뒤덮여도
진흙참호 속
묵주로 목을 맨 소년병사의 기도문만 적혀 있어도
단 한권
속수무책을 나는 읽는다
찌그러진 양철시계엔
바늘 대신
나의 시간, 다 타들어간 꽁초들
언제나 재로 만든 구두를 신고 나는 바다절벽에 가지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느냐 묻는다면
독서 중입니다, 속수무책
생각은 저만큼 가 있는데 몸은 밍그적대고 있을 때, 생각은 여기까지인데 입은 이미 놀려지고 있을 때, 깊으면서도 명쾌한 답을 기대하는 아이가 초롱초롱 쳐다볼 때, 속수무책을 읽는 중인 저는 난감합니다. 세상에 제일 많이 있을 것 같고, 긴 인생 동안 사람들이 늘 펼쳐놓고 있을 법한 책, 속수무책!
꼭 답이 있고 길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문자읽기에 익숙해져 무심결에 종이책을 집어들게 됩니다. 참 좋은 책이다 싶은 글은 이런저런 되새김질 끝에 지쳐, 도리어 다 못 읽고 한쪽으로 치우게 되고, 딱히 마음에 안 맞는 책은 뒨정뒨정하다 끝까지 읽게 되는 아이러니도 있습니다. 사실은 책도 속수무책 제 선택만 기다리는 꼴이지요.
삶이라고 딱히 명확한 선택과 방책이 있고, 또 그대로 결말이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요. 굴리고굴려 뾰족한 수를 찾아도 엉뚱깽뚱헌 결과가 나와 다시 속수무책이 되는 경우도 있고, 또 살다보면 속수무책이 꼭 속수무책은 아니었구나 싶은 때도 있지 않나요? 속수무책, 말 그대로 손이 묶여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순간입니다. 그 순간이 지나면 무언가 나와 또 살아지는 것, 그래서 늘 읽는 중인 책이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 | 이형월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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