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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글] 살색의 추억

글 | 서용운 회원



  8분 46초.

  달리기나 수영, 혹은 싸이클 경기의 기록이 아닙니다. 한 사람을 다른 한 사람이 무릎으로 목을 졸라서 죽이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얼마 전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백인 경찰 한 사람이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 한 사람의 목숨을 그렇게 짓밟았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10분이 조금 넘는 동영상을 굳이 찾아서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에서 인용)으로 두 눈 똑바로 뜨고 보았습니다. 그 백인 경찰은 왼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전방을 똑바로 응시한 채 일을 저지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어릴 적 닭 잡는 것을 보는 듯했습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서 밟고 있으면 날개를 몇 번 퍼득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졌지요. 한 사람의 목숨이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 백인 경찰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미 제국주의자들의 모습, 덧붙이자면 “누구든 어떤 나라든 내 말 안들으면 이렇게 되는 거야, 알겠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무릎에 짓눌려 지내왔던 우리 역사와 선조들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민중을 개나 돼지로 여기며 마구 짓밟고 뭉개왔던 이 땅의 독재자들의 모습도 바로 저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시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얼마나 악마의 모습을 또 감추고 살고 있는지도 함께 보았습니다. 그렇게 하루 정도 지나면서 문득 어릴 적 크레파스에 대한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12색 크레파스만 가지면 모든 것을 다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아마 12살 때쯤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24색 크레파스를 가졌을 때는 꿈속에서도 그림을 그렸을 때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 가장 많이 쓴 색이 검은 색과 살색이었는데 왜냐하면 가장 많이 그렸던 것이, 정확하게 말하면 그리도록 선생님으로부터 주문 받은 것이 가족들이었으니까요.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다섯 형제들이니 옷이야 다른 색깔로 칠할 수 있었겠지만 머리하고 얼굴은 그럴 수가 없으니 늘 머리 색깔하고 살색은 모자랐던 생각이 납니다. 어디에서 그림 그리기 대회한다고 해서 그 핑계로 공부 시간 빠지고 다녔던 적도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해 전에 살색에 대한 낯선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살색이라고 부르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는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살색이겠지만 동남아 사람이나 흑인에게는 살색이 아니겠지요. 백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고요. 20년 전쯤 외국인 노동자 4명과 김아무개 목사가 살색이라는 말은 ‘평등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해서 진정을 냈고 그 결과 살색이 아니라 연주황색으로 되었다는데, 그 후 몇 년이 지난 후에 초중등학생 몇 명이 연주황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어려워서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 된다고 또 진정을 냈습니다. 그래서 연주황 대신 ‘살구색’이 되었다는 낯설지만 참신한 이야기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참치’ 독자께서는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하시겠지요. 차별과 편견 그리고 오만은 이렇게 가깝게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최소한의 권리가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것을 인권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예를 들면, 인종이나 피부색, 성이나 언어, 종교나 정치적인 것 때문에 차별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어찌 그것 뿐이겠는지요. 재산이나 장애, 결혼 여부, 이성애냐 동성애냐 하는 것 때문에도 차별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만, 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꽤나 멀어 보입니다. 


  서두에 말한 ‘8분 46초’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살색에 대한 추억이 생각난 것이지요. 먼 곳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크게 분노해야겠지만, 가까운 곳에서의 일에도 작고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편견은 계속해서 더 많이 찾아내야 하고 더 진정되어야 하고 더 많이 철폐되어야 어떤 분이 말한대로 ‘사람 사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에는 목사 티를 조금 내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예수의 모습을 한 번 말해보라고 누가 한다면 이런 것이지요.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누가복음 7장 34절) 모름지기 거룩하다고 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만나는 사람이나 먹고 마시는 것 쯤은 구분하고 살아야 자신이 드러나는 법인데 이 분은 아예 그런 것을 무시하셨지요. 


  의인이라 불리는 사람보다는 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함께, 유대인보다는 이방인들과, 주류들보다는 비주류들과 함께 먹고 마셨지요. 오죽하면 “마구 먹어대는 사람”이라고까지 했겠습니까. 예수의 이런 행보는 다분히 의도적이지요. 누구나 한 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고 천국이라는 퍼포먼스이지요. 색으로 말하면 검은색이든 살색이든 흰색이든 아예 무시해버린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 땅의 교회들이 본받아야할 예수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차별과 혐오를 부축여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 글의 제목을 ‘살색의 추억’이라고 했는데 끝까지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나에게도 그런 편견과 차별의 추억이 있지 않았는가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며. 






* 서용운 목사는 전북대학교와 한신대학원을 졸업하고, 전주 임마누엘 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metaset@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