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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2월과 6월 사이

글 | 이주희 회원



  


「2월」

  새로 맡을 학년을 생각하다 교직경력 20년 동안 무려 14년을 5․6학년만 해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고학년을 많이 했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그것도 1학년은 딱 한번. 깊은 고민없이, 그렇다면 이번엔 1학년 한번 해봐야겠다 생각해 올해 1학년을 맡게 되었다. 1학년 한다고 큰소린 쳤는데 아는 것이 없다. 1학년 아이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또... 모두 모르겠다. 1학년을 오랫동안 열심히 하신 선생님에게 절절 매달리며 살려달라는 구원요청을 하였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1학년을 해나간 기록들을 빼곡하게 적어 둔 오래된 공책들을 보여주시며 하나하나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열심히 받아 적고 고개를 끄덕거렸다가“네~에”하며 대답을 했다가 밤늦도록 선생님을 따라 율동도 노래도 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배웠다.



「3월」

  2월 동안 열심히 하나하나 배워가며 녀석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로 개학은 미뤄졌다. 아~ 꼼지락거리는 요 녀석들을 못 본다니, 텅 빈 교실에서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얼굴도 모르는 우리반 아이들은 모두 9명. 학교 근처 마을에서 사는 5명과 멀리서 차 타고 오는 4명, 전주 시내 전역에 위치한 이 녀석들과 나를 어떻게 연결해야 할 것인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얼굴을 보고 시간을 함께 보내도 1학년 초짜담임이 잘할까 말까 하는데 만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개학만 미뤄지고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다. 교과서 준다는 핑계로 아이들 집을 찾아가 만나보았다. 역시 이상한 나라에서 툭 떨어진 낯선 마스크선생님을 아이들이 좋아할 리 없다. “안녕~”하고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도 엄마 뒤로 자꾸 숨는 아이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거울을 보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나, 애들의 반응은 당연한 거다.



「4월」

  아이들에게 전화를 건다. 부모님들과 통화 후 아이들 바꿔주세요 하면 두 부류다. 안받는다고 하는 아이들과 아무 말도 안하고 듣고만 있는 아이들. 그러니깐 결과적으론 다들 나에게 말을 안 한다는 거다. 


  4월 20일 온라인 개학이 정해지면서 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아이들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데 1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한다는 난관앞에 서게 된 것이다. 일단 4월 16일 아이들 집으로 찾아가는 입학식을 하였다. 미리 부모님들과 시간약속을 하고 입학식 선물과 꽃다발, 사진 찍을 현수막도 준비하였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웃으라면 웃고 받으라면 받는 아이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함께 사진도 찍고 우리 학교에 입학한 거 축하해, 우리반이 되어 너무 좋아라는 말을 했을 때 서로 오간 눈빛과 웃음, 무언지 모를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나는 것만 같다. 좋다!



「5월」

  1학년이라서 1교시와 2교시는 EBS방송으로 아이들이 공부를 하였다. 나머지 시간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였다. 나는 요즘의 대세라는 것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유튜브 뿐 아니라 TV도 안보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사람인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아이들과 가느다랗게 생긴 연결 끈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학급 밴드를 하나 만들고 수업을 간단하게 촬영하여 올릴 계획을 실행하였다. 듣고 또 들어도 어색한 내 목소리, 버버벅 거리는 말들, 찍고 또 찍어도 어렵다. 그래도 지금으로서의 최선은 이것밖에 없으니 해봐야지 않나 싶어 간단한 동영상을 계속 찍었다. 1학년이라서 대부분 만들기나 그리기 등의 조작활동 중심의 수업이라 짧게 과정중심으로 찍을 수 있어 나았다. 아이들은 밴드에 올린 영상을 보고 본인이 한 학습꾸러미를 사진찍어 카톡으로 보내왔다. 그렇게 서로 카톡으로 메시지도 이모티콘도 왔다갔다 하면서 별거 아닌 하루하루가 쌓여갔다.


  드디어 5월 27일 아이들이 등교를 하게 되었다. 우리반 9명 아이들이 1학년 교실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서로 마스크를 쓰고 있어 완전한 얼굴을 마주할 수는 없지만 눈만 마주쳐도 느껴지는 우리들 사이의 끈. ‘그래, 우린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지.’라는 우리라는 테두리가 더욱 느껴져 너무 좋다. 아이들과 나 사이 서먹거렸던 것들은 이미 지나가고 금방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이 느낌. 이걸 뭐라 해야 하나?



「6월」

  아이들을 기다려온 텅 빈 텃밭을 보여주며 무얼 심을지 고민이다는 말을 꺼내니 아이들은 딸기요, 수박이요 하더니 오렌지요 바나나요 포도요 한다. 조금 늦게 심는 것이라 시장 모종가게 사장님과 긴밀히 의논한 끝에 수박과 참외, 호박을 사 학교에 가져갔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좋다좋다 한다. 서로 뽑기를 해서 심을 것을 정하고 관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한줄 느낌도 끄적거린 후 텃밭에 심기를 하였다. 1학년이어서 잘할까 싶었는데 녀석들은 꼬마농부 기질이 있다. 막대로 구멍도 쑥쑥 잘 내고 모종도 야무지게 빼서 심고는 흙도 두둑하게 덮어준다. 제법이다. 그리고 더욱 좋았던 거는 밭에 있던 벌레들을 보고도 와~ 개미다! 거미있다! 선생님 지렁이요 한다. 어디서 이렇게 멋진 녀석들이 우리반으로 찾아온 거지?







  실은 마음이 자꾸만 바빠지려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등교수업이 어느 날 갑자기 원격수업으로 바뀌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물론 마스크를 하루 종일 해야 하는 어려움으로 활동의 제약으로 아이들은 지키고 선생님은 통제 관리해야 할 수많은 것들로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 힘든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어려움 중에도 잊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서로 만나지 못했을 때 그리웠던 마음, 초등학생이 되어 새 가방 메고 얼른 학교에 가보고 싶다는 아이들의 목소리, 아이들 한명 한명의 이름을 마음에 새겨두며 했던 작은 다짐들, 귀하고 소중한 별 거 없던 일상들을 말이다.


   더운 6월의 바람이 교실 창문을 넘어 내 마스크 안으로 들어온다. 잠시 숨을 고르며 2월과 3월, 4월과 5월이 어느덧 6월이 된 지금의 시간으로 이어져 흐르고 있음을 생각한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다시 시작한다.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 지금 나와 함께 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