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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회원기고

[교단일기] 작은 기도

글 | 이주희 회원



  잘 알고 지내온 선생님으로부터의 전화 한 통

  “나 지금 이 전화가 자기한테 하는 마지막 전화일지 몰라.”하시며 우셨다.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걸 아는지라 덜컥 마음이 내려 앉았다.“병원에서 2-3일이면 끝난대. 바로 병원으로 들어오래. 그런데 나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는 데 우리 아들, 우리 아들 어떻게 하냐. 그걸 놓고 가려니깐 마음이 너무 아파. 이 세상 바람막이 해 줄 사람 없어 우리 아들 어떻게 해. 자기가 가끔이라도 우리 아들한테 전화도 해주고 그래 줘.” 울면서 마지막 부탁을 하는 선생님은 엉엉 우는 나에게 아들에게 전화라도 문자라도 한번씩 해달라고 하셨다. 


  집 근처 편백숲 산책길로 남편과 저녁이면 자주 산책을 나간다. 겨울이 지나가고 있는 산자락에는 진달래 꽃이 피고 따스한 볕도 든다. 그 산책로로 들어서는 곳에 아주 오래된 빈집이 하나 있는데 얼마 전 우연히 내려다본 그 집 마당에 통통하게 살진 하얀 강아지 2마리가 장난을 치며 노는 것이었다. 어찌나 그 모습이 예쁘고 귀엽던지 보다가 어떻게 그 집에 들어갔는지 엄마개가 누구인지 자연스런 궁금증이 생겨났다. 남편은 겨울에 그 산책길을 돌아다녔던 삐쩍 마른 하얀개 2마리 이야기를 꺼내면서 여기에 새끼를 낳았나 하였다. 역시나 잠시 후 뼈가 앙상히 드러난 젖이 불어 있는 엄마개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모습이 강아지들과 너무도 달라 눈물이 핑 돌았다. 강아지들은 마치 사람이 정성스레 키운 것처럼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는데 엄마개는 누가 봐도 뼈뿐이다. 추운 겨울 동안 새끼를 낳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 먹고 새끼들에게 젖을 먹였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다음 날 반짝 추위로 아침이 꽁꽁 얼었는데 베란다 너머 창으로 엄마개가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그날 퇴근하고 돌아와 음식을 챙겨 남편과 함께 빈집 주변에 놓아두었더니 엄마개는 한참 꿈쩍도 않고 밥을 먹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오래된 약국이 하나 있다. 그 약국은 낮에는 문을 열지 않고 저녁부터 밤까지 문을 열어 아이들이 갑자기 밤에 아플 때면 그 약국에 가곤 하였다. 그러면 약사님은 약을 주시면서 “이 약 먹여봐. 그리고 혹시 다시 토하면 약하고 물 조금해서 한번 더 먹여봐. 그럼 절대 안 토하고 좋아질거야.”라는 말씀을 꼭 해주셨다. 아이들은 꼭 병원 문 닫을 때를 알아서 더 많이 아픈 것만 같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동동 발을 구를 때 해주시는 그 확신에 찬 말 한마디. 그 말을 들을 때면 나아지고 좋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고 동동거리던 마음도 잦아드는 걸 느끼곤 하였다. 얼마 전 우연히 남편이 그곳에서 마스크를 사왔는데 약사님께서 마스크 가격을 잘못 팔아 돈을 돌려드리려고 갔다 와서는 약사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약사님께 “마스크를 잘못 팔아서 속상하셨죠.” 라며 이야기를 했더니 약사님께서 빨개진 눈으로, “내가 그날 마스크를 잘못 판 거는 괜찮은데... 우리 딸, 캐나다로 간 우리 딸에게 큰 일이 있어......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너무 비싸니깐 중고폰을 알아봤나봐. 그랬는데 중고폰 사러 갔다가 그 지역이 우범지역이라서 나쁜 사람들 만나서 죽을 뻔 했다가 겨우 살아서 돌아왔다고 연락이 왔어. 그래서 내가 정신이 하나도 없고 이렇게 눈물만 나.”


  이 세상 혹독한 찬바람을 오롯이 맞으며 힘들고 시린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 흐르는 절절한 사랑과 탄식과 애태움. 아! 어떤 말로 어떤 것으로도 표현 못할 이 아픔들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눈을 감고 기도하였다. ‘이 모두를 덮어 줄 따뜻한 이불이 있는지요?’라고. 그랬더니‘사람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덮어 줄 크고 따뜻한 이불이 있다’ 하셨다. 나의 생각으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눈을 감고 기도하였다. ‘그 이불로 혹독한 바람에 시리고 힘든 그들을 덮어주시고 그들에게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세요.’

 

  사람이 감당 못할 크나큰 일들 앞에서 할 수 밖에 없는 건 기도.

  먹먹해지는 마음을, 자꾸만 나는 눈물을 닦으며 병원에 가신 선생님 아들에게 편지 한통 써 보냈다. 그리고 저녁즘에는 따뜻한 먹을 것을 챙겨서 엄마개에게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