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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시] 허락된 과식 - 나희덕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햇빛이 가득한 건


근래 보기 드문 일


 



오랜 허기를 채우려고


맨발 몇이


봄날 오후 산자락에 누워 있다



 


먹어도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햇빛을


연초록 잎들이 그렇게 하듯이


핥아먹고 빨아먹고 꼭꼭 씹어도 먹고


허천난 듯 먹고 마셔댔지만



 


​그래도 남아도는 열두 광주리의 햇빛!


 







 



날이 좋다, 꽃도 환하다, 눈이 부시다, 근 몇 년 사이 보기 드문 참 좋은 날들이다. 이 모든 것은 햇빛 덕분이다. 봄은 햇빛을 먹고 자란다.


창 밖 근사한 풍경은 움직이는 정물화다. 사람 세상은 끝 모를 난리법석 속에 멈춘 듯한데, 자연 세상은 조용히 큰 변화를 가져와 화려함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는 말은 맞지 않다. 멈춘다고 다 보이지 않는다. 보려고 해야 보이는 것이다. 마음이 없으면 보이는 것도 없다. 멈춘 세상에서 나에게 무엇이 보이는지,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보아야하는지 잘 더듬어 보자. 그래야 내가 보이고 세상이 보인다. 넘치도록 남아도는 햇빛이 잎에게는 늘 모자랄 수 있음도 비로소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