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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회원기고

[교단일기] 부치지 않은 편지

글 | 이주희 회원


고3이라는 시간을 건너온 너에게


정원!

오늘은 너와 서울 가는 버스를 타고 루시드폴 공연을 보러 다녀왔지. 함께 신촌의 분식집도 가고 빙수 먹고 덜덜 떨면서 돌아도 다니고 또 공연장 가는 길을 잘못 들어 올라간 세브란스 암병동 에스컬레이터에서 컬투 김태균을 보고는 연예인 봤다며 웃기도 했지^^. 


루시드 폴 공연 첫 곡 ‘눈 오는 날의 동화’라는 피아노곡이 흘러나왔을 때 우린 서로 눈짓했지. 첫 곡으로 나올 줄 알았다며. 화려하지도 않고 담담히 노래와 연주만 가득한 조용한 공연을 졸지 않고 잘 듣더구나. 너와 함께 노래를 듣는 동안 내 안에 찾아든 건 다름 아닌 차갑고 깨끗한 빗방울이었단다. 차가운 빗방울은 나를 후두둑 깨우고는 그동안 마음과 생각을 뒤덮었던 먼지들을 씻겨주었지. 엄마는 수능 끝나고 빈손으로 있는 너의 시간을 옆에서 보면서 많은 생각과 감정이 수십 번 오고 갔었다. 그 시간 동안 괜찮다는 말도 너에게 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깐 그냥 너를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부족한 엄마의 마음에 드는 생각들은 조바심을 만들었다가 두려움을 만들었다가 하더구나. 너에게로부터 온 어느 날 아침 편지.


“엄마~! 저는 나무싹을 틔우려고 물만 주고 거름만 많이 줬지 정작 무슨 열매 씨앗을 심었는지는 하나도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슬프기도 하고 화도 나고 억울하고 후회가 되기도 하고 그래도 계속해서 생각해보니까 주님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라고 기회를 주신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좋아하는 거, 하고 싶은 것 찾아보려고요. 그러고 나서 생각해볼게요. 다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편지를 오랫동안 읽고 또 읽으며 내가 가진 조바심과 두려움을 이젠 걷어버려야겠다고 생각을 했어. 그리고 너처럼 오래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단다. 우리의 삶의 방향은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해서. 한 번도 교사를 생각해본 적 없던 엄마가 교대에 간 것은 외할머니 때문이라는 생각을 이 나이 먹도록 했었는데 아니더라고, 그걸 그렇게 되도록 둔 나의 자조적인 성격 때문이었어. 외할머니의 의견을 반대하지 않았고 마음으로만 원망했으니깐.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생각지도 않은 길에 들어서 걷다 보니 이것도 길이 되어 이렇게 즐겁고 좋으니 말이다. 이 오묘함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 너에게 교대에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너가 당당히 했던 말이 귀에 쟁쟁하다. ‘엄마 나는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아. 그저 어려서부터 엄마랑 아빠가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막연히 생각했었던 거 뿐이지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아니야’라는 그 말이 불확실한 시대에 좀 더 안정된 길을 가길 원하는 부모의 마음에 조바심과 두려움을 만들면서도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확신에 찬 그 목소리가 정말 멋졌단다.


그러고는 생각했지.

삶은 내가 이쪽을 바라보고 가면 그게 길이 되는 것이고 또 저쪽을 바라보고 가면 그것 또한 길이 된다는 것을 말이야. 그리고 그런 것들이 우리 삶의 심장을 뛰게 한다는 것과 잘 닦여진 길을 가야 한다고 믿게 되어버린 엄마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단다. 

그래, 공연 중에 나온 노래 가사처럼 걷다 보면, 길을 걷다 보면 우리만의 길이 되고 걷다 보면 세상 멋진 길이 되는 거였지. 우리 삶이라는 건.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다시 공부를 해보겠다는 말을 하는 너의 목소리. 그 너머 차창으로 다시금 정신을 차리게 하는 찬 겨울비가 창에 빗금을 그으며 내렸지. 그 시간, 내 어지럽던 생각과 마음도 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것 같았단다.


나의 딸 정원! 

니가 태어난 순간부터 너를 통해 느끼고 배우는 삶의 더운 숨결들로 엄마는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고맙다.

걷다 보면 길이 되는 우리 삶의 순간들을 기꺼이 맞이하며 너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엄마가 부치지 않을 편지 적어 본다.


2019년 12월 29일 

내리는 겨울비와 함께 애정을 담아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