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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글] 며느리, 웃기고 자빠져라!

글 | 서용운 회원


지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제 작은 아들 윤이가 결혼을 했습니다. 신부 이름은 이예지, 저에게는 며느리이지요. 저는 아들만 둘이어서 ‘아버지’라는 소리만 늘 듣고 살아왔는데 예지는 저를 ‘아버님’이라고 부릅니다. 그 소리가 아직은 낯설고 어색합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나니 많은 분들이 인사말을 건냅니다. “며느리가 어떠냐, 잘하냐?”, “시아버지 된 소감이 어떠냐?”라고 하기도 합니다. 으레껏 주고받는 말들입니다만, 어느 식사 자리에서 제 생각을 정리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예지가 윤이랑 결혼했기 때문에 시아버지가 있는 것이고, 시아버지에게 잘하려고 예지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한테 잘하라고 며느리 본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냥 둘이 재미있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자리를 함께한 분들은 그냥 편안한 대답을 바랐을 터인데 제가 지금 생각해도 꽤나 무거운 답을 드린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늘 제가 생각하며 살아가는 가치관이기도 합니다. 


신학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고 목회를 한다고 나선지 퍽 오래되었습니다. 목회의 대상이 ‘사람’일진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늘 합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기준을 세워준 사람이 있었는데, 칸트라는 철학자입니다. “너는 자기에 대해서나 남에 대해서나 똑같이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 목적이라는 말은 인격이라는 말이나 존중이라는 말로 쉽게 표현해도 될 것 같습니다. 


가끔 맘을 나누며 지내는 목사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하지요. “교인이 없이 어떻게 목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교인이 있다면 그 교인은 목회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해야 한다.” 일전에 울산에 부부 교사로 살고 있는 막내 처제 부부가 놀러 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학생이 없으면 선생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학생을 가르칠 대상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새삼스러운 말은 아닐 것인데 어쩌다 보면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며느리 예지의 시아버지가 되면서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예지라는 한 사람이 윤이라는 남편을 위해서 더군다나 남편의 아버지인 시아버지와 혹은 시어머니를 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냥 이예지라는 사람으로 대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참 마음이 편합니다. 며느리 맞으면서 무슨 생각을 그리 복잡하게 하는가라고 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늘 제가 가지고 살아온 생각이니 그냥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글을 쓰다 보니 맘에 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 아내 유선옥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목적으로 대하며 살았어야 하는데 때로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새삼 미안하기 그지 없습니다. 제 아내도 ‘참치’ 회원 통신을 받아보는데 이 글을 통해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윤이 결혼식을 마치고 보름 후에 처조카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주례를 서달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목사인 고모부니까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조카며느리까지 잘 익은 홍시 한 상자를 사가지고 와서 주례 서주십사 하는데 어떻게 주례를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주례사로 무슨 말을 할까 하는데,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었습니다. “웃기고 자빠졌네” 우리가 흔히 어처구니가 없을 때 쓰는 별로 좋지 않은 표현인데 조금 바꿔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말인 듯합니다. 


“웃기고 자빠져라!” 


무슨 말인가 하면, 행복한 부부들의 특징은 대화와 공감과 소통이 잘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지요. 


이번에는 니체라는 철학자의 말을 한 마디 하겠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하기 전에 이런 질문을 해봐야한다. 너는 이 여자(이 남자)와 늙을 때까지 함께 이야기할 자신이 있는가? 사랑은 일시적이지만, 함께 지내는 대부분은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 말이 생각나서 집에서는 웃기는 말 좀 많이 하고 함께 수다도 떨고 긴장도 풀고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행여 웃기는 말을 못하고 누웠다면 발가락이라도 서로 마주치고, 손바닥이라도 서로 꼼지락거려주면 좋은 것이라고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목사가 아니랄까봐 성경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경 첫 장을 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무엇으로 하셨는가 하면 ‘말씀’으로 하셨다.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라고 나오는데 그 의미는 말 한 마디가 행복을 창조하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례사를 마쳤습니다. 


다들 주례사가 괜찮았다고들 하는데 역시 또 제 맘에 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인지 굳이 밝히지 않아도 읽으시는 독자께서는 금방 짐작하시겠지요. 더 웃기고 자빠져야 할 사람이 바로 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오는군요. 여하튼 아들도 며느리도 그리고 저도, 독자 여러분들도 자주 웃기고 자빠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참치’가 벌써 20년이 되었습니다. 지나온 20년을 함께 걸어온 모든 분들에게 박수와 감사를 함께 드립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웃기고 자빠지는’ 유쾌한 일들이 꽤나 많아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서용운님은 전주 임마누엘교회 목사인데 지난 10월에 이예지의 시아버지가 되었다. metase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