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리 | 김 숙
회원탐방 인터뷰를 앞두고 회원의 ‘신상’을 터는(?) 작업이 시작된다. 인터뷰이의 정보를 사전에 많이 알고 갈수록 회원탐방은 수월해진다. 그러나 SNS를 하고 있지 않은 인터뷰이의 경우에는 프로필 정도만 들고 인터뷰를 하게 된다. 한 시간 남짓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그의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를 그려내기 위한 단어들을 모아본다. 2G폰, BMW, 신임대표 그리고 아날로그적 목마름.
사람 속에 산다는 것
그는 진북동에서 회계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있는 사무실에 들어서자 책상위에 놓여있는 2G 폴더폰에 내 시선이 머문다. 2G를 사용하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왜 불편해요? 그렇지만 김남규 위원장이 스마트폰으로 바꾸라고 하도 보채서 일단 스마트폰을 구입했는데 번호 공개는 아직 안하고 있어요. 저도 제 번호가 헷갈려요.(웃음)”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단체대화며 자료를 주고받다 보니 2G 사용자에게는 따로 연락을 취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물론 번거로움의 몫은 연락을 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요즘은 청춘남녀들이 헤어질 때도 문자로 남긴다고 하더라고요. 글이 주는 위험성이 있어요. 글에는 다양한 모습들이 숨어있거든요.”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피상적인 대화일 뿐 사람 대 사람간의 진솔한 대화는 단절되고 있다. 이런 인간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내면적으로 외로움을 느끼고 삶 속에서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2G폰에서 시작한 대화는 모 정치인의 우울증 자살에 대한 씁쓸한 이야기로 이어졌다가 요즘 나의 고민인 직장 내 대인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흘러갔다.
직원이 많은데 직원들 간의 마찰이 발생하면 어떻게 조율하세요?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에요. 파벌을 만들기도 하고,.,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은 역지사지죠. 내 입장이 아닌 상대 입장에서 볼 필요가 있어요, 내가 한 일이 상대에게 고통을 주면 안 되거든요. 그런데도 직원들 간의 분쟁이 발생하기도 하더라고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7월 16일부터 시행되었잖아요. 그 날 전 직원을 소집해서 말을 했죠. 직장 내 자체 해결하려는 노력을 뒀지만 그게 잘 안될 경우 대표에게 보고했으면 좋겠다고. 그럼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사무실내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면, 관련기관에 고발까지 해야 되는 상황이면 고발을 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직원들 스스로가 서로에게 피해나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죠. 그리고 대표인 저도 직원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직원들 입장에서 물어봐야 되는데요. 정말 대표님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하하하. 나의 짓궂은 농담에 그는 기분 좋게 화답한다. “불러줄까요? 하하하.”
그가 회계사 사무실을 운영한 지 30년 가까이 된다. 직원 중에는 26년이 넘는 직원들도 몇 명 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평균 근속연수가 17~18년이 된다고 하니 최적의 근무환경을 만들기 위한 많은 노력이 엿보인다.
재미없는 일(work)?
숫자에 대한 감각이 약한 나로서는 숫자에 대한 통찰력이나 분석력을 필요로 하는 ‘공인회계사’업을 하고 있는 이들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그는 이 일이 엄청 재미없다고 말한다.
“자산총액이 120억 이상이 되는 회사는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야 되는 규정이 있어요. 회계사들이 감사를 하러 가는데 즉, 누군가의 잘잘못을 보고 코멘트를 리포팅 하는데 그 사람한테 수수료를 받는다는 거죠. 예를 들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감사를 가면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회계감사 수수료를 받는 다는 거죠. 이게 좀 아이러니하죠.”
세법이 복잡해짐에 따라 기업과 개인 모두 전문적인 회계사에게 회계 및 감사 업무를 위탁하여 처리하는 비중이 점차 늘고 있는데요. 회계 법인이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세무에 관한 것들, 일반 회계용역, 외부회계감사 등을 하고 있어요.”
16년도 인가, ‘전주시 시내버스 농어촌버스 요율운임조정 용역’을 수행하셨죠?
“네. 19년에도 저희가 하고 있어요. 업체들이 용역을 잘 안하려고 해요. 계약금액이 적은 반면에 번거로운 게 많거든요. 용역 결과를 가지고 시민단체나 이해당사자들이 말도 안 되는 문제 제기를 할 때가 많아요.”
그의 말을 정리하자면, 회계는 회계학적 이해와 용어가 있는데 그것을 일반인들이 일반인 상식으로 이해하면서 자꾸 문제 제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 문제 제기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릴 때가 있고, 완전히 틀린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서린에서 주력하는 업무영역이 있나요? “우리 회계법인은 시내·시외버스 운송용역에 관한 노하우가 많이 쌓여 있어요.” 그럼 용역부분에 있어서 특화가 돼 있는 거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왜냐면 전라북도에 회계 법인들이 있지만 대부분 독립 채산제 방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어요. 우리 회계법인은 원펌(One-Firm) 체제로 운영되고 있어요. 전라북도에는 원펌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회계 법인이 우리가 유일하죠.”
독립 채산제 운영체제에서는 의견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원펌 체제로 운영하고 있는 그의 회계 법인이 용역을 수행하는데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회계사는 시즌과 비시즌이 있다고 하는데 일 년 중 특히 바쁜 때가 있나요?
“대략 11월부터 다음 해 6월까지는 바쁘죠. 그런데 여러 가지 세금신고에 관한 업무가 연중 있기 때문에 늘 바빠요. 일 안하고 놀려고 하면 한가하고 일하려고 마음먹으면 늘 바쁘죠.” 그렇죠. 우리 단체도 일하려고 마음먹으면 정신없이 바쁘고 그렇지 않으면 한가하니까요.(웃음)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했던가. 이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재무전문가를 만난 김에 재무관리와 노후 대비에 관해 물었다.
“항산(恒産)이면 항심(恒心)이다, 라고 했어요. 내가 먹고 살기가 어려우면 어떤 일도 못한다고 하잖아요.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항산은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그게 안 되니깐 상당히 생계에 쪼들리고... 답답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장기적으로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본업을 두고 시민단체 활동은 자원 활동으로 가야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재무관리 팁은....”
그가 한참을 망설인다. 제가 너무 난해한 질문을 했나요? 하하하.
“활동가들이 재무관리에 크게 신경을 못 쓰는 이유가, 버는 돈의 규모가 소소하잖아요. 이것을 저축해서 목돈을 만들기가 어려우니 무시하는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큰 바닷물도 물방울 하나로 시작되었어요.” 작은 돈도 소중히, 티끌모아 태산. 그렇죠, 만고불변의 진리죠.
가장 기본적인 노후 안전장치가 국민연금이 될 수 있을까요? 일부에서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감이 있거든요. “그럼요. 현재로서는 국민연금 수익률이 가장 높아요, 공적연금제도를 지금보다 확충해야죠. 사회 안전장치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거죠. 경제수지대비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더 많이 연금을 내도록 해야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누군가의 희생이나 사회의 간접자본을 많이 이용한다는 의미거든요. 사회간접자본이용에 관한 대가를 사회에 지급함으로써 사회적 균형을 이뤄야 된다고 보고 있어요.”
인연의 시작
우리 단체와의 인연은 언제부터 인가요?
“오래 전부터 인연은 맺고 있었지만 조용히 후원만 하고 있다가 단체에서 ‘학교 운영지원비 조사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로 조금은 적극적인 활동을 하게 된 거죠. 처음에 학교운영비지원비에 문제가 있다고 김영기 대표에게 얘기를 했는데 콧방귀도 안 뀌더라고요.”
그가 학교운영지원비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정부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한다면서 학비와 다를 바 없는 학교운영비를 학부모들에게 억지로 부담시키고 있다는 지인의 얘기를 들은 시점이다. “초·중학교가 의무교육이면 국가가 교육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것인데 교구, 교복, 급식비 일체를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죠. 무상급식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계속 떠들고 다녔죠. 그런데 학교운영비를 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리고 우리단체에서 전라북도 최초로 학교운영지원비 폐지에 관한 운동이 펼쳐졌고, 전국적으로 번져나가면서 결국은 학교운영지원비가 폐지되었다.
“2011년 서울시의 무상급식 정책논란으로 떠들썩했을 때, 김남규 위원장이 제가 최초 무상급식 제안자라니 상표권 주장을 해야 한다고 농담을 했었죠.(웃음) 제가 회계사를 공부해서 합격했지만, 국가가 라이선스를 줘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 거잖아요. 그렇다면 사회에 환원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유일하게 학교운영지원비 폐지에 단초를 제공하는 거 하나만으로 국가에서 준 자격증 값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덧붙인다. “돈은 결국은 내가 보관하다가 어디론가 주인 찾아 가거든요. 돈을 많이 모아서 그것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글쎄요, 그게 재미있을까요. 제가 타고 다니는 차가 십 년이 넘었는데 직원들이 좋은 차로 바꾸면 어떠냐고 하는데, 제가 그러죠, 나 BMW 있다고. 버스, 메트로, 워킹 있다고. 하하하.”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얼마 전에 회원탐방 했던 이강주 대표의 말이 오버랩 된다. ‘내가 벌었다고 내 돈이 아니에요.’
이 순간 이 뿌듯함. 아, 내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철학이 적어도 이 정도야! ^^
길을 찾다
그와 우리단체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 20주년이라는 것. 선배들과 함께 회계사무실을 운영하다가 독립해서 조직체계를 갖춘 지가 20년이 되었다.
그리고 맞춘 듯 20주년에 신임대표가 되었다. 매년 대표 추천을 받았는데 고사했다고요?
“오랫동안 고사했죠. 제가 운동과 술자리 찾아다니는 건 부지런한데 다른 부분은 게을러요.(웃음) 대표가 되면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어서요. 올해 김남규 위원장이 또 추천 하길래 올해는 오케이 했죠. 그랬더니 도리어 김남규 위원장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대표로서 포부를 문자, 우리 단체가 짜인 틀을 십년이상 그대로 갖고 가고 있는데 안전성면에서는 좋을지 몰라도 단체의 미래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해준다.
“우리 단체도 사고를 유연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여당이든 야당이든 누구든지 국민의 삶을 향상시킨다면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때론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 시민운동을 하면서 봤던 시각으로 활동을 하게 되면 좋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그 역할이 끝나면 다시 단체로 돌아와 행정의 경험을 살려서 시민운동을 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해요.”
그는 일을 그만두게 되면 일 년 동안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반경 1km밖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집이 금산사 앞이니 금산사 올라가고 원평에 장보러 가는 정도, 아무 생각 없이 일 년 동안 고무신 신고 집 근처에서만 왔다갔다 살아보고 싶다고.
머리가 맑고 가슴도 시원한 느낌으로 일 년이라도 살아보고 싶다는 그에게 사람과의 관계에 질렸냐는 농담을 건네자,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어요.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것’에 목말라서 그럴 수도 있고...”
녹취 내용을 풀고 있는 이 순간, 인터뷰 말미에 그가 말한 ‘그런 것’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반복해서 들어보고 여러 번 생각해 본다. ‘그런 것’.......아날로그적 목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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