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포커스/› 회원기고

[사람과 도시] 원칙이 살아있는 도시

글 | 황지욱 회원



지난 2018년부터 거의 격월로 실어왔던 글에서 도시를 ‘녀석’이라고 부르며 그 내면을 하나씩 들춰내 보려고 했다. 깜(?)도 안 되면서 까보려 했기 때문일까? ‘녀석’은 속을 다 들여다 보여주지도 않았던 것 같고, 나에게는 여전히 수박겉핥기식 접근만 해왔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고 앞으로 더 잘 까낼 수 있을까 하는 핑계 같은 염려도 들고, 어쩌면 읽는 분들께서도 지금까지 어제와 오늘을 살펴봤으니 이제부터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보자고 하실 것 같아 은근슬쩍 방향을 틀어보련다. 이미 처음 투고의 글에서 알렸었듯이 제4장 ‘우리의 도시가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것이다.



4. 우리의 도시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4.1. 원칙이 살아있는 도시

4.2.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곳

4.3. 청년, 그들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도록 장

4.4. 어디서나 골고루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

4.5. 사람, 자연 그리고 생명체라면 함께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공간



위에 적어놓은 글 차례에서 처음 이 글을 쓸 때 제시했던 4장의 소제였다. 여기에는 내가 바라는 이 땅의 유토피아(Utopia)를 향한 몇 가지 원칙이 암시되어 있었다. 그 원칙은 우리나라 헌법전문과 연관이 있는데, 나는 우리나라 헌법전문이 나누는 몇 가지 중요한 단어로 ‘자유, 민주, 평화 그리고 평등’이 도시를 계획하고,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위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을 적어도 네다섯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내보았는데, 첫째는 ‘헌법적 원칙’이었다. 즉 도시를 계획할 때 가장 기본적 틀을 지키고, 그 틀의 원리가 배어 나오도록 도시를 가꾸어가는 것이었다. 둘째는 사람 사이에 ‘배려가 살아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이 절차로서의 민주주의를 통해 나타난다고 보았다. 셋째는 ‘청년’이라고 말했지만 누구나 마음껏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이루어가는 것이었으며, 넷째는 어디서나 골고루 행복하게 사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셋째와 넷째를 통해 누구나 어디에 살든 기회균등의 가치가 실현되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시마다 지니고 있는 역사성, 자연성, 문화성이 함께 어우러진 도시를 이루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사람사이의 평화를 넘어 사람과 자연과의 평화공존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금 나는 이것을 도시계획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4.1. 원칙이 살아있는 도시

오늘은 이런 의미에서 ‘원칙이 살아있는 도시’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먼저 원칙이 살아나게 하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떠오를까? 많은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원칙들을 제시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시장, 군수 그리고 공무원이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들은 믿기 어려우니 시민사회단체의 NGO가 세져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도저도 아니고 잘 살려면 기업의 적극적 투자가 이뤄지도록 해야 맞는 원칙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이 이처럼 다양하기만 하다면 어떻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조정해가며 수용할 수 있을까? 서로 자기주장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런 모든 다양성을 담아낼 그릇, 즉, 가장 기본적인 원칙의 출발점이 무엇인가 확인하기만 한다면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 원칙의 출발점을 헌법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헌법’을 따라야하기 때문에 헌법은 우리 행동과 사고의 원칙적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헌법이 몰지각한 공권력에 의해 왜곡되곤 하였지만 헌법은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서로 조정해가도록 절차로서의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인간평등의 가치를 존중하는 원천이다. 그렇기에 다름의 다양성도 논의와 조정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서로의 합의점을 찾아간다. 이런 헌법적 가치가 도시를 계획하고, 가꾸고, 세워가는 원칙으로 폭넓게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만 해도 큰 도시, 작은 도시, 오래된 도시, 새로 만들어진 도시, 바닷가 도시, 산골 도시 등 수많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세상의 도시들은 하나같아지려 한다는 것이다. 하나같다는 것은 모두가 크고, 높고, 콘크리트로 뒤덮여있고, 빠르고, 끊임없는 경쟁하며 머리를 불쑥 내밀려고 달려가기만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삶의 패턴은 다 비슷하고, 인공적 화려함을 추구하고, 시끄럽고, 그것이 마치 최고의 가치인양 보여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수많은 정치가들과 계획가들이 이렇게 화려하게 치장한 도시가 경쟁력이 있다며 이를 내놓고 추구한다. 과연 이것이 모든 도시가 동일하게 지켜나가야 할 만한 원칙일까? 목  하나 쭈욱 빼놓는다고 이것이 정말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겉치장 속의 뒷면은 누구에게나 크나큰 숙제를 드러내놓는다. 경쟁에서 뒤진 사람들이 깊은 패배감과 절망감에 빠진 모습을 언론보도 속에서 노출시키고, SNS 상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노약자 계층이 사회의 뒷면에 숨죽이고 있는 모습을 드러내 놓는다. 돈을 노린 사건사고가 머리기사를 뒤덮기도 하는데, 대부분 이런 보도는 대도시의 부산물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우리가 좋다고 여겨왔던 대도시가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는다.



올해부터 나는 고창군의 도시재생지원센터를 맡아 일하고 있다. 고창에 오가면서 어떤 도시가 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창은 조금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람들은 앞서 적어놓은 대도시의 화려함을 닮기를 원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처음 고창을 접하고 한 바퀴 돌던 초봄 어느 날 고창의 색깔을 느꼈다. 그날따라 빗줄기가 부슬부슬 뿌려졌는데, 빗물 머금은 땅은 붉은 빛깔로 더욱 짙게 물들어갔다. 게다가 고색창연한 소나무 줄기는 짙푸른 잎새를 더욱 짙게 드러내고 있었다. 고창의 초봄은 짙은 붉음과 푸름으로 그렇게 다가왔다. 그리고 초여름으로 다가가며 고창의 갯벌과 바다는 꿈틀거림의 색으로 다가왔다. 그럼 고창의 겨울은 어떻게 비춰질까? 이 모든 색깔을 힌 눈으로 덮어버린 순백의 겨울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고창은 사계절 색이 뚜렷한 자연과 생태의 마을이 줄지어 서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고창의 농민들과 만나서 이야기 하고, 팜팜사업단의 이야기를 듣고, 모양성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창이 갖고 있는 고창만의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괜히 섣부르게 외지인 끌어들이고 외지자본 끌어들이는 대형 사업이 고창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원천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작고 깨끗하고 조용해도 내 마을, 내 고을의 모습을 정갈하게 간직하고, 사람 사는 정감을 간직하도록 만들어가며, 그것이 함께 누릴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는 원칙을 지킨다면 고창은 고창이라는 도시의 가치를 살아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쓴 내 글,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주장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함께 고민하면서 헌법적 가치를 살려내고, 내 고을의 가치에 맞는 원칙을 찾아가면 좋겠다. 모두가 그런 노력을 하면 어떨까? 한 가지만 더 소개하면서 글을 맺는다. 1993년 안드레 두어니와 엘리자베스 플레이터지벅이라는 도시계획가 부부가 1993년에 주창한 ‘뉴어바니즘(New Urbanism)’이다. 이는 현대도시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뉴어바니즘이란 간단히 말해 인간중심의 도시, 마을을 만들어가자는 운동이다. 두 사람은 미국 코네티컷 주의 뉴 헤이븐 시에 있는 빅토리안 마을을 모태로 뉴어바니즘의 13개 원칙을 제시했다. 그들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열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마을에는 이웃 주민 누구나가 잘 인식할 수 있는 중심부가 있다. 이것은 종종 정사각형이나 녹색을 띠기도 하며 때때로 번화하면서 기억에 남는 거리의 모퉁이에 해당하기도 한다. 대중교통의 정류장이 바로 이 중심부에 위치한다.

② 대부분의 주거지는 중심부에서 도보로 5분 이내의 거리에 있으며, 이는 평균적으로 대략 마일 또는 1,320피트0.4km의 거리라고 할 수 있다.

③ 주거에는 다양한 유형으로, 일반적인 단독주택, 가로를 따라 늘어선 다가구 주택 그리고 공동주택 등이 있다.-이러한 주거 속에서 젊은 세대와 노년층 세대, 1인 가구 세대와 가족 형태의 세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장소가 창출될 수 있다.

④ 이웃의 가장자리에는 한 주간의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상점과 사무실이 있다.

⑤ 작은 부대 건물 또는 차고 아파트는 각 주택의 뒷마당 쪽으로 허용된다. 이러한 건축시설은 임대용 시설 또는 작업장예:사무실 또는 공예품 작업실 등으로 사용될 수 있다.

⑥ 초등학교는 대부분의 아이가 집에서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아주 가까운데 있다.

⑦ 작은 놀이터들은 모든 거주지에 잘 연계되어 있다.-0.1 마일도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 말이다.

⑧ 마을의 안쪽에 위치한 거리는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잘 연결되어 있어, 목적지가 어디든 간에 보행자와 차량이용자에게 다양한 경로를 제공하여 교통을 분산시킨다.

⑨ 거리는 상대적으로 좁으며 가로수에 의해 그늘이 드리워진다. 이렇게 하여 교통의 통행속도를 늦추며,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에게 적합한 환경을 창출해줄 수 있다.

⑩ 마을 중심에 위치한 건물들은 이러한 거리와 가깝게 위치하며, 명확한 경계를 갖추며, 독특한 시각적 특색을 나타내는 옥외공간의 모습을 창출하고 있다. 

⑪ 주차장과 차고의 문은 거리의 전면으로 위치하지 않는다. 주차는 일반적으로 뒷골목을 통해 접근하는 건물의 뒤쪽으로 이관되어 있다.

⑫ 거리의 풍경이 종료되거나 마을의 중심부에 있는 일단의 중요한 부지는 시민의 공공활동을 위한 건축물들을 위해 확보되어 있다. 이들은 지역사회의 모임, 교육, 종교 또는 문화 활동을 위한 장소로 제공된다.

⑬ 마을은 주민자치 형태로 조직되어 있다. 정식으로 조직된 협의체는 유지, 보수, 보안 및 물리적 변경 사항에 관해 토론하고 결정한다. 세금과 관련된 사항은 더 큰 공동체의 책임사항에 해당한다.


우리보다 훨씬 첨단의 길을 걷고 있고 초고층의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미국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바로 이렇게 작고, 인간적이며, 누구나 어울려 살 수 있는 도시를 소중히 여기는 운동이 도시계획의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황지욱

전북대학교 공과대학에서 도시공학을 가르치고 있다. 자연을 존중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도시정책을 꿈꾸는 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