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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방학이 되어서야 알게된 일

글 | 이주희 회원




한 학기를 걷다, 뛰다, 멈추다 하면서 방학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나도 혼자 있게 되니 자연스레 스쳐가는 기억들이 하나하나 나에게 돌아와 각양각색의 빛깔로 반짝였다 사그라진다. 그 속에서 나는 찬란했던 순간들도 위태로웠던 외줄도 서운하고 부끄러운 결여도 생각하였다. 그래, 지금은 저녁 무렵 하루 종일 걷고 난 후 뻐근해진 다리를 길게 뻗고 걸어온 만큼, 다시 돌아보며 저녁불빛 아래 앉아 있는 시간이지. 골똘한 생각도 스치듯 날아가는 생각도 빙빙 돌고 돌아 다시 드는 생각들도 내 옆에 앉으라고 해도 좋을 시간이지.


작년에 가르쳤던 5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6학년으로 올라갔다. 담임을 연임하게 되면 서로에게 있던 벽을 허물거나 고치려 하지 않게 된다는 좋은 점이 있다. 누구나 있는 문제들을 내 기준으로 뜯어 고치려던 자만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충분한 시간이 된 것이다. 그렇게 다시 담임이 된 나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요란한 수다를 떠느라 3월 첫날부터 우리 교실은 시끌벅적하였다. 서로 신이 난 것이다. 낯선 선생님이 주는 새로움과 설레는 기대가 없어 한편으로 아쉬운 교실 안에 시간으로 잘 익혀진 우리의 익숙한 사이가 주는 또 다른 선물을, 우린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교장선생님이 우리 교실 앞을 지나가시는 데 태현이가 갑자기 일어나 복도로 나가더니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교장선생님께 큰절을 올리며 “이주희선생님을 6학년 선생님으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내 마음으로 쑥 들어온 감동이란….


우리는 한해를 어떻게 꾸려가면 좋을지 여러 시간동안 열심히 회의를 하였다. 그렇게 하여 정한 방향은 ‘도전’, ‘소통’, ‘나눔’, ‘재미’. 그럼 이 가치들을 향해 우리는 어떤 것을 해보면 좋을지 이야기하다 도전과 재미 소통을 위해 등산, 걷기 등을 해보면 좋겠다는 의견을 한 친구가 내었다. 그러자 찬반이 나눠진 교실은 시끌벅적해졌다. 힘들다는 반대의견의 친구 4명에게 등산과 걷기의 좋은 점을 5명이 돌아가며 이야기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힘든 건 맞다 하지만 등산하고 걷기 할 때는 공부를 안 할 수 있고 간식도 잘하면 먹을 수 있지 않겠냐며 살살살 꼬시니 반대 4명이 언제 그랬냐며 바로 찬성으로 돌아섰고 만장일치로 등산과 걷기가 1년 동안 꾸준히 해나갈 활동으로 정해졌다. 그냥 걷는 것보다는 의미를 담아보면 좋지 않겠냐는 교장선생님의 조언을 따라 5학년과 6학년 동안 배운 역사와 연결지어 프로젝트 학습을 계획하여 보았다. 이름 하여 ‘역사발자국 따라걷기 프로젝트’ 나에게 역사는 잘 가르치고 싶고 의미 있게 가르치고 싶은 목마름이 있는 과목이다. 그러면서도 학기말 피드백에서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웠어요’와 ‘지루하고 어려웠어요’라는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과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 녀석들은 작년 역사 수업의 몰입정도가 매우 높았고 역사수업이 제일 재미있었다는 일관된 피드백을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왕 등산하고 걷기 하는 김에 역사와 연결 지어 보면 재미있겠다 싶어 한 달에 한 번 다음과 같은 주제로 아이들과 함께 해 보았다. <사진참조>







차가운 바람이 불던 중바위 전망대에서 함께 외쳤던 함성. 초록바위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 펼쳐진 전주의 낮고 낮은 풍경들을 보며 지었던 미소. 동학농민군의 타오르는 열망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현장에서 느낀 안타까움. 풍남문 방향으로 걷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걸음을 멈췄던 꽈배기집과 시원한 음료를 마셨던 주스가게. 주스가게에서는 놀다가 그만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를 3번이나 놓치고는 이것도 다 추억이야 하며 깔깔거렸던 일. 5월 통영의 바다가 내다보이는 미륵산과 한적한 한산도에서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본 이순신장군의 임진왜란 이야기를 마주했던 일. 6월 월요일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강천산 길을 밤새 내린 눈에 첫발자국 내듯 걸었던 일. 내려오는 길에 모두 함께 퐁당 빠져 했던 물놀이가 너무 재미있어서 강천산 왔던 진짜 이유는 잊어버리고 오로지 물놀이만 기억 속에 깊이 남았다는 아이들. 뜨거운 날씨보다 투닥투닥 내리는 빗속을 걷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 비 내리는 날을 골라 다녀왔던 우리 지역의 3․1운동 발자국 따라걷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침없이 나아간 길들을 함께 걸으며 나눈 이런저런 이야기들. 우산을 안 가져온 하빈이와 나는 함께 우산을 쓰고는 각자의 한쪽 팔은 기꺼이 비에 젖어 좋다며 웃고 또 웃었던 시간들. 


아이들과 추억의 주스가게에 모여 프로젝트를 돌아보는 시간. 아이들은 “역사발자국 따라 걷기를 통해 책과 머리로만 배웠던 역사를 현장에서 몸으로 배울 수 있어 참 좋았다”, “깔깔깔 웃고 떠들며 함께 보냈던 이런저런 일들로 추억이 훨씬 많아져 행복하다”는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그리고 나는“그동안 한 발짝 떨어져 입으로만 쉽게 했던 말들이 선생님에게는 많이 있었는데 너희들과 함께 걷는 동안 그 말들이 연어처럼 돌아와 선생님의 땀과 보람으로 의미 있게 채워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 그건 모두, 너희들 덕분이야”라는 고백 아닌 고백을 했고 그런 나에게 아이들은 주스가게가 떠내려가게 박수를 쳐 주었다.


방학이 되어 혼자 돌아보는 시간,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들을 생각하여보았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아이들이다. 아이들과 함께 뒤섞여 같은 것을 바라보고 나눌 수 있었던 그야말로 교사로 꿈꿔왔던 완벽한 시간을 경험해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교실 안이 더없이 이상적인 곳만은 아니다. 비와 비율을 공부하느라 서로 씨름하는 수학시간도 있고 다시 글을 써오라는 냉정한 피드백을 줘서 훌쩍이며 들어가는 아이와 잔뜩 화가 나서 아이들한테 씩씩대는 나, 그리고 수업시간 선생님 몰래 그린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는 책상이 있는 여느 교실과 다름없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 저러한 넘침도 부족함도 잘못도 서로 만나 생각지도 못한 그림으로 그려지게 만드는 삶의 오묘함이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있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수고로운 저녁, 불빛 아래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의 끝에 다다르면 ‘우리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신 것도 이런 충만한 시간들을 경험하게 해 주신 것도, 부족한 것은 부족한대로 빛나게 해주시는 것도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내 힘으로만 살아가는 것이라는 착각을 단숨에 버리게 하는 고귀한 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