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우성 (투명사회국)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날 거라는 조짐조차 보이지 않던 시기에 제작이 되었다가(일본 개봉은 올해 4월이었다) 국내에서는 한·일간 갈등이 고조되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최고조에 치달은 시점에 맞춰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하지만 막상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우연히 ‘마침 개봉작이 있네, 보러 가자’ 해서 그냥 간 것이라 특별한 기대는 없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와 관련된 일본 우익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마도 스마트폰으로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다가 힐끔 보고 지나치는 게 전부인 평소 습관대로, 이곳저곳 포털에 올라온 기사나 SNS로 읽게 된 제목 또는 글의 앞부분 정도만 읽은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래서 출처조차 불확실하다. 제목인 ‘주전장’을 사람 이름인 줄로만 알았을 정도니까 영화를 보기 전 갖고 있던 사전 정보가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영화는 왜 일본의 극우세력이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그토록 민감하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관련된 사실을 감추려 드는지를 파고들어간다. 그리고 그 배후에 ‘일본회의’라는, 일본이 메이지 시대의 부흥기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 매우 시대착오적이고 반동적인 역사수정주의자 그룹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간다. 사실 이제까지 우리는 일본에서 일어나는 혐한집회나 역사왜곡 망동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콤플렉스와 자기연민에 찌든 패배자들끼리의 인종차별 단합대회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떤 영향을 줄 리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다면 우리가 간과했던 실재하는 위험이 구조적이고 뿌리 깊다는 사실에 대해 심지어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게 될 수도 있다.
결정적인 장면은, 아마도 감독이 의도한 바가 바로 이렇게 그들의 실체를 한 꺼풀씩 벗겨나가다가 마침내 핵심 인물에게까지 도달하게 하고팠던 것일 텐데, ‘일본회의’의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카세 히데아키가 “한국은 [...] 가장 친일적인 훌륭한 나라가 될 겁니다. 정말 귀여운 나라에요.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정말 귀여워요. [...] 제가 제일 좋아하는 나라입니다.”라고 말하는 인터뷰 장면이다. 하지만 이미 언론에 많이 소개된 이 장면 바로 전에 그가 “미국이 일본에게 졌기 때문에 질투심에 (일본을 비난하거나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협조하는 일) 그러는 것입니다”라고 하는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순간 자막을 잘못 읽었나 싶어서 함께 있던 아내에게 “지금 ‘일본에게 졌다’고 말한 것 맞아?”라고 묻기까지 했다.
그는 2차 대전에서 패배한 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결국 미국에 대해 ‘정신승리’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황당한 생각에 빠져 있는 자들이 일본의 정치적 의사결정을 좌지우지 하는 주요 인물이 되어 내각에 포진해 있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적어도 당장 협상에 임해야 할 한국 정부에게 곤란하기 그지없는 상황일 것이다. 이들의 실체가 왜곡된 망상과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극우세력을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국제사회 가운데 명백히 드러날 때까지는 한국의 단호한 태도가 오히려 호전적이거나 공격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해석될 위험이 많기 때문이다.
영화에 출연한 또 다른 일본인 헌법학 명예교수 코바야시 세츠가 지적하듯 ‘일본회의’의 존재는 “무섭다. 그들은 명백히 전쟁 전의 일본을 신봉하고 있으며 인권감각이 없고 자신들은 특별하며 지배층이라는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아베 내각을 중심으로 권력을 쥐고 헌법 개정에 나서고 있다”는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이런 지적을 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반갑기는 하지만, 그들의 옹색한 처지는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히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을 계기로 일본의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무척 희망적이다. 일본의 여론조사 결과만을 보고 실망하기엔 이르다는 얘기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러한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사회 세력과 연대하며 일본 내의 민주세력이 성장하도록 돕는 일에 지금 나서야 한다. 일본 정치의 전면적인 개혁이나 정권교체가 당장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일본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아시아의 공존과 번영을 위해서, 2차 대전 직후 미국이 자국의 이득을 고려해 무산시킨 일본의 극우민족주의와 군국주의 세력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을 해내는 주체는 일본의 시민사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심을 담아서 굳건한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것, 가장 중요하며 시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려고 타이밍까지도 이렇게 절묘하게 맞춘 건지, 3·1운동 백년에 임시정부 수립 백년까지 맞은 하필 지금 이곳 한반도에 우리 민족의 독립과 자존에 더해 아시아의 평화와 인류의 안전 같은 세계사적인 과제가 한 번에 다 엮여지고 있다. 일본의 아베정권이 경제적 공격을 감행한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다. 일본 우익이 자신들이 처한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벌인 이벤트라거나 동아시아에서의 패권과 영향력을 유지 또는 회복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미 큰 격차로 일본을 추월해버린 한국에 대한 반격이자 오래된 경제적 침체를 벗어나서 구조적인 체질 개선을 위한 반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경기 부양책, 또는 원전 사고 발생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일본의 재건을 알리는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해 방사능 오염과 관련해서는 가장 이해관계가 깊고 예민한 인접국 한국의 입을 단단히 봉해놓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얘기까지 온갖 분야에서 다종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져 나오는 판이다.
흥미로운 건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기 전, 이 모든 일들을 촉발시켰던 사건은 엉뚱하게도 조선인 강제징용 배상판결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도 향후 북일 수교 단계에서나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배상의 선례가 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방어하려 하는 것이라는 등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해석들이 있다. 그러나 본심으로는 ‘저지른 잘못은 있지만 감수해야 할 손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강제징용이건 성노예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이라고만은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진심을 다해 혐오와 적대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일본 특유의 옭아매는 듯이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가 엉뚱하게 분출되는 병리적 현상일까? 아니면 비민주적인 정치구조와 고착화된 계급 갈등을 외부적으로 발산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대중기만책의 결과물일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주전장'(주된 싸움터)’은 이런 의문에 대해 꽤나 선명하고 통찰력 있는 해답을 제시해주는 영화였다.
일제에 의한 강점이라는 가혹한 역사는 우리에게 이기고 지는 것이 생존과 직결되는 절실한 문제라는 점을 너무나 강렬하게 남겨놓고 말았다. 이기는 것 자체가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해서, 져서 말살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생존 본능이 작동하고 우리가 맞닥뜨린 싸움에 이것을 뒤섞어 버린다. 하지만 이 싸움은 ‘아무렇게든’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즉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이것은 대결의 싸움이 아니다. 우리는 올바름을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하는 동지를 찾는 과정에 있다. 아베정권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극우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일본의 시민사회와 연대해서 일본이 진정으로 민주적이며 평화를 사랑하는 우방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우리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근본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니 사실 우리 싸움의 주전장(主戰場)은 이제 문제적 일본과 그들의 시민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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