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포커스/› 회원기고

[사람과 도시] 장애가 없는 도시 (2019.04월)


글 | 황지욱 회원



2017년 촛불열기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던 해 열두번째 달에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서 특강 요청을 받았다. 도시계획과 관련하여 자유주제로 수업을 진행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글쓴이는 도시계획가로서 수많은 사안에 대해 심의와 자문을 거치며 무엇이 절대적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지곤 했었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분야에서 최종판단자가 되곤 하였지만, 내가 내린 그 판단이 정말 올바른 것이었는지 아닌지 섣불리 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 판단의 기준을 쉰이 훌쩍 넘은 어느 날 ‘헌법’ 속에서 찾게 되었다. 그래서 이 대학의 대학원생들 앞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헌법을 얼마나, 몇 번이나 아니 한번은 읽어보았습니까?’라고 물어보았다. 이 물음에 몇 명이나 손을 들어 답했을까? 몇 명이 답을 했는지는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헌법을 아는 것은 왜 그리 중요할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국민이던 아니던 치외법권을 누리는 경우를 빼곤 모두 그들의 행위에 대해 대한민국의 헌법에 따라 판결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헌법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모두가 깊이 인식하고 공통으로 따라야 하며, 모든 행위의 판단기준이 된다.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이상 헌법보다 더 특출난 것도 없으며, 헌법을 능가하는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도시계획가들의 판단기준도 헌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글쓴이에게 이 헌법이 다시 눈에 들어온 것은 2016년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 개그맨 김제동씨의 열변을 들으면서다. 그의 말 속에서 헌법이 아무런 권력도 없고, 기댈 곳 없어보이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지지력이요, 헌법만이 우리를 정말 공평하게 보호해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눈뜨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헌법의 조문 하나하나가 내게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판단의 근거가 되고 기준이 되었다. 나는 20세기의 우리 사회와 도시를 보면서 ‘20대의 건장한 청년이 살아가기에 어려움이 없는 사회’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이 말은 거꾸로 뒤집어 놓고 보면 20대가 아니면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라는 말이기도 하고, 20대라도 건장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라는 말이기도 하고, 20대이면서 건장하더라도 청‘년’이 아닌 청‘녀’(젊은 여성)는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라는 말이기도 했다. 요즘은 여기다가 ‘부유한’ 이라는 표현도 하나 덧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무조건 불공평하고 불평등하다며 부정적으로만 단정짓고 싶지 않다. 적어도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정의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한 비판이다. 


이런 관점에서 도시는 그리고 도시의 시설물은 어느 누구한테도 차별을 가져다주는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 제 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장애 없는 사회(Barrierfree Society)란 모든 사람이 어떤 장벽도 없이 불편을 느끼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사회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혹자들이 ‘장애인이나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물리적인 장애물이나 심리적인 장벽을 없애려고 실시하는 운동 및 시책’이라고 특정계층을 위한 특별한 행위에 국한시켜 그렇게 해석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 단순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눠서 보는 이분법적 사고도, 눈에 보이는 물리적 시설만을 대상으로 하는 사고도 올바르지 않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 갈라놓는 사고를 싫어하는 이유는 마치 장애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특정계층에게 비장애인이 뭐 대단한 수혜·혜택을 베푸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헌법은 우리 모두에게 장애가 없는 사회가 필요함을 명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애초부터 모든 사람이 장애 없는 사회에서 살도록 만들려고 해야 한다. 도시계획의 기준, 설계의 기준이 가장 어린 아이들이 가장 귀하게 보호받는 사회를 만들려고 계획하고 설계한다면 그 외의 사회구성원 모두가 그 아이들 덕분에 수많은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특정계층에게 뭔가를 조금 해주고 대단한 것을 한 것처럼 행동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처럼 도시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기준이 가장 약한 자가 아무런 무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면 모든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자연스럽게 보장되는 권리회복이 이뤄질 것이다.


이렇게 헌법을 확인하고 나서부터 글쓴이의 판단기준은 명확해 졌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하는 학생들 앞에서 과감히 ‘헌법정신과 도시계획’이란 주제의 강의를 할 수 있었다. 헌법 제34조①은 말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인간다운 생활’, 이 문구가 애매모호하다. 그러나 내가 보는 나의 인간다운 생활을 놓고 보면 다른 사람의 인간다운 생활이 어떻게 되어야 할지 분명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아주 편한 게 인간다운 생활이고 다른 사람은 대충 그저 그런 것이 인간다운 생활일 수는 없다. 내가 내게 바라고 대하듯이 다른 사람도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인간다운 생활인 것이다. 이처럼 헌법 조문은 그냥 허공에다 대고 외친 의미 없는 소리가 아니다. 모든 법률과 법적 행위의 기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가 없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은 절대 특혜가 아니다. 이 헌법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사회 속에 완벽하게 실천해가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요 국가적 책임이다.


물론 한꺼번에 모든 장애를 걷어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예산의 제약도 따르고, 어떤 이에게는 장애처럼 보이지만 그 장애가 동일하게 보호 장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와의 이해상충도 존재할 수 있다. 나아가 눈에 보이는 물리적 장애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계단’이라는 장애도 존재한다. 이런 다양한 형태의 물리적 그리고 사회적 장애에 대해 끊임없는 논의와 합의를 이루면서 하나씩 하나씩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의식 속에 헌법에 대한, 헌법을 통한, 헌법적 정신이 갖춰지도록 확산시켜야할 것이다. 그것이 ‘장애없 는 사회’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정부-민간-사회단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장애 없는 사회 종합대책 Taskforce 팀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그 속에서 장애 없는 사회의 Roadmap이 그려질 것이다. 바로 이것이 헌법을 헌법답게 대접하는 사회요, 모든 국민이 헌법을 따르는 국가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된다고 본다.


참, 책 소개를 하나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겨울에 읽은 책이다. 김제동씨가 쓴 ‘당신이 허락하면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어요.’에 빠져서 무한감동한 적이 있다. 나와 김제동씨는 개인적 친분이 없고, 그 출판사와도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정말 기쁜 마음으로 읽은 책이라 주변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곤 한다. 여러분들께도 마음껏 읽고 즐기시라고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