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낙중
같이 공감하고 비판할수 있는 주제의 글을 항상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전북참여자치시민연대 회원의 글에 개인적인 푸념섞인 글을 쓰는것에 대해서 맞을까 고민해봤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번씩은 해볼수 있는 생각이 아닐까해서 편한게 써본다.
본인을 희생하면서 더 정의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 혹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 멋진 삶을 위해서 살아가는 분들, 삶의 신념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필자도 어느 정도는 세상에 쉽게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되어 잘살았니 돌아보니 후회되는 부분도 있다. 단지 내가 틀렸다는 생각이 패배감을 안겨줄지 모르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생각만 하며 더 나아진 내일을 위해서 도전하며 산다.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더 많은것들을 가지고 싶은 유혹들을 이겨내고 나쁜 선례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경쟁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온 지금의 모습을 보면 쓴 웃음이 지어진다. 분명 주위에서 응원도 해주고 박수도 쳐주지만 실제로 살아가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채워질수 없고 현실을 무시할수 없다. 꼭 경제적인 부분은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유명하거나 권한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다를지 몰라도 평범한 시민의 아주 작은 실천이 세상에 큰 영향을 주었나라는 생각을 해보면 결국은 아주 작은 변화를 주었더라도 다시 인간의 기본적인 탐욕과 본능에 따라 살게 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더 큰 메시지나 힘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과 뭉쳐서 결속력을 다진다. 세상은 혼자서 살아가지 못하고 함께 살아간다. 어떠한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혼자 하기보다는 조직이나 팀을 꾸려서 일을 한다. 그러나 다 똑같은 마음으로 할 수는 없고 어느 정도는 양보하면서 서로 일하기 마련이다. 그 안에서도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면 편이 생기게 된다. 이제 충돌하는 조직이나 팀이 확실하게 나뉘어 지면 서로가 옳고 그름의 문제까지 가기 마련이다. 서로 편이 나뉘어 지고 이제는 경쟁속에서 결속력을 다지게 된다. 어느 연구기관에서도 공통의 뒷담화는 결속력을 강화하고 연대감을 키운다는 결과가 있다.
공통의 목적과 방향 혹은 공공의 적을 가진 조직은 더 강한 결속력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현실적으로만 바라보면 나에게 보상이 주어지는게 더 중요하고 그게 더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정리하면 세상에 이상적인 목표를 가진 조직보다 바로 눈앞의 보상으로 뭉친 조직이 더 빨리 단단해진다.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빨리 조직이 무너지는 사례를 많이 봐왔지만 결국 이후에도 또 같은 원리의 조직이 생기게 된다. 단단하지 못하다는 문제는 그 이후의 일이다.
정치인들도 공정의 정의를 외치지만 결국 실제 경쟁속에서는 승리자만 인정받는 이 시대속에서는 현실을 무시할 수가 없다. 공수표를 던지고 보상을 약속하는 등 가장 일반적인 인간의 욕구를 채워주려고 한다. 단순 명료하게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겠다라는 거래는 진실성이 부족할지라도 현실에서는 결속력이 단단하고 빠르다. 이상과 목표를 함께 꿈꾸는 진정 어린 공감은 오랜시간 함께 하지 않은 사이에서는 쉽지가 않다.
무한대라면 상관없겠지만 세상 대부분 한정적이다. 심지어 물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랑하는 마음도 누군가를 이만큼 더 사랑하면 다른 사람을 덜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것들은 얼마나 더 피부로 느껴지고 보이겠냐는 생각이다. 돈이든 자리든 한정되어 있다보니 누군가 보상을 받으면 누군가는 잃거나 못받는다. 가끔은 보상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 했을지라도 서운한 감정이 들면 이게 공정과 정의를 말하는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자신의 일을 도와준 사람을 모르는척 하는것도 공정하고 정의라고 표현할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은 서로의 관계와 감정에 따라서 상대방의 기대만큼 이해하거나 채워줄수 있느냐가 현실에서는 주관적인 공정과 정의가 되지 않나 생각을 한다.
나 자신보다 시대적 요구에 맞는 신념과 철학을 가져야 인정받는 직업군들이 많다. 아니 인정받는다고 표현하기보다는 비판이나 비난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수 있다고 해야할까 싶다. 그런다고 위에서 말한대로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적으로만 살아가기에도 무조건 박수받는 일은 아닐 것이다. 죽기전에 정답을 알수 있기보다는 내가 살아왔던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가 더 편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사람들은 시대적 요구에 맞게 나를 합리화 하는 것 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떠한 간단한 일도 정답이라고 확신하기 힘든 삶속에서 보면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똑같은 삶을 요구 할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나의 삶에 후회가 있다면 어차피 지나온 삶 이제와서 어떻하겠냐는 합리화보다는 후회하는 부분은 인정하고 내일은 어떻게 후회를 줄이고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 보았을때 웃을수 있는 삶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세상과 쉽게 타협을 하고 싶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정답이 없는 삶속에서 언젠가 뒤돌아 보았을 때 후회가 적고 잘 살았다라고 말할수 있는 인생을 멋지게 살아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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