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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이야기(6)

글. 배선수

 

현재 우리나라에 시행되고 있는 공적보험으로는 4대 사회보험 제도가 있다. 물론 건강보험에서 시행되는 장기요양보험을 5의 사회보험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이는 건강보험에 포함하여 통상 4대 사회보험이라 한다. 노후의 소득 상실을 대비한 국민연금, 질병과 출산으로 인한 위험을 대비한 건강보험, 산업재해로 인한 산재보험, 실업으로 인한 소득 중단을 보장하는 고용보험이 이들이다. 그러나 인구의 노령화로 노인환자 수가 크게 증가하여 건강보험 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주자 노인환자 중 장기요양을 요하는 사람을 일반 병원이 아닌 자기 집이나 요양시설에서 보호하고 그 비용을 사회보험방식으로 조달하는 장기요양보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사회보험 중에서 산재보험이 64년에 제일 먼저 도입되었다. 건강보험은 77, 국민연금은 88, 고용보험은 95년에 제도가 도입되었다. 우리 사회 사회보험 도입 방식은 늘 탑다운 방식이었다. 보호가 더 필요한 사람을 먼저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 도입에 목적을 두고 상층의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다 점차 아래로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사회보험은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산재보험도 최초 도입 당시에는 500인 이상의 상시근로자를 고용하는 제조업과 광산업을 대상으로 하였다. 도입 당시 우리나라 경제는 농업이 주된 업종이었고 500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근무하는 근로자는 많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모르긴 몰라도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면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주변의 부러움의 사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근로자를 대상으로 제도를 도입하면서 사회보험이라 칭하였는니 얼마나 우수운 일인가?

 

사회보험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는 나와 산재보험과의 필연적 관계를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내가 태어난 해에 산재보험제도가 도입되었고 나와 함께 성장하고 연륜이 늘어 올해가 60년이 되는 해이다. 물론 64년에 태어난 사람이 모두 산재보험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아니어서 일반화의 오류라 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를 필연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95년도 근로복지공단이 처음 출범하던 시기는 직원 수가 1,300여 명이었는데 지금은 10,000명이 근무하는 공단이 되었고 직원 수로만 본다면 우리나라 5대 공공기관에 드는 큰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노동부에서 근로복지공단으로 이직하면서 나는 공무원 경력이 짧아 5급 대리로 전직하여 전주지사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그러다 97년 초에 과장으로 심사승진하자 다른 지역인 대전지역본부로 발령을 받게 된다. 내 직장생활 처음으로 타지 근무가 시작된 것이다. 공단은 본사에서 지역본부 단위로 발령을 내면 지역본부에서 다시 소속 지사로 발령을 내는 방식으로 인사 발령을 한다. 통상 지역본부 간 인적 불균형이 발생하면 승진자를 우선하여 다른 지역으로 전보 발령을 내는데 겨우 과장 승진에도 그 대상이 되었다. 대전지역본부 관내 지사를 살펴보니 그래도 제일 가까운 곳이 보령지사였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고속도로가 개설되지 않아 국도로 다녀야 했지만 그래도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보령지사로 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 보령지사로 발령을 받고 안 사실이지만 대전지역본부 관내에서는 보령지사로 보내 줄 것을 청탁까지 하는 이상한 놈이 전주에서 왔다고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대전 관내에서는 보령지사가 가장 먼 거리인 데다 진폐환자가 많아 민원 업무도 힘들어 가장 꺼리는 지사로 서로 발령내지 말 것을 청탁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니 내가 이상한 놈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가까운 보령지사를 가려고 했던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공무원을 시작하면서 화학교육을 전공한 이과생으로 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근로기준법이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법체계마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이 뭔지도 몰랐으니 말 다 했다. 더군다나 노동부 산재보험과에서 보상업무를 수행하면서는 선임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국가소송(행정소송) 업무를 막내인 내가 맡게 되었다. 법을 전혀 알지 못하니 소장은 전임자가 작성한 것을 참조하여 근근이 작성하였고 이를 국가소송을 지휘하는 검찰청 송무계에 소송지휘를 받으러 가면 핀잔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법정에서도 판사가 사용하는 법률용어를 이해하지 못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창피함을 감내해야 했다. 하여 절박한 필요로 민법 책을 사서 공부하면서 당시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던 이종일 회원에게 민법 강의 테이프를 구해 출퇴근할 때 들으며 공부했었다.

 

그래도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욕심에 전북대학교 행정대학원에 막 입학했는데 보령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행정대학원 입학이 비록 높은 경쟁률은 아니지만 그래도 합격을 위해 행정학 관련 책을 사서 시험에 대비하였고 같이 응시한 후배는 탈락하기도 했었다. 나에게는 석사 학위라는 타이틀보다는 실질적인 공부가 절실했기에 일주일 두 번의 야간수업을 받아 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한 학기 수업을 받고 더는 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민원 업무는 밀려 있는데 한 시간 일찍 퇴근도 눈치가 보였고 그 먼 거리를 운전하는 일은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결국은 한 학기를 마치고 휴학하게 되고 결국은 전북대학교 행정대학원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다했다. 후에 차장 승진하고 공단에서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에 1년 과정으로 개설한 근로복지정책과정에 파견 교육을 받으면서 오히려 행정학보다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전주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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