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
어제 운동을 끝내고 나오면서 보니 아주버님으로부터 전화가 와 있었다.
웬일인가 하고 전화를 드렸더니, 작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다. 별일 없는데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낮에 작은아이와 있었던 일을 말씀하셨다. 낮에 점심을 먹다가 녀석이 화를 내고 가버렸다는 것이다. 점심 먹는 중에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셨다. 무슨 이야기를 하셨느냐고 했더니 딱히 별말은 안 했다고 하시며 일상적인 이야기라고 하셨다. 전에 당신 직장 동료 이야기며 지인 이야기 등등.
짐작이 되지 않았다. 왜일까? 예전엔 어른들이 역정을 냈지, 아이들이 역정을 낸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아이가 어른한테 역정을 내고 어른이 외려 무슨 상황인지 염려를 하고 있으니 거꾸로 된 오륜을 어찌해야 될 지 나도 쉬 생각이 나지 않았다.
녀석이 평소 하던 말을 되짚어 보았다. 삼촌이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어. 삼촌처럼 잘 생기고 예의 있는 어른이 나는 좋아. 삼촌은 늘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친절해. 삼촌이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자신과 눈높이를 맞추어 주어 좋았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던가. 녀석이 삼촌을 유난히 따르고 좋아했었는데 어째 녀석이 삼촌의 말에 화가 났을까?
평소 삼촌 걱정을 많이 하던 녀석이었다. 남편의 형님이셔 큰아버지라고 해야 하는데, 가정을 이루지 않고 혼자 사셔 삼촌이라고 불렀다. 형제 중에 가장 꼼꼼하시고 합리적이면서도 반듯하신 분인데 혼자 사신다는 것 때문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늘 마음을 놓지 못하셨다. 다른 가족들도 그 지점에서는 일정부분 공감하는 쪽이었고 작은녀석이 유난히 삼촌을 좋아해 삼촌과 살겠다고 말하곤 했다. 게다가 삼촌을 염려해 일주일에 한 번은 삼촌과 식사 자리를 갖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아주버님의 말씀만으로는 짚이는 데가 없었다. 그렇다고 녀석에게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는 그 성격에 간섭한다며 노발대발할 것이 분명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아주버님께 죄송하였다. 아이 교육을 잘못하여 근심을 안겨주었으니 말이다.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삼촌과 어제의 삼촌이 같지 않으니 삼촌과 이야기를 나누던 과거의 녀석과 삼촌에게 화를 낸 어제 녀석은 같지 않아 그랬을까? 공부하느라 책상머리에만 있더니 요즘 녀석이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나? 궁리를 하는 중이었다.
저녁을 먹고 친정 언니가 농사지었다고 가져다 준 알타리를 손질하고 있는데 식재료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엄마, 나 사실은 어제 삼촌한테 갔다고 화가 나서 점심 먹다 왔어.
왜 그랬는데?
삼촌한테 무얼 먹을까 물었는데, 삼촌은 항상 너 좋은 거 먹자고 하셔. 그래서 삼촌이 좋아하는 회를 떠 왔는데, 삼촌은 먹지는 않고 자꾸 어먼(다른) 이야기만 하면서 나만 먹으라고 해. 그래서 화가 났어. 그래서 먹다가 사실은 나와 버렸어.
나는 침묵했다. 녀석의 마음을 알았다. 삼촌이 혼자 사니까 음식을 잘 못챙길까 싶어 시간을 내어 삼촌과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있음을.
내가 일부러 삼촌 생각해서 같이 밥 먹는데, 삼촌은 맨날 똑같아. 자기는 어디 가고 맨날 나만 챙겨. 나만 먹으라고 하고. 그리고 다음에는 큰 아빠랑 같이 먹재.
녀석이 큰아빠랑 식사를 같이하고 온 날은 가끔 툴툴거렸다. 삼촌은 자기 먹을 걸 다 큰아빠랑 나한테 주고 자기는 국물만 먹어. 왜 자기 몫을 안 챙겨!
엄마, 삼촌한테 화를 내고 나오긴 했는데 삼촌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편치않아.
나 어떻해?
내가 삼촌 마음을 다 알잖아. 바보같이.
딸아이에게 일렀다. 딸, 삼촌은 그렇게 평생을 사신 분이야. 자기보다 가족들을 챙기는 것을 기쁨으로 알고. 네 마음을 충분히 알겠는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될까.
여전히 딸아이는 내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삼촌을 생각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녀석이 먼저 삼촌에게 전화를 드리고 나면 아주버님께 말씀드려야겠다. 이제 녀석의 손을 놓아주셔도 되겠다고. 녀석도 이제는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놓을 수 있는 나이라고. 충분히 자기로 살고 있으니 염려 안 하셔도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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