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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대목에

. 김경숙/편집위원

 

추석이 가까워지면서 마트나 시장도 대목 준비로 한창이다.

얼마 전 서부시장에서 맥주 축제가 열린다기에 갔다가 홍어 무침을 한 접시를 사오며 남편과 나누었던 얘기 중에 명태전을 좋아한다는 말이 생각나 명태포 뜬 걸 좀 사볼까 하고 마트에 갔더니 마트는 대목 장사 준비로 분주하다. 출퇴근하다 보면 동네 슈퍼도 마찬가지고 시장도 어딜 가나 대목 준비가 한창이다. 제수용품이며 선물상자들이 그득히 쌓여 있는 걸 보면 명절에 대한 상인들의 기대가 느껴지는 대목임에 분명하다.

 

언제부턴가 명절의 모습이 점점 바뀌고 있다. 뉴스에서 보니 이번 추석엔 차례를 지내는 가구보다 안 지내는 가구 수가 많아졌다고 한다. 4.55.5의 비율로. 차례를 안 지내는 가구들이 많아지면서 이들도 명절 기분을 맞볼 수 있게 편의점에서는 명절 음식을 판매한다고 한다. 동태전, 산적 같은 음식을 간편하게 사 먹을 수 있게. 틈새시장을 활용하는 편의점의 상술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맞아떨어져 여러모로 편리해졌다. 간편한 명절, 마음도 훈훈할 수 있을까?

 

남의 이야기로만 듣고 신문이나 뉴스로만 봤던 명절 풍경이 우리집에서도 재현되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추석과 설날에 지내던 차례와 기제사를 정리하여 다니시던 성당의 미사로 대신하자고 하셨다. 때문에, 명절날 음식 준비를 하지 않게 되었다. 명절 당일 미사를 마치고 산소에 들러 조상님께 인사를 올린 후 돌아오는 길 가족이 모여 음식점에서 식사 한 끼 같이하고 헤어지면 그만이었다. 아쉬우면 차 한잔하는 정도. 이렇게 우리 집도 간편한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기를 몇 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나는 가끔 거리를 오가며 낯선 어른의 모습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적당한 키에 꼿꼿한 허리, 정갈하시고 총기가 있으셨던 어머니. 외출할 땐 치마와 구두가 잘 어울리시는 어른. 흥도 많고 늘 긍정적이셨는데, 자식들을 끔찍이도 위하시고. ‘어머니’, 하고 부르면 어이하고 반갑게 대답하시던 것이 생각나 돌아보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추석이 가까워져 오니 어머님의 명절 준비가 새록새록 생각난다. 자식들 먹이는 재미로 언제나 넉넉하고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하셨는데. 수고랑은 아랑곳하지 않던 어머님 마음 덕분에 명절은 늘 풍성했었는데....

 

추석을 앞두고 나는 가족들 식사 문제로 고민 중이다.

어머니의 결단으로 추석 음식 준비 걱정을 따로 안 했는데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지난번 만남에서 오빠가 이번 추석에는 가족들끼리 식사하게 음식 준비를 좀 했으면 한다는 시누이의 말을 흘려들었는데, 막상 추석이 닥치니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마음 한켠을 차지하던 가족에 대한 나의 생각과 그에 대한 선한 마음이 남편의 말 몇 마디에 훌쩍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몇 주 전 주말 산행을 마치고 식사를 하며 남편과 나눈 이야기가 화근이었다. 명절 가족들 식사 준비 이야기를 꺼냈다가 남편의 입에서 나온 우리의 관행이야기에 덧붙여 음식 준비야 며느리가 당연히 하는 거지라는 말에 내가 발끈하면서 이야기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 중단되어 버렸다. 관행을 언급하는 것은 관행을 따르고 싶다는 속내를 에둘러 드러낸 것이리라. 시댁 일에 며느리가 나서서 일하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로 나를 설득하려 드는데 나는 이를 부정하고 싶었다. 명확하게 말로 표현하기는 뭐하지만 내 안의 알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을 건드렸음이 분명하다.

 

결혼하여 처음 시댁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길이 로마로 통하듯 시댁의 모든 일이 어머니로 통해 있었다. 어머니의 결재가 떨어지면 모든 일이 되었고 집안의 모든 일이 어머니 선에서 결정이 되었다. 때문에 자식들은 모두 어머니, 어머니 하며 어머니만 찾았다. 집안의 대소사며 기제사에 자식들 양육과 교육까지도 어머님 몫이었다고 한다. 아버님이 직장일 외의 집안일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동안 어머니는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감당하셨고 어머니는 푸념처럼 쌓인 감정을 며느리들 앞에서 남편 흉보는 것으로 푸시곤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식들은 어머니가 항상 젊다고 생각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자녀들 중 아버님을 가장 많이 닮은 이가 남편이다. 역시 집안일에는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바깥일을 핑계로 방관하거나 무관심하기 일쑤였다. 때문에 나는 시댁도 친정도 주로 혼자 다녔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아빠는 늘 부재중이었다. 어쩌다가 아이와 함께 있게 되면 아이의 마음을 읽을 줄 몰라 파열음을 냈다. 그러다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게 자식들의 근황을 나에게 보고받는 것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며 공을 들여 아이를 양육하는 쪽보다는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

 

주말 고구마순 김치를 버무리며 무우채를 쳐서 생채를 담고 있는데 시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명절날 가족 식사 토요일 저녁에 할 건데 어떠냐고. 내가 왜 저녁이냐고 물으니 상민(큰형님 아들)이가 회사에 출근해서 오후에 퇴근한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전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 후 또 전화가 왔다. 꼭 저녁을 먹어야 하냐고 했더니 시누이가 볼멘 목소리로 큰오빠가 그러는데, 따라줬으면 좋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시댁의 일이니까 며느리로서 따라줘야 할까?

 

어머니 아버지가 가시고 부쩍 가족들이 모이고 싶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의 형제자매들이. 올 추석에도 뒤로 휴일이 기니 음식을 마련해서 함께 식사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어머니가 계실 때처럼. 지나놓고 보니 그때가 좋았던가 보다. 어머니가 계셔서 말없이 챙겨주던 때가. 어머니가 계셔서 당연하게 하셨던 것처럼 며느리가 당연히 챙겨주면 좋겠지만, 하는 며느리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문제다.

 

타인의 수고가 세상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거나 보이고 싶을 뿐이다. 가족도 마찬가지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하다. 타인과 함께하는 세상, 타인과 사고를 공유하기를 원한다면 남편이나 가족이어도 소통을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가족이 울타리가 되어야지 굴레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

다 같이 좋아야 할 명절 대목. 따뜻하고 훈훈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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