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주희
8월 25일 금요일
우리 학교도 많은 구성원의 지지로 9월 4일 재량휴업일이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전라북도 교육감의 『9.4.교육회복의 날』 입장문이 도교육청 홈페이지 팝업을 통해 전달되었다. 교권 회복을 위해 함께 추모하고 뜻을 모으자며 9월 4일 재량휴업일 지정을 지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교육감의 입장문은 마음의 짐을 한결 덜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교육부의 9월 4일 재량휴업일 운영에 대한 엄정 조치 입장이 나오고 도교육청의 입장문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라졌다.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각자 알아서 해야만 한다.
8월 28일 월요일
개학 날 교무 회의 시간, 교감 선생님은 죄송하다며 재량휴업일 추진이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몇몇 선생님들의 용기 있는 발언이 이어졌지만 우리는 모두 교육부의 학교장 징계 뉴스를 알기에 더 말할 수는 없었다. 한마음으로 뜻을 모았던 일이 오히려 서로에게 미안한 일이 되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 아니기에 학교 안의 갈등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들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8월 29일 화요일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 함께 참여하자는 말들이 오갔다. 학년 선생님들과 모여 결론 없이 돌고 도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하였다. 모두 함께하면 참여하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학년 부장들이 모여 학년별 의견을 모으니 다 함께 참여는 어려운 상황. 그 속에서 내 마음도 심한 갈등이 계속되었다. 서이초 선생님의 사건 규명에 힘써야 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고 우리만 알면서 속앓이했던 일들이 세상에 알려졌으니 뜻을 모아야 하는 것도 맞다. 그렇지만 그날 학교는 쉬지 않고 아이들은 학교에 온다. 그런데 선생님은 없다니, 나는 그렇게는 못 할 거 같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8월 30일 수요일
아이들이 학교에 나온다. 그런데 선생님은 없다. 몇 번을 떠올려도 고개가 저어진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학교에 오는 줄 알고 있을 텐데. 아무 말도 없이 그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 생각할수록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9월 4일 학교에 나가야지 않겠냐는 쪽으로 생각을 기울여본다. 그렇다면 서이초 선생님의 사건 규명과 교권 회복은 나와 상관없는 일인가? 스스로 다시 묻는다. 잠이 오질 않는다. 왜 이리 결단력이 없는지 자신을 탓해본다.
8월 31일 목요일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마음의 갈등이 심하다. 건강 문제 때문에라도 매듭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그날 학교에 안 나오더라도 등교한 아이들에게 누군가는 또 필요하다. 4일은 건강 문제로 서울집회 참여는 어려우니 학교로 출근을 하고 9월 2일 주말에는 서울집회에 참석해 뜻을 모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9월 4일에 학교에 남아 3학년 아이들을 돌보는 쪽으로 마음을 정하고 학년 단톡방에 출근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 순간부터 나는 섬처럼 혼자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강한 징계에 대한 보도가 쏟아졌기 때문에 동료들의 마음은 더 무겁고 출근을 결정한 동료들이 불편해 하는 건 당연하다. 아이들 생각과 건강 문제로 출근을 결정한 내 마음도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결정했지만 나는 더욱 길을 잃은 것만 같다.
9월 1일 금요일
옆 반 선생님이 월요일 보결 수업을 이렇게 해달라며 교실에 오셨다. 설명하시는 선생님의 말투와 눈빛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분의 잘못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위축감 때문이다. 이미 내린 결정에 스스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다시 갈등하기 시작하였다. 아니다, 사실은 계속 갈등하고 있었다. 오후 수업이 마쳐지고 한 선생님이 전 교직원에게 모여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그리고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셨다. 불편하고 흔들리는 마음속에 있던 함께 하면 할수록 뜻은 모이지 않겠냐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다시 학년 부장 선생님께 참여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조용히 학교를 나왔다. 월요일 아이들이 교실에 와서 오지 않는 선생님을 기다릴 것이 마음에 걸리고 미안하다. 하지만 뜻을 모아 해야 하는 일 또한 중요하고 교사인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외면할 수는 없다. 극심한 갈등에 마음은 쓰고 몸은 열이 난다.
9월 2일 토요일
건강 문제로 집회 참석 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남편과 둘이 서울로 올라갔다. 우리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남편과 나 검은 점 둘 뿐이었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하나둘 모여드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정류장에 도착한 163번 버스는 우리가 타기도 전에 이미 검은 버스가 되어 있었다. 집회 장소는 뜨거운 태양으로 달구어져 있었다. 그러나 열을 맞춰 앉은 검은 점 하나하나가 물결이 되고 파도가 되어 바다가 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3시간가량 이어진 집회에서는 서이초 선생님을 추모하는 친구들과 동료, 지도교수님의 이야기, 현장에서 말 못 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꾸 눈물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소리 없는 눈물이었다.
교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는 말을 우리는 굳이 하지 않는다. 경험으로 안다. 우리가 힘들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세상은 얼마나 더 힘든 줄 아냐, 방학 있지, 출퇴근 시간 일정하지, 때 되면 월급 들어오지, 배부른 소리 한다며 세상 물정 몰라 그런다는 핀잔들을 줄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말을 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내 주변의 동료들이 정신과 병원에 다니며 약으로 학교를 버티며 다니기 시작했었다. 일과 중에는 학생에게 일과 후에는 학부모에게 당하면서 말이다. 후배 하나도 심각한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의 학부모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시달림을 당해야만 했다. 강단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결국 정신과 병원에 갔다. 심장이 두근대며 불안증세가 올 때면 약을 먹고 안정을 찾아야 했다.
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아 아동학대로 신고되었던 어머니가 3년이 지난 후 그때 담임을 상대로 경제적 정신적 피해 3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걸었다. 대학 때부터 천사 소리 듣던 내 친구는 혼자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지나야 했다.
우리반 아이가 점심시간 축구를 하다 다치는 일이 생겼다. 아이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대뜸 우리 애 다칠 때 선생님 뭐 했냐며 아이 안 다치게 했었어야지 하며 반말로 소리를 질러댔다.
문제 행동이 심한 학생과 학부모를 만난 교사가 스트레스로 아프다가 병가를 내는 일은 현장에서 보통의 일이 되어 버렸다. 연일 쏟아지는 뉴스에 나오는 일들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보았고 당했지만 참는 일 외에 해결책은 없었다. 집회 도중 이런 현장의 이야기가 마이크를 통해 들릴 때마다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건 누군가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뜨거운 날씨와 상반될 정도로 차분한 집회가 이어졌다. 그 속에 흐르는 깊은 공감으로 느껴지는 위로의 힘. 그리고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한 답. 나는 이상하게도 집회가 계속될수록 선생이라는 이 직업을 사랑하고 있다, 아이들을 만나 함께 꿈을 꾸는 일이 신나고 좋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울컥 마음이 뜨거워져 갔다. 설명하기 곤란한 마음이다. 심각한 학교 현장, 나 역시 어려운 우리반 교실 상황이지만 떠나고 싶다가 아니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을 읽어본다.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고민하며 노력하는 동료 교사를, 함께 머리를 맞대며 교육과 아이들로 대화를 채웠던 때를, 밉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면서도 그래도 우리반이지 하며 아이들과 눈을 맞추던 나의 애정 어린 마음을 지키고 싶기에 이곳에 있는 것이다.
9월 4일 월요일
‘건강 문제로 병가를 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학교에 보냈다. 오늘 학교에 있을 큰 혼란을 알기에 학교에 있는 동료들에게 미안하였다. 그리고 나를 기다릴 아이들에게도. 그러나 나는 흔들리는 시간 동안 분명해졌다. 마음의 수없이 많았던 갈등의 조각들을 모아 내 마음을 제대로 읽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마음 깊숙한 곳에 모인 소중한 한 줌의 소리를 얻은 것이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랑은 늘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하고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그렇게 내 마음을 읽으며 내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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