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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글모음/› 회원기고

<회원탐방> 올바르고 가치로운 삶.

그녀 만큼이나 예쁜 정원에서 류혜원 회원을 만났다.

사람은 누구나 올바르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내가 물려 받은 달란트를 다시 사회로 환원하기 위해, 시민들을 만나고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며 새로운 에너지로 생활하고 있었다.

 

억압받는 사람에 대한 나의 관심,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 저의 어릴적 환경의 영향력이 가장 큰 것 같아요.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촌 오빠들이 고등학생인 저에게 추천해줬던 책? 그리고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늘 들려주셨던 만주에서 이야기, 광주 항쟁,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억압받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제가 어디에 있어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저에게는 자연스러웠습니다.

 

전 어릴 적부터 음악을 했기 때문에 전북대학교 음악교육학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기 때문에 교수님들이 저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학업에 대한 관심보다는 늘 집회 장소에서 선배들과 함께 있으니까 어느날 교수님이 저희 엄마를 부르셨다고 해요. 왜 노래를 안 하고 데모를 하고 다니는지 그런데 저희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억눌린 사람을 위해 살았기 때문에 쟤가 데모를 해요...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제가 대학에 입학하고 3년 동안 노래를 안 했거든요. 교수님이 어느 날 저에게 왜 노래를 안해? 라고 물어보는데 제가 그랬죠, 선생님 누군가 잡혀가고 또 누군가는 고통을 받는데 제가 지금 노래하는 게 무슨 가치가 있나요? 그런데 우리 교수님 하시는 말씀이 원래 음악은 누구에게나 위로를 주는 거 였어. 시대가 바뀌면서 클래식을 향유하는 사람이 부자였던거지 음악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상관없는거야그 말이 저에게는 충격이었고 내가 부르는 노래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겠구나 해서 4학년 때 다시 노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사대를 선택했죠. 사대 풍물패가 만들어지면서 여자 상쇠 일번으로 선배들과 지내게 됐죠. 김영기 대표님과의 인연도 그때부터였고요 완전 찐 친구가 됐습니다. 그때 당시 노동운동으로 가는 선배도 있었고, 교육운동을 시작하는 선배도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전교조 이전 전교협 시절 길거리에서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참교육, 교육의 민주화를 위해 해직교사로 서명운동을 하고 계시는 이미영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학생운동을 하고있는 학생, 그리고 앞으로 학생을 가르칠 교사로서 저에게는 정말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인연들이 참여연대와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이어졌고 제가 교육현장에서 교사로 일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사랑으로

 

고창에서 첫 교직 생활을 시작으로 10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늘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인간답게 가르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러러면 선생님인 우리가 어떻게 노력할 것인가? 교직 생활하면서 선생님들과 고민도 많이 하고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배움

 

작년에 어느 단체에서 주최하는 교육 인권에 관한 온라인 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육현장에서 20~30년 동안 생활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의 이야기, 또 최근에 있었던 서이초등학교 사건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학생 인권이 중요하듯이 교사 인권도 존중 받아야 되고 교육현장은 누구나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존재로 서 있어야 되는 게 당연하지만 교육현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교육의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봐요.

우리나라 교육이 추구하는 방향, 철학이 없기에 우리 교사들이 내용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철학을 만들었던 30년 전 누구나 좋은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게 우리의 목적이었고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들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인간다움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별로 안 좋아하고 오히려 성적을 좋게 주는 선생님을 더 좋아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임용고시 또는 대학수능 이러한 정책들이 교육현장을 바꿔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사가 된 이유는 첫 번째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교사가 된 것도 있지만, 두 번째는 교사가 아닌 개인 레슨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저는 아이들이 돈벌이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교회로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인격적인 존재로 자랄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사회로 보답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지? 고민했고 그래서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사회가 한 개인에게 줬던 배움이었는데, 지금은 이 사회가 아이들에게 주는 배움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음악을 전공했으니까 밖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을 만나보면 한국 음악계에 무슨 일이 난 줄 알아요. 아이들이 대회만 나가면 무조건 1등을 하거든요, 물론 예술적으로 뛰어나서도 그렇고, 그렇게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많이 했겠죠. 하지만 과연 이 아이들이 사회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조직의 힘....

 

대학4년 가장 감수성이 있고 사회를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그 시절 우리의 관심은 오롯이 사회였습니다. 아무래도 교육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전교조에 대한 관심이 참 많았습니다.

일본교직원노동조합에 관한 책을 읽게 됐습니다. 일교조의 교사로서 인권은 무너지고 노동자로서 인권이 강조되는, 교사라는 본질은 무너지고 근무수당 근무조건 이러한 것들로 투쟁하 일교조 활동을 접하면서 우리도 일본교직원노동조합처럼 변질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참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투쟁했고 해직당한 거지 근무조건 수당 때문에 해직당한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너무 빠르게 변질됐고, 이제는 교사의 대표성을 띈 조직이 없어졌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가 아닌 또 다른 형태로 시민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젠 교사가 아닌 시민이고 주부입니다. 학교 현장에서가 아니라 시민들이 있는 곳에서 얼마 남지 않은 지구위기 기후변화 등 시민들과 함께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도 함께 공유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또 지금 나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한국컴패션 활동을 통해 열심히 실천하고 있습니다.

com(함께) passion(고난) 고난을 함께하다. “아이들을 가난으로부터 해방시키자국제어린이 양육 기구입니다.

한국컴패션은 1952년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한 목사님이 전쟁 속에서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를 돕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한국은 1952년부터 1993년까지 컴패션의 도움으로 많은 어린이들을 성장시켰으며 2002년에 우리나라는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어 한국 컴패션을 오픈하게 됩니다.

 

컴패션의 후원금 중 85%가 오롯이 아이들의 양육을 위해 쓰여지고 있고요. 한 명의 아이를 후원하면 25천명의 아이들의 삶이 바뀐다고 해요. 또 그렇게 후원받은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서 다시 컴패션 후원자로 돌아와서 또 다른 아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저는 2006년부터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후원하는 아이들을 만나러 가면 너무 가슴이 아파 울다 오기도 하고 때로는 그 아이들을 통해 나의 삶이 성장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제가 후원하고 있는 친구들 만나러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님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더라구요. 한국에도 가난한 아이들 많은데 왜 외국까지 가서 아이들을 돕냐고?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가 다 가난해서 굶어서 죽어요, 그래서 갑니다. 한국은 굶고 있지만 그래도 옆에 좋은 어른 만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잖아요. 그곳 아이들은 쓰레기 마을에서 쓰레기 주워다가 쓸만한 것 있으면 팔고, 먹을만한 것 있으면 먹고 그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업이나, 또 내가 활동하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보면 내가 어릴 적 어떠한 삶이 올바른 삶인가에 대한 방향이 있었기 때문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고 그게 저한테는 큰 은혜인 거 같습니다.

 

다양성을 창출하는 참여연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예전에는 NGO에서 일하는 게 큰 자부심이었고 사회변화를 위해 일하는 게 너무 가치로웠다면 지금은 시대가 바뀌면서 꼭 시민단체가 아니더라도 개인이 시민운동가 돼서 각각의 소모임으로 시민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조직된 시민의 힘이라는 건 과거나 지금이나 꼭 필요하지만 딱딱하고 누군가에 이끌리어 사회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유연성을 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을 수 있는 또 그러한 역할을 하는 단체가 참여연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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