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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 블루스

나는 올해 새 학기 첫날 우리반 아이에게 욕을 들었다. 아이들에게 활동 안내를 하는데아이 시발하며 한 아이가 욕을 하는 것이다. 나의 귀를 의심했다. 아이에게 욕한 게 맞는지 물어보니 당당히 했다고 한다. 욕하는 건 아니지, 하니까 왜요? 라는 말을 하며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나도 화가 많이 났다. 하지만 첫날 첫 수업 중에 일어난 일이라 감정을 누르고 아이를 지도한 후 지나갔다. 그다음 수업 시간에도 내 말이 끝난 후 또 욕을 하고 왜요? 라는 말을 하였다. 거침없는 욕과 폭언, 고함으로 녀석은 친구들에게는 말도 못 할 만큼 함부로였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교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3월 어느 정도까지는 아이들도 자신을 숨기고 선생님과 학급 분위기를 살피는 법인데 이 녀석은 그런 것도 없이 첫날부터 자신을 과감하게 내보였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갔다. 내일이 걱정되었다. 욕하고 화 잘 내는 3학년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른 채 둘째 날을 맞이했다. 마찬가지였다. 수업 시간 책 안 펴는 것은 기본이고 책상 주변은 쓰레기로 가득, 친구들에게 윽박지르고 욕하고 밀치고 때리는 상황은 심각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행동에 반성하는 기색도 없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 아이들과 하려고 준비한 것들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교실은 욕과 고함, 당한 아이의 억울함과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으니까. 텔레비전 전문가처럼 해결책을 척척 내면 좋으련만,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고 답답하기만 하였다. 다른 부모님들의 민원은 쏟아져 갔고 수업은 진행이 안 되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아이의 삐딱하고 뻣뻣한 태도였다. 나의 어떤 말도 아이에게 들어가질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응급실에 가 링거를 여러 차례 맞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학교에 가면 끔찍한 교실 속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푸느라 전전긍긍하다 집에 돌아와 시체처럼 누워있곤 하였다.

 

한 달이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을까. 4월이 되니 체력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한의원에 가 급히 한약을 짓고 치료를 받았다. 퇴근 후 일상생활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음날이 되면 일어나 학교에 갔다. 아이의 문제도 해결해야 할 급선무였지만 다른 아이들이 이로 인해 받게 되는 영향 그리고 반 분위기도 위기였다. 나는 학교에 가서 사는 것인지 버티는 것인지 모른 채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갔다. 그러면서도 시작하기도 전에 폐허가 된 학급의 기초를 다시 쌓아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초등학교 교실 속 작은 공동체는 효용성과 성과를 중심에 둔 회사와는 다르다. 우리 공동체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더 큰 노력을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 그 자체를 경험하는 곳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가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공동체가 되어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을 저절로 배우고 익혀가게 된다. 그래서 학생이나 교사는 조직의 역할을 담당하는 기능이나 수단이 아닌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학생 교사 모두가 우리 학급은 안전한 곳이다는 공감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안전함 속에는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지만, 무엇보다도 잘못된 일이 생겨도 서로가 서로의 안전망이 될 거라는 믿음이 핵심이다. 잘못과 실수가 책잡히는 일이 되거나 평가로 이어지는 곳에서 인간은 불안과 긴장이 높을 수밖에 없다. 잘못의 두려움은 자유로운 날개를 달고 생각과 마음을 뻗어가며 새로운 배움에 뛰어들어 알아가는 즐거움과 함께 있을 수 없다. 자신을 계속 검열하고 외부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잘못될까 조바심치는 방어력을 상승시키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을 검열한 기준으로 혹독한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하게 된다. 꽤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나, 그 공동체는 이미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된다. 우리는 완전해서 무언가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너그러운 마음이 찾아오는 것이고 내가 그러하기에 너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반은 지금 어려움에 있지만 나와 아이들은 불완전한 모습으로 거듭거듭 일어나야 한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린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욕을 하는 아이와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였다. 다행히 아이가 자신의 언행을 고칠 생각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먼저 욕하지 않기라는 목표를 세우고 아이는 노력을, 나는 그 노력을 돕기로 약속했다. 나 스스로는 하루에도 여러 번 분노를 촉발하는 아이의 일에 화를 내거나 야단치는 방법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노력에 나도 답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아이와 나는 조용히 만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도 세우고 다짐도 한다. 물론 극적인 결과는 없다. 그래도 아이가라는 소리를 내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기도 하고 염치없는 웃음을 보이기도 한다. 반 아이들과의 문제도 여전하다. 그래도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사과하기 시작하였다.

 

고군분투하며 한 학기를 지나왔다. 어려운 일이 힘들긴 한가 보다. 건강이 좋지 않아 방학 동안 병원과 한의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다시 학교에 나가 부딪힐 일이 걱정되기도 한다. 미완성된 우리들의 그림, 어떻게 그려질지 알 수 없지만, 아침이 되면 교실 문을 열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싶다.

 

글 이주희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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