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주희 회원
교단일기 #44
학교에서 2월은 어수선한 달이다. 신학기를 준비하며 교실이 바뀌고 나의 짐도 이사를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들일 것은 들이며 묵은 짐을 정리하고 청소를 한다. 상당한 체력이 소모되는 일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새롭게 만나는 우리반 아이들에 대한 것이다. 20여 년간의 경험이 분명 있긴 하지만 이때가 되면 머릿속이 엉켜버리는 것만 같다.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까? 교육과정을 만들고 학급환경을 구성하고 첫 주에 할 활동도 준비하고 원격수업 대비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몸이 하는 일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 엄마는 요리를 잘하신다. 엄마가 갖고 계신 요리의 자부심은 조미료가 없는 음식, 맵고 짜고 달지 않고 심심한 듯 담백한 음식, 손수 모든 걸 준비해 만드시는 데 있다. 엄마는 모든 것을 집에서 해주셨다. 삼시세끼 밥은 물론이고 호떡, 빵, 치킨, 만두, 떡까지. 그런 엄마의 온기가 도는 음식들을 나는 오랫동안 먹었다. 그 영향이었을 것이다. 나도 내 삶의 많은 시간을 요리하는 일로 보낸다. 엄마만큼 다양하고 깊이 있지는 못하지만 내가 직접 만들어서 가족들과 먹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마트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돈가스도 직접 고기를 사다가 양념을 하고 달걀과 빵가루를 묻혀 만든다. 다 큰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먹었던 엄마표 돈가스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말을 고맙게도 한다. 내가 그러하였듯이 엄마의 시간과 온기가 담긴 음식이 아이들의 삶에 차곡차곡 쌓인다는 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월 신학기 준비를 위해 학교 출근이 예정된 주간에 아들 녀석이 코로나 확진이 되어 우리 가족은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다. 바쁘게 돌아가던 시곗바늘이 우뚝 멈춰서고 뜻밖에 찾아온 시간은 선물처럼 느껴졌다. 나름대로 끄적끄적 적어놓은 요리 레시피를 뒤적이다 찐빵을 만들었다. 찐빵은 2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팥소와 빵 반죽이다. 팥은 씻어서 한번 끓여낸 후 다시 삶는다. 나는 압력솥을 이용해 팥을 빠르게 삶아낸다. 잘 으깨지도록 푹 삶은 팥은 먼저 소금으로 간을 한다.
그런 후 설탕을 넣어 단팥을 만드는데 이때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단맛은 가지고 있는 팥소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그게 나의 찐빵 맛의 포인트다. 설탕을 섞으며 자연스럽게 팥은 으깨지지만 덜 으깨진 팥들도 간간이 보이도록 힘 조절을 한다. 그럼 팥소는 준비 완료! 이번엔 반죽이다. 반죽은 강력분과 박력분을 적절히 섞어 만든다. 체에 쳐서 고운 가루로 만들고 살짝 데운 우유에 이스트, 약간의 소금과 설탕, 버터도 조금 넣어 반죽한다. 반죽하는 것은 남편의 몫이다.
손으로 여러 번 치대며 반죽하는 과정은 여간 힘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30분 정도 손반죽을 하면 반죽은 사람의 온기를 머금고 따듯하고 말랑해진다. 뚜껑을 덮고 이불 속에 넣어두면 따듯한 아랫목에서 빵 반죽은 까무룩 잠이 들고 2~3시간이면 부풀어 깬다. 그럼 다시 반죽을 치대 그 안의 공기를 빼준다. 모든 준비가 마쳐졌다. 귀여운 찐빵을 만들 시간이다. 반죽을 적당량 떼어 동그랗게 만들다 가운데 구멍을 만들고 팥소를 듬뿍 넣는다. 오므린 반죽은 손가락으로 꼬집고 동글동글하게 모양을 잡는다. 이때 모양을 잡고 40분 정도 찜기에 그대로 둔다. 그럼 2차 발효가 되어 빵은 잘 부풀고 결이 생긴다. 그런 후 불을 켜 15분 정도 찌면 완성이다. 찜기에서 김은 바쁘게 솟아오르고 그 사이로 찐빵은 익어간다. 뚜껑을 열었을 때 그 속에서 한껏 부푼 동글동글한 찐빵을 보게 되면 “와!!” 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이렇게 만들어진 찐빵은 순식간에 가족들의 입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누군가 꼭 이 말을 한다. “맛있다!”
요리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비효율적인 일이다. 많은 시간도 노력도 필요하다. 오히려 사서 먹는 것보다 더 많은 재료비가 들어가기도 한다. 때론 시간을 음식 만드는데 쓰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내 일생에 차곡차곡 쌓인 엄마의 음식들은 그저 음식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도 되고 생각도 되고 마음도, 영혼도 되었음을 나는 잘 안다. 음식은 그저 생명 유지를 위해서만 맛있기 때문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엄마의 음식 덕분에 건강하게 사람 구실 하면서 사는 거 같다.
갑자기 주어진 자가격리 시간. 속임 없이 꼭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찐빵을 완성하고 나니 내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3월에 만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하면 되지! 뭔가 바로 되게 하려고만 하지 말고 어리석어 보여도 하나하나 직접 해가는 거지, 봄에 이르면 꽃이 피고 어린 새싹이 돋아나듯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내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다해 아이들을 만나면 그다음은 아이들이 스스로 찐빵도 되고 꽃도 되고 새싹도 되는 거지. 뜨끈한 찐빵을 한입 베어 물며 나는 배시시 웃었다.
역시 요리는 세상의 잣대로 계산할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삶이 던진 질문까지 척척 답해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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