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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글] 조금 더 어른

교단일기 #43

 

글 | 이주희 회원

 

 

01. Merrily

 

일은 힘들다. 여행은 즐겁다.

어느결에 내 삶에서 이 둘은 서로 반대말이 되어 있다. 물론 이 둘은 분명 다르나 반대말은 아니다. 유독 일을 하려면 힘들다는 생각이 먼저 찾아오고 그걸 참아내거나 이겨내며 하게 되는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은 그저 해치워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일들은 내 삶의 시간 속에 나와 함께 하며 내 삶을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되고 있다. 그래서 나의 일들은 그저 차창으로 넘어가는 풍경이 되지 않고 내 삶에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남기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기에 내 삶을 채우는 수많은 일을 조금 더 즐겁게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세상과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과 역할에 맞추려 애쓰며 눈치 보던 내가 많다. 일하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충만함과 즐거움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 나이의 숫자가 하나씩 늘어날수록 계산 없이 느껴지는 텅 빈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 거 같다. 좋은 결과나 아무것도 안 하는 편한 상태 등, 나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것에 따라 생기는 즐거움만 느끼고 있는 나도 떠올려 본다.

 

이제는 아이들과 만나 나누는 일상과 가족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있는 그대로의 진심으로 모든 일을 하고 싶다. 내 나날의 삶 속에서 다가와 내 삶의 기록이 되어 나를 채우고 만들어가는 수많은 일, 나는 일 그대로에 진심을 담아 즐겁게 하고 싶다.

Merrily!!!

 

 

02. 마음의 불빛

 

아들 녀석을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시간은 이르다. 아침 730분의 학교는 적막 속에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느 때처럼 먼저 들어선 현관에 누군가 서 계셨다. 깜짝 놀라보니 학교에서 방역 활동 등을 도우시는 시니어 어르신이다.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며, “오늘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 하니, “선생님 보려고 일찍 왔어요.” 하는 것이다. 그 말을 장난스럽게 생각하고는 다시 여쭸다. “추운데 왜 일찍 나오셨어요?”, “저 진짜 선생님 만나려고 일찍 나와 있었어요.” 하시는 거다. 놀라서 저를 만나려고 일찍 나오셨다고요?” 했더니, “, 선생님 일찍 출근하시잖아요. 그래서 선생님보다 일찍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놀라 동그랗게 눈을 뜬 나의 손을 덥석 잡으시더니, “선생님 저 오늘까지만 학교 나와요. 그래서 선생님 얼굴 보려고요.” 하시는 거다. 40학급이나 되는 큰 학교에서 근무하는 나는 학교 돌아가는 사정도 모르고 교실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시니어 어르신들의 활동이 끝나는지도 몰랐다.

 

정말요? 아이코, 몰랐습니다. 몰랐어요.” 하는데, 그런 나에게 그분께서 두 손을 맞잡으시더니, “선생님 정말 고마웠어요.” 하신다. 어르신께 고맙다는 말씀을 이렇게나 들을 일을 하지 않아 말을 못 잇고 있는데, “선생님 만날 때 반갑게 인사해줘서 고마웠어요. 누가 그렇게나 반갑게 저에게 인사를 해주겠어요. 잘 지내냐고 물어 봐줘서 고맙고 애쓰신다고 말해줘서 고맙고, 여름에 음료수 사주신 것도 고마웠어요.” 하시는 거다. 생각지도 못한 어르신의 말씀. 뵈었을 때 인사드린 거, 안부 여쭤본 것, 더운 날 음료수 한번 사드린 것 딱 그것뿐인데, 추운 이른 아침부터 나오셔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거다. 눈물이 왈칵 나왔다. 그분도 나를 보고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그러면서 작은 쇼핑백 안에 손수 말리신 곶감을 주셨다. “제가 깨끗이 말린 거예요. 선생님 꼭 드리고 싶었어요.” 하신다. 나는 어르신을 꼭 안아드렸다. 어르신과 헤어지고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 하나하나에 꺼졌던 마음이 하나둘 켜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바삐 돌아가던 일상 속에서 나도 모르게 꺼졌던 마음의 불빛들, 그분의 사랑으로 다시금 불을 밝히며 이른 아침 어두운 교실에 불을 켠다.

 

 

03. 조금 더 어른

 

우리반 아이가 점심시간에 놀다 패딩이 찢어지는 일이 생겼다. 찢어진 패딩 사이로 가벼운 깃털들은 교실에 뿌옇게 날아올랐고 교실 안은 난리가 났다. 아이들과 함께 최대한 치운다고 치웠지만 교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알러지가 있는 아이들은 눈이 가렵고 빨개져 보건실에 다녀왔다. 마스크를 썼어도 목은 칼칼하였다.

 

퇴근 시간이 되어 교실에 혼자 남게 되었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시작하였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교실 창문으로 들어와 복도 창문으로 씽씽 잘도 나간다. 서랍 속 책을 한가득 넣고 있는 무거운 책상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며 청소기를 돌렸다 걸레로 닦았다 하면서 남아있는 깃털 제거에 총력을 펼쳤다. 하지만 깃털들은 어디선가 나와 비웃듯 교실을 유유히 돌아다녔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를 도우러 남편이 왔다. 남편이 책상과 의자 발을 뒤집어보더니 뚫린 구멍들 사이에 낀 먼지에 깃털들이 한가득 인 걸 발견하였다. 남편과 나는 걸레에 물을 충분히 적셔 교실에 있는 60여 개에 달하는 책상과 의자를 들어 올리고 뒤집어 가며 닦았다. 한기로 가득한 교실에서 깃털 제거를 모두 마쳤을 때는 무려 3시간이 지나 밤이 되어 있었다.

 

밥도 못 먹고 추운 교실에서 힘든 청소를 3시간 동안이나 하니 여기저기 쑤시고 몸이 고단하였다. 그런데 나는 짜증이나 화가 나질 않았다. 힘들다는 사실에 있어야 할 감정의 반응이 없어 오히려 이상하였다. 청소하는 동안 나는 깃털들을 어서 치워서 내일 아이들이 건강하게 숨 쉬고 놀고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패딩이 찢어진 아이가 아이이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는 부분을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좀 더 어른으로 자라게 해준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내 삶의 동반자로 생각하며 그대로에 진심을 담고 즐겁게 하려는 마음을 가져본다. 그리고 그 마음은 누군가 주신 사랑으로 불빛을 내고 나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