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 숙 (민생희망국)
돈을 벌려면 가계부를 쓰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규모 있게 살림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경제주체는 일 년 단위로 경제계획을 세우고 한 해가 지나면 결산을 통해 살림살이를 평가하듯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도 일 년간의 살림살이 계획을 세운다. 특히 지방정부의 예산편성은 고도의 정밀성을 요하는 일종의 과학이다. 미리 예측하고 분석해서 한 해 동안 사업별로 쓰이는 돈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산이 잘 짜여지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효율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가를 감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산편성과 심의 과정에서부터 신중하고 치밀해야 한다.
성립 전 예산편성은 요건에 맞게
예산은 편성절차에 따라 본예산과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으로 나눠진다. 서두에서 얘기했듯이 예산이 고도의 정밀성을 필요로 하지만 미래의 변수를 예측해서 예산을 수립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추경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추경이란 국가재정법 제89조에 따르면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 편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실제 재정 현실에서는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경우가 오히려 일반적인 상황이 되고 있다. 그런데 추경예산안 심의까지 기다릴 수 없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성립전예산’이다. 쉽게 설명해 통장의 돈을 먼저 쓰고 나중에 허락을 맡아도 되는 예산이다.
서두가 길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성립전예산’이다. 지방재정법 제45조에서는 예산 성립 전에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을 따로 규정하고 있다. 소요전액이 교부된 경비와 재난구호 및 복구와 관련하여 복구 계획이 확정·통보된 경우 그 소요경비에 대해 의회의 예산승인 전에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예산을 집행한 후 추경예산에 계상해 의회의 승인 절차를 거치는 제도다.
언론사 포럼행사가 긴급 상황?
전주시 21년도 추경 예산서를 살펴보다가 “이런 사업도 성립전예산? 왜?” 이어서 몇몇 지자체 예산서도 뒤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관례적으로 성립전예산을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예산총칙에 성립전예산 사용에 관한 규정을 표기한 자치단체는 없었다.
그 중, 전주시의 성립전예산 집행 사례를 들여다보자. 전주시의 21년도 추경예산서를 살펴보니 국·도비 100% 지원 사업이 아닌데도 예산을 우선 사용하고 추후 의회 승인(?)을 요청하는 사례들이 확인되었다. 전주시 17개 부서에서 총 136개 사업에 대한 성립전예산을 집행했다. 성립전예산 가운데는 ‘전통시장 시장매니저 지원사업’,‘전북 청년지역정착 지원사업’ ‘뉴스1전북포럼’ 등 재난구호 및 복구 그리고 긴급사용과 관련이 없고, 국·도비 100%지원사업이 아닌 사업들이 많았다.
특히, 뉴스1 전북포럼의 경우 ‘전북형 드론산업의 향후 전망과 전략’ 이라는 주제로 총 사업비 2천백만원 중 전라북도 예산이 1천9백만원 집행했다. 언론사가 주관하는 포럼 행사 등에 지자체 예산이 지원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일회성 포럼 행사 치고는 예산규모가 큰 편이다. 더욱이 포럼행사가 진행된 때에는 전주지역에 사회적거리두기 3단계를 적용받아 49인이하 집합금지 행정명령이 발동된 엄중한 시기였다. 포럼의 그 어떤 내용에서도 사안의 긴급성을 찾을 수 없다.
또한 문화정책과에서도 다수의 축제행사들이 추경심의 전에 집행됐다. 축제행사가 취소되면 예산의 불용처리로 재정분석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이러한 예산은 한번 편성되면 쉽게 축소하거나 일몰하기 어려운 예산이라고는 하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추경안 심의 전에 집행해야 할 만큼 긴급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예년보다 축제행사예산이 감소하기는 했으나 좀 더 과감하게 감추경해 코로나19 대응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업에 편성했으면, 어땠을까?
[표] 전주시 2021년 1·2차 추경 성립전예산 현황(136개 사업 중 일부) | |||
(단위: 천원) | |||
부서 | 구분 | 세부사업 | 예산 |
일자리청년정책과 | 2차추경 | 노사민정 협력 활성화 | 18,180(국,시) |
전통시장 시장매니저 지원사업 | 9,600(도,시) | ||
전북청년지역정착지원사업 | 1,292,400(도,시) | ||
문화정책과 | 1차추경 | 희망의 힐링 콘서트 | 8,800(도) |
수필의 날 전국대회 | 20,000(도) | ||
아중중 어머니합창단 정기공연 | 6,000(도) | ||
2차추경 | 전국 품바 명인전 | 30,000(도,시) | |
콘서트 다수 등7건 | 95,900(도) | ||
한옥마을 전통연회 퍼레이드 | 24,000(도) | ||
수소경제탄소산업과 | 2차추경 | 뉴스1 전북포럼 | 19,000(도) |
체육산업과 | 2차추경 | 전주시민축구단지원 | 630,000(도,시) |
대통령배 전국 수영대회 | 125,000(도,시) | ||
소규모 생활체육시설 조성 지원 | 100,000(도) | ||
시민안전담당관 | 2차추경 | 무더위쉼터운영(사무관리비,기간제등보수) | 60,323(도) |
맑은공기에너지과 | 2차추경 | 마을단위 LPG배관 지원사업 | 750,000(도,시) |
전통문화유산과 | 2차추경 | 무형문화재 전수시설 개선지원사업 | 68,880(도,시) |
건축과 | 2차추경 | 인후반촌도시재생뉴딜사업(사무관리비 등) | 4,000,000(균,도,시) |
교통안전과 | 2차추경 | 어린이보호구역 불법주정차 단속장비 설치 | 508,000(도,시) |
농업정책과 | 2차추경 | 농촌자원 복합산업화지원 | 368,000(도,시) |
완산여성가족과 | 2차추경 | 어린이집 보육도우미 지원 | 215,000(도,시) |
덕진여성가족과 | 2차추경 | 어린이집 보육도우미 지원 | 242,800(도,시) |
<출처: 전주시 1·2차 추경 예산서 재구성> |
예산은 ‘돈’ 아닌 ‘정책’, 예산의 주인은 시민이다
‘성립전예산’은 사전집행이라는 특성 때문에 의회의 고유권한인 예산심의·의결권을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다. 하여, 의회의 의결권을 제한할 만큼의 긴박하고 꼭 필요한 사업에 극히 예외적으로 써야 한다. 의회 또한 지방의회 기본권인 예산의결권 행사를 통해 집행부에 대한 견제기능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2019년도와 2020년도 전주시의회 결산검사의견서를 살펴보니 ‘성립전예산’에 대한 지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 회의록에도 ‘성립전예산’에 대한 의례적인 몇 차례 질문 외에는 성립전예산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의회가 ‘성립전예산’ 제도를 잘 모르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설마!
<성립전예산 절차 및 운용> | |
근거 | 지방재정법 제45조 |
절차 | 예산 선 집행⇢추경편성⇢의회예산심의 |
시기 | 추경 편성 전 |
의회보고 | 사전보고 없음 |
의회삭감 여부 | 불가 |
의회동의 여부 | 사후동의 |
지방예산의 편성은 매우 중요하다. 지방예산편성은 각 부서의 사업계획을 지방정부 전체의 관점에서 조정하고 재정운영계획을 수립하는 것으로 이러한 기획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사회전체의 자원은 비효율적으로 배분될 소지가 크다. 그리고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간다. 예산은 정책이고 정치다. 정책 결정은 예산을 통해서 드러나기에 예산을 편성하고 심의 확정하는 것은 가장 노골적인 정치행위이기도 하다. 행안부 예산편성기준에 “예산과정 중에서도 특히 예산편성 과정은 가장 전형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국가의 정책목표와 관련하여 그 합리적 배분이 요청되지만, 실제로는 예산구조에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권력관계나 동원된 정치권력 영향력에 의하여 크게 좌우된다.”고 되어 있다.
‘성립전예산’에 대한 보다 엄격한 제한 조치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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