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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교사, 전업주부로 살기] 전업주부의 사회활동

정우식 (회원)

 

 

 

  앞선 연재에서 4월에는 노부모 돌봄 부담의 힘겨움을 토로하며 늙음을 현실적으로 준비하자 했고, 6월에는 배려가 지나치면 상관이 되고 마침내 간섭으로 변질될 수 있으므로 가까운 관계일수록 적당한 경계두기가 필요함을 화두로 던졌다. 두 화두 모두 오지랖 넓은 내 삶을 성찰하면서 건져낸 것이었다.
  오늘도 이 오지라퍼의 사는 이야기를 넋두리로 받아들이고 편하게 읽어주시기 바란다.

 


“아뿔싸, 밥이 젤 문제여.”
  나 자신에게 어느 정도는 휴식을 주고 싶었던 것이 퇴직 결심의 작지 않은 이유였는데, 그놈의 오지랖이 넓다 보니 이것저것 관여하게 되어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아뿔싸(정말 오랜만에 불현 듯 떠오른 난생 처음 구사해 보는 감탄사다. 라떼는 말이야 냄새가 풀풀 나는. 그런데 꼰대 아니랄까 봐 쓰고 보니 꽤 매력 있고 정감이 간다.ㅋㅋ),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반어적 농담인 줄만 알았더니 딱 그 짝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른 채 지나쳤으면 모르되 알고서야 어찌 모른 체하랴?
  집안 살림을 전담하면서 틈틈이 사회 활동을 병행하려니 제약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문제는 때 되면 하루에도 세 번씩이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끼니 해결 문제이다. 대략 6시간 간격으로 시간을 세 토막 내기 때문이다. 차려진 밥을 그저 받아먹기만 할 때는 6시간 토막도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여러 신경이나 과도한 에너지를 쓸 필요도 없이 식사 시간을 또 하나의 휴식으로 여기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치매를 앓고 계신 노모와 우리 부부와 아직 중학생인 딸까지 세 세대로 이루어진 복합 구성의 식구를, 그것도 서로 스케줄과 라이프스타일이 다 다른 식구를 거두어야 하는 살림을 전담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밥 문제는 그리 만만치 않은 문제로 바뀌었다. 가족 구성원 모두의 식사 시간이 언제나 동일하다고 가정하더라도 한 번 끼니를 준비하려면 이동시간까지 포함하여 아무리 적게 잡아도 앞뒤 1시간씩은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산해보면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4시간 정도로 토막 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전업 이전에는 휴식일 수 있던 식사 시간이 전업주부에게는 이마저 고스란히 일로 돌아오는 것이어서 신경 쓰는 부담이 더해지니 좌불안석인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회의를 여유 있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집에 황급히 돌아와야 하는 일도 있고, 늘 시간을 쪼개 쓰듯 하고 괜히 쫒기는 마음에 서두르기 일쑤다.

 


사회활동을 하고픈 전업주부, 이렇게 산다.
  전업주부 살림남도 사회활동 욕구는 있다.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사)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활동과 익산에 기반을 둔 사)교육문화중심 아이행복 활동 비중이 단연 크지만,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와 전북교육자치시민연대 등의 시민사회단체 활동도 퇴직 전부터 계속 해오고 있다.
  퇴직 이후 새로 발 담근 몇 가지 활동 중 주요 활동 세 개만 소개하려 한다. 널리 공유하고픈 내용들이 있어서이다.

  퇴직하고 나서 지난해부터 곧장 맨 처음 시작한 것은 전주시 시민정원사 양성 프로그램인 ‘초록정원사’ 연수였다. 교사 시절부터 환경공학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학교 숲(정원)과 함께 교실 정원이 꼭 필요하다고 여겨온 터라 이를 실제로 구현해내려면 정원을 알아야 했기 때문에 쉬는 걸 다소 포기하고 뛰어들었다. 정원박람회 정원 공모에도 선정되어 동료들과 함께 배워가며 하느라 6개월 이상 꼬박 매달려서 정원을 조성한 뒤, 지금껏 유지 관리하는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계속 배우면서 경험치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나는 지금 시민정원사로 성장하는 중이다.

 


오지랖 넓은 전업주부의 낄끼빠빠-빠빠 = 낄끼
  지난 6월부터는 ‘이세종 열사 유적 보존을 위한 대책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다.
  이세종 열사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 최초 희생자이다. 당시 전북대 2학년생으로 동료들과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농성을 벌이며 다음날 시위를 준비하던 중, 무력 진압하러 급습한 공수부대 계엄군에 쫓겨 옥상에서 무참히 구타당한 뒤, 5월 18일 새벽 1시경 온몸이 멍들고 피투성이가 된 주검으로 땅바닥에서 발견되었다.
  올해 전북대 이세종 광장에서 열린 ‘5․18 기념식 및 이세종 열사 추모식’ 후, 전북대가 학생회관을 철거한 뒤 신축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김남규 대표가 열사의 유적이 흔적조차 사라질 것을 우려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대책위를 결성하여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대책위에서는 이 활동을 전북 역사를 바로 세우는 출발점으로 삼자고 결의하였다. 전북은 의병운동, 동학혁명, 4․19혁명,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우리 역사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스스로 챙기지 못해 주변화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서이다.
  범도민적 운동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7월부터는 ‘신석정 시인 고택 비사벌초사 보존대책위원회’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전주시 남노송동에 있는 ‘비사벌 초사’는 신석정 시인(1907~1974)이 1961년경부터 영면하실 때까지 사신 곳이다. 2018년에 ‘전주시 미래유산 14호’로 지정되었다.
  신석정 시인은 일반적으로 전원적인 서정시로만 알려져 있지만, 일제강점기에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단 한 편의 친일시도 남기지 않았으며, 독재정권하에서도 시대를 직시하며 부조리와 타협하지 않았던 시인이다.
  ‘비사벌 초사’는 전북이 낳은 위대한 시인 신석정 선생이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담은 시의 산실이며, 부안 고향집에서 직접 옮겨와 심고 가꾼 꽃과 나무들이 시인의 숨결을 오롯이 품고 있는 거룩한 시인의 정원이다. 시인은 1954년 전주고를 시작으로 김제고에서 교사를 하셨고, 1972년 전주상고(현 전주제일고)에서 정년퇴임하셨다. 시인의 삶의 자취로 볼 때, 전주, 특히 노송동 일원을 떼어놓고서는 말하기 어렵다. 이 ‘비사벌 초사’가 지역 재개발 추진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음을 7월초에야 알게 되어 마을 공동체, 문인단체들과 함께 서둘러 ‘비사벌초사 보존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고, 비사벌초사 지키기 서명운동을 온·오프라인으로 펼치고 있다. 관심과 동참이 필요하다.

  그밖에, 집안에 매여 지내기 쉬운 전업주부에게는 친구를 만나는 등의 인적네트워크 활동이 소중한 사회활동의 하나인데, 사회적 거리두기 제약 때문에 초․중․고와 대학교 친구들이나 교직 동료들과의 대면 모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라 시간적으로는 그나마 더러 빈틈이 생긴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대면 상황이 오래도록 지속되면, 전업주부들의 마음속에 관계망의 성기어 짐에서 오는 고립감이나 단절감이 자라날까 두렵다.
  전업주부의 사회활동이 쉽지 않음을 이제야 안 미안한 마음을 이 땅의 모든 전업주부들에게 전하며 맺는다.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