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6년, 전주역사박물관으로부터 ‘지역정치 영역에서 전북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난감한 주제를 받고 고민하면서 정리한 글인데, 내년(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꺼내어보게 되었습니다. ‘1당 독점, 관료출신 단체장’이라는 반복되는 지역의 정치현상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원고를 그대로 두고 통계 부분만 일부 보정했습니다.
2021년 3월,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공동대표 김남규 올림.
- 목 차 -
1. 서론
2. 지역 정치 어떻게 볼 것인가?
3. 전라도 그리고 지역 정치
4. 지역 정치에 대한 자각
5. 지역 독점정치, 행정관료정치 심화
6. 다시 지역 정치
7. 결론
1. 서론
이번 강좌 취지는 전라도가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로 분리된 지 120주년을 맞아 전라도와 함께 전북의 정체성과 역사를 돌아보는 데 있다. 역사적 사건이나 정치적 행위는 그 지역 사람들의 생각과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으로 지역 정치에 대한 연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정치가도 아니고 정치를 연구하는 학자도 아닌 현장 활동가인 필자가 지역 정치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론적 체계로 정리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시민운동가들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행동가 혹은 전략가의 역할을 주로 하는 것일 뿐 학술적 혹은 이론적 연구가 주된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 역사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정리, 더욱이 전주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문제는 다른 전문 연구자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여기에서는 지방자치가 부활하여 선거가 치러진 1990년대 이후 지역 정치에 나타난 현상을 살펴보고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문제 인식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2. 지역 정치 어떻게 볼 것인가?
지역 정치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첫째, 정치의 주체를 누구로 볼 것인가의 기준이 필요하다. 정치의 주체를 시민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국회의원이나 단체장과 같은 제도권 정치인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정치적 해석과 의미가 달라진다. 전자는 ‘민중운동사’ 혹은 ‘시민운동사’와 같이 제도정치권 밖의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바라본다면, 후자는 선거로 선출된 정치인이 몸담고 있는 정당, 혹은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바라본다. 여기에서는 정치 주체를 특정하지 않고 지역 선거에 나타난 몇 가지 정치 현상을 보고자 한다.
둘째, 지역 정치의 공간 범위가 규정되어야 한다. 전북, 전주 정치는 지리·행정적 공간 범위로 규정하기보다는 지역사회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 1는 일정한 범위의 지리적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동체로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구성원 서로가 영향을 받는다. 지역사회 구성원들은 서로의 관심과 협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정치적 행위에서도 공동의 협력관계가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전북, 전주 정치 어떤 범주의 지역사회와 정치적 공동체를 이루어 왔는가?’라는 점에서 즉, 지역사회 관점에서 볼 때 역사적으로 ‘전라도’의 범주에서 해석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전라도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현종(1018) 때로 전주와 나주를 합쳐서 전라도라고 했다. 천 년을 이어 온 지명이 의미하는 것처럼 고려와 조선,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시적으로 보면 전라도를 정치·행정적 영역에서 하나의 지역사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영역에서 지역사회는 지리·행정적 영역을 넘어 정서적 연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역사회 구성원이 지역을 떠나 타지로 나가게 되면 그 지역의 언어, 문화, 사람관계 등을 재구성해서 적응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때 향우회 사람들과 관계를 맺거나 자기 지역에서 배출한 정치인이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인연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거 때는 그 지역의 후보에 대한 관심보다 고향의 후보가 누구인지에 더 관심을 갖기도 한다. 타지에 있으면서도 지역 정치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현상을 고려해 본다면 정치적 영역에서 지역사회는 더 넓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 과연 지방 2 정치가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답이 가능해야 한다.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는 대통령중심제와 중앙정부의 철저한 통제가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 정치는 거의 존재감이 없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지방정부라는 명칭 대신 지방자치단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2할 자치에 머무르는 현실로볼 때 지방자치 선거를 치른다고 해서 원론적 의미로서 지방 정치라고 규정짓기 힘들다. 그럼에도 각종 선거 결과가 보여 주듯이 각각의 지역에서 특징적인 정치적 현상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지역 정치를 개념화 할 수 있다고 본다.
3. 전라도 그리고 지역 정치
전라도를 넓은 의미의 지역 정치로 볼 때 현재 우리에게 ‘전라도’가 어떤 정치적 의미를 갖느냐이다. 오늘날 전라도는 ‘차별’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역감정은 단순히 영·호남 간의 대립 차원이 아니라 전체 비호남 지역이 호남민에 대해 갖는 부정적 관념 형태’라고 규정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를 전라도 차별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 훈요십조가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지 일반 백성이나 비호남 지역의 대립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비호남 일반인들의 호남에 대한 편견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2014년 ‘남양공업’이 채용 공고에 ‘외국인과 전라도인은 지원 불가’를 낸 사건이 있었다.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차별이 일반 생활에서도 전라도에 대한 편견과 배제가 얼마나 공고한지를 보여 주는 사례이다.
외부로부터의 편견과 차별은 지역 정치의 정체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역사회 공동체에 대한 공격에는 반드시 저항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의 지역차별정책은 광주항쟁에서 집단 학살과 억압으로 더욱 공고화되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광주와 전라도를 반국가 폭력세력으로 고립시켰다. 전라도는 ‘빨갱이 새끼들’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란 단어는 단지 공산주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빨갱이’란 말은 짐승만도 못한 존재, 도덕적으로 파탄 난 비인간적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이르는 말이다. 외국의 경우에도 공산주의자를 폄하하는 용어는 존재한다.(중략) 하지만 한국의 ‘빨갱이’처럼 죽여야 하는 대상, 비인간적인 존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선인, 2009)
전라도 차별의 다른 말은 ‘영남 패권주의’이다. 박정희 정권은 7대 대통령선거 이후 김대중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영남 패권주의를 강화했다. 경제개발에서 전라도를 배제했고 이념적 공세를 강화했다.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에 반대편에는 영남 패권주의가 자리했다. 이를 지역감정이나 지역 차별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다. 전북, 전주 정치의 역사와 정체성은 전라도와 분리할 수 없다.
4. 지역 정치에 대한 자각
원론적 의미에서 볼 때 한국 사회에 지역 정치는 없다. 지역 정치란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정치 행위’를 의미한다.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정치적으로 자기 결정권을 가질 때 비로소 지역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사드 배치 예정지인 성주에서 군수가 ‘국가 안보를 위한 일이니 우리가 희생하자’라고 한다면 주민들이 받아들이겠는가? 지역 정치는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한 공약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물안개 같은 것이며 중앙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지역은 항상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한 소모품일 뿐이다.
지역 정치는 중앙 정치에 종속된 상수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살펴보자.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고 치러진 13대 국회의원 선거는 3김의 제왕적 총재 시절로 총재가 국회의원 후보 공천의 전권을 행사했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확고해졌고, 너도 나도 공천 헌금을 들고 YS와 DJ의 상도동과 동교동 사저에 줄을 서야 했다. 공천을 받은 후보들 대부분은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유력 정치인과 인연을 맺거나 성공한 관료, 교수, 언론인, 민주화운동 경력자들로 지역민과 유대감이 낮은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밀실 공천은 2000년 총선까지 계속되었다. 이때까지는 지역 정치는 중앙 정치의 대리 전장이었고 영·호남 지역 대결과 이념대결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이러한 결과로 전북 지역은 특정 정당의 독점물이 되었다. 13대 총선에서 20대 총선까지 무소속이나 다른 당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던 후보는 모두 9명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당선 후 입당을 했거나 야당의 당 대 당 통합 과정에서 입당함으로써 큰 흐름으로 보면 결국 전북 지역은 정당 1개가 독점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치세력의 독점은 지역 발전의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했다.
제왕적 총재 시절의 밀실 공천은 16대 총선을 거치면서 변화를 맞는다. 2000년 총선을 ‘공천 방식이 변화하기 시작한 계기’로 보는 이유는 바로 ‘총선시민연대’ 활동에서 나타난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열망 때문이다. 전국의 460여 개 시민단체가 ‘부패 정치 청산’ 구호를 앞세우고 ‘부패 행위, 선거법 위반 행위, 민주 헌정 질서 파괴 및 반인권 전력’ 등의 정치인의 낙선운동을 벌인 것이다. 낙선 대상자 86명 중 59명(68.6%)을 낙선시켰다. 낙선자 중에는 이종찬(종로), 이사철(부천 원미을), 김중위(서울 강동)등 여·야 중진 의원 다수가 포함되었다. 낙선운동이 광범위한 시민들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97년 IMF’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 이러한 정치인을 양산하고 있는 정당의 공천 과정에 직접 문제 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표-1>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 및 전북지역 득표수
선거 | 선거일 | 후보자 | 전국득표(비율) | 전북득표(비율) | 비고 |
1대 | 1948.07.20 | 이승만 | 제헌국회 | ||
2대 | 1952.08.05 | 이승만 | 523만 8,369명 (74.6%) | 46만 8,220명 (65.9%) | |
3대 | 1956.05.15 | 이승만 | 504만 6,437명 (70.0%) | 42만 4,674명 (60.1%) | |
4대 | 1960.03.15 | 이승만 | 963만 3,376명(88.7%) | 91만 9,529명 (89.0%) | 3·15부정선거 |
4대 | 1960.08.12 | 윤보선 | 민의원·참의원 중 (205명/259명) | 제2공화국 | |
5대 | 1963.10.15 | 박정희 | 470만 2,640명 (46.6%) | 40만 8,556명 (49.4%) | 제3공화국 |
윤보선 | 454만 6,614명 (45.1%) | 34만 3,171명 (41.5%) | |||
6대 | 1967.05.03 | 박정희 | 568만 8,666명 (51.4%) | 39만 2,037명 (42.3%) | |
윤보선 | 452만 6,541명 (40.9%) | 45만 1,611명 (48.7%) | |||
7대 | 1971.04.27 | 박정희 | 621만 1,170명 (40.9%) | 30만 8,850명 (33.8%) | |
김대중 | 530만 6,511명 (35.0%) | 53만 5,519명 (58.7%) | |||
8대 | 1971.12.23 | 박정희 | (통일주체국민회의) 2,359명 중 2,357명 찬성 |
통대간선 임기 6년 72년 유신(제4공화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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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 1978.07.06 | 박정희 | 2,778명 중 2,577명 찬성 | 통대간선 임기 6년 | |
10대 | 1979.12.06 | 최규하 | 2,560명 중 2,465명 찬성 | 통대간선 | |
11대 | 1980.08.27 | 전두환 | 2,525명 중 2,524명 찬성 | 통대간선 | |
12대 | 1981.02.11 | 전두환 | (대통령 선거인단) 5,277명 중 4,755명 (90.1%) 득표 |
제5공화국, 임기 7년 | |
13대 | 1987.12.16 | 노태우 | 828만 2,738명 (36.6%) | 15만 7,397명 (13.5%) | 제6공화국 |
김영삼 | 633만 7,000명 (28.0%) | 1만 6,424명 (1.4%) | |||
김대중 | 611만 3,000명 (27.0%) | 92만 4,499명 (78.8%) | |||
14대 | 1992.12.18 | 김영삼 | 997만 7,332명 (42.0%) | 6만 3,175명 (5.6%) | 문민정부 |
김대중 | 804만 1,284명 (33.8%) | 99만 1,483명 (88%) | |||
정주영 | 388만 67명 (16.0%) | 3만 5,923명 (3.1%) | |||
박찬종 | 151만 6,047명 (6.0%) | 9,320명 (0.8%) | |||
15대 | 1997.12.18 | 김대중 | 1,032만 6,275명 (40.3%) | 107만 8,957명 (90.6%) | 국민의 정부 |
이회창 | 993만 5,718명 (38.7%) | 5만 3,114명 (4.5%) | |||
이인제 | 492만 5,591명 (19.2%) | 2만 5,037명 (2.1%) | |||
16대 | 2002.12.19 | 노무현 | 1,201만 4,277명 (48.9%) | 96만 6,053명 (90.7%) | 참여정부 |
이회창 | 1,144만 3,297명 (46.6%) | 6만 5,334명 (6.1%) | |||
17대 | 2007.12.19 | 이명박 | 1149만 2,389명 (48.7%) | 8만 4,141명 (9.01%) | 이명박 정부 |
정동영 | 617만 4,681명 (26.1%) | 76만 1,810명 (81.65%) | |||
이회창 | 355만 9,963명 (15.1%) | 3만 3,826명 (3.62%) | |||
권영길 | 71만 2,121명 (3.0%) | 1만8,139명 (1.90%) | |||
이인제 | 16만 708명 (0.7%) | 6,550명 (0.68%) | |||
18대 | 2012.12.19 | 박근혜 | 1,577만 3,128명 (51.55%) | 15만 315명 (13.22%) | 박근혜 정부 |
문재인 | 1,469만 2,632명 (48.02%) | 98만 322명 (86.25%) | |||
19대 | 2017.05.09 | 문재인 | 1,342만 3,880명 (41.8%) | 77만 8,747명 (64.84%) | 문재인 정부 |
홍준표 | 785만 2,849명 (24.03%) | 4만 231명 (3.34%) | |||
안철수 | 699만 8,342명 (21.41%) | 28만 5,497명 (23.76%) | |||
유승민 | 220만 8,771명 (6.73%) | 3만 802명 (2.56%) | |||
심상정 | 201만 7,458명 (6.17%) | 5만 9,296명 (4.93%) |
※ 자료 출처: 전북일보 기사 자료를 일부 보완함
<표-2> 13대~20대 총선 결과 의석수 (전북 지역구 당선인수/의석수)
2010년 2월 17일자 『내일신문』은 낙선운동으로 정당의 공천 방식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공천의 결정 공간이 안가→사가→호텔→당사→광장”으로 바뀌었고, “공천 결정 주체가 1인→당 지도부→핵심 당원→유권자”의 순서로 공천의 모습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공천 방식의 변화로 2002년 새천년민주당은 ‘국민참여경선제’로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게 된다.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정치의 변화를 만든 것이다. 총선시민연대 활동은 2000년에 이어 2004년에도 계속되었으며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낙천·낙선운동으로 이어졌다. 공천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패 전력이 있거나 파렴치한 범죄 경력이 있는 후보를 당 스스로 걸러내는 ‘후보 자격 심사 요건’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정치 개혁은 국민의 눈높이에 이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공천 방식 역시 전화 여론 조사 등의 방법으로 후보 경선을 치르고 있지만 수십 대의 전화를 후보 조직원이 한꺼번에 착신하는 등 더욱 교묘하고 조직적 방식으로 민의를 왜곡하는 방향으로 퇴보했다.
경선 방식의 변화는 전북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2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전북도지사 경선이 ‘도민참여경선제’ 11로 치러진 것이다. 당원 50%와 도민참여경선단 50%로 도지사 경선으로 진행 진행한 결과 강현욱 후보가 정세균 후보를 35표 차로 이겨 도청에 입성했다. 그러나 경선 과정에서 조직 동원과 금품 살포, 선거인 명부 바꿔치기 등 많은 문제를 낳기도 했다. 경선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 경선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알 수 있다.
문제는 곧바로 전체 선거인단 수의 50%에 달하는 공모 당원 확보를 위한 동원 경쟁으로 번졌다. 공모 당원이 곧 경선 판도를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양측이 사활을 걸고 공모 경쟁에 돌입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모에 응하는 당원에 대한 금품 제공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민주당 도지부 선관위가 동원 경쟁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지참한 본인이 지구당을 방문, 입당할 수 있도록 조치했지만 4만 명이 넘는 동원이 이뤄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완주군 소양과 김제시 백구 지역에서 돈 봉투가 확인됐고, 선관위는 김제의 이모씨를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전북일보』 2002.05.08.) 강현욱 지사는 이후 밝혀진 '경선 비리 사건' 12으로 2006년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못했다.
이 시기 공천 방식의 변화와 함께 ‘인물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권 교체를 경험했기 때문에 ‘정권 교체를 위한 충성스런 중앙당의 낙하산식 인물’보다 ‘지역 문제를 잘 알고 지역민들과 호흡할 수 있는 지역 인물’을 필요로 한 것이다. 이전에는 ‘철새 정치인’이 상징하는 ‘소신 없는 기회주의적 인물’에 대한 반대가 주요했다면 ‘낙하산 공천’, ‘무늬만 지역 정치인’인 ‘서울 인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주요하게 형성되었다.
과거와 같이 ‘누구를 공천해도 된다’는 식의 자만에서 벗어나 철저히 민의가 반영되고 지역 정서에 부합되는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밀실에서 계파 보스 간 나눠먹기식이나 낙하산식 공천 등의 구태가 되풀이되어서는 결코안 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특히 밝고 깨끗한 정치 개혁을 이룩하기 위해 선 부정부패와 비리에 연루된 자나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 대상자 등도 과감히 배제해야 한다는 여론이다.(『전북일보』 2000.02.11.)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는 12일 전주 국회의원 재선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밀실 공천, 낙하산 공천을 반대하며 무늬만 지역인인 ‘선거·정치 철새’ 공천도 끝까지 반대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 했다. 전북시민연대는 “과거 정치 유산인 몇몇 지도부에 의한 밀실 낙하산 공천은 지역 유권자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계파 간 나눠먹기로 귀결됐다”며 “지역의 당원과 유권자의 입장이 반영된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북시민연대는 이와 관련, “예비 후보자의 인지도 중심의 여론조사를 지역민심인 양 반영하는 한계를 개선하고 진성 당원과 지역의 유권자가 참여하는 개혁, 참여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며 “여론조사든 직접투표 방식이든 50대 50의 당원과 시민의 입장이 반영되는 ‘시민 참여 경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시민연대는 “중앙 정치 무대의 유력한 정치인의 전략 공천도 반대한다”며 “선거 때만 되면 지역 출신을 강조하는 선거 철새와, 무늬만 지역인인 정치 철새는 예비 심사 과정에서 과감히 배제하여 진정한 지역 대표성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북도민일보』 2009.02.12.)
전북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선거철만 되면 서울에서 활동해 온 유력 인사들이 중앙 정치인 인맥을 배경 삼아 공천을 받아 온 지난 30년 인연을 끊어야 한다. 무늬만 지역 정치를 외치는 사람 말고, 지역의 문제, 도민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지역과 감성이 통하는 후보가 필요하다. 후임 정치, 낙하산 정치를 끝내고 지역 발전과 혁신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전북 도민은 구태 정치에 대해 엄중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성명」 2012.02.14)
전북 도민들의 공천에 대한 불만은 19대 총선에서 대거 표출되었다. 총선을 앞두고 현역 의원의 물갈이 여론이 70%를 넘었다. 특히 중진 의원들에 불만은 통합민주당 경선에 영향을 미쳤다. 신건, 강봉균, 조배숙, 이강래 등 현역 의원들이 당의 후보 심사에서 컷오프를 당했다. 현역 의원 중 장세환 의원은 불출마 선언을 했고 정동영 의원은 서울의 ‘동작을’에 출마함에 따라 인물 교체의 폭이 더욱 커졌다.
18대 총선 결과 11명 중 초선이 7명(김윤덕, 이상직, 김관영, 전정희, 강동원, 박민수)이나 당선되었다. 20대 총선에서는 현역 의원 중 당선된 사람은 이춘석(익산갑), 유성엽(정읍), 김관영(군산)에 불과하다. 현역 의원의 교체 주기가 매우 빨라진 것이다. 1당의 지역 독점에 대한 불만과 인물(현역의원)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의 전조 현상이 이미 있었다. 2009년 4월 27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이다. 민주당 후보로 나선 전주 완산을 이광철 후보와 전주 덕진 김근식 후보가 무소속 후보로 나선 신건, 정동영 후보에게 패배한 사건이 벌어졌다. 전주는 정당 공천의 영향력이 큰 선거구이다. 물론 정동영이라는 인물의 영향이 크기도 했지만, 전주권에서 지역 패권 정당의 공천을 받고도 패배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5. 지역독점정치와 행정관료출신 단체장
지역 정치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지방자치 선거 이후라고 볼 수 있다. 1991년 기초의회와 광역의회가 부활했고, 1995년 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었다. 제도적인 면에서 보면 선거를 통해 주민의 대표를 직접 뽑음으로써 지역 주민들이 정치적인 자기 결정권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자기 결정권 측면에서 보면 턱없다. 지난 30년 동안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까지 모두 같은 당 인물로 채워졌다. 2010년까지 1당 독점체제의 이변은 없었다. (통합민주당에서 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뀜) 2012년 지방선거 이후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이 10석 중 7석을 차지했고 새누리당이 1석을 얻는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2석에 그쳐 지역독점정치 30년 만에 대 이변이 일어났다.
<표-3> 역대 전북 지방선거 단체장 당선 현황(정당별)
구분 | 1995년 (민주당) |
1998년 (새정치 국민회의) |
2002년 (새천년 민주당) |
2006년 (열린 우리당) |
2010년 (민주당) |
2014년 (새정치 민주연합) |
2018년 (더불어 민주당) |
전북도지사 | 유종근(민) | 유종근(새) | 강현욱(새민) | 김완주(우) | 김완주(민) | 송하진(새정연) | 송하진(더민) |
전주시장 | 이창승(민) | 김완주(새) | 김완주(새민) | 송하진(우) | 송하진(민) | 김승수(새정연) | 김승수(더민) |
군산시장 | 김길준(민) | 김길준(무) | 강근호(무) | 문동신(민) | 문동신(민) | 문동신(새정연) | 강임준(더민) |
익산시장 | 조한용(민) | 조한용(새) | 채규정(새민) | 이한수(우) | 이한수(민) | 박경철(무) | 정헌율(민평) |
정읍시장 | 국승록(민) | 강광(새) | 유성엽(새민) | 강광(우) | 김생기(민) | 김생기(새정연) | 유진섭(더민) |
남원시장 | 이정규(민) | 최정연(새) | 최진영(무) | 최충근(민) | 윤승호(민) | 이환주(새정연) | 이환주(더민) |
김제시장 | 곽인희(민) | 곽인희(무) | 곽인희(새민) | 이건식(무) | 이건식(무) | 이건식(무) | 박준배(더민) |
완주군수 | 임명환(민) | 임명환(새) | 최충일(새민) | 임정엽(민) | 임정엽(민) | 박성일(무) | 박성일(더민) |
진안군수 | 임수진(민) | 임수진(무) | 임수진(새민) | 송영선(우) | 송영선(민) | 이항로(무) | 이항로(더민) |
무주군수 | 김세웅(민) | 김세웅(무) | 김세웅(새민) | 윤완병(우) | 홍낙표(민) | 황정수(새정연) | 황인홍(무) |
장수군수 | 김상두(민) | 김상두(새) | 최용득(새민) | 최용득(우) | 장재영(민) | 최용득(무) | 장영수(더민) |
임실군수 | 이형로(민) | 이형로(새) | 이철규(무) | 김진억(무) | 강완묵(민) | 심민(무) | 심민(무) |
순창군수 | 임득춘(민) | 임득춘(새) | 강인형(무) | 강인형(우) | 강인형(민) | 황숙주(새정연) | 황숙주(더민) |
고창군수 | 이호종(무) | 이호종(새) | 이강수(새민) | 이강수(민) | 이강수(민) | 박우정(새정연) | 유기상(민평) |
부안군수 | 강수원(무) | 최규환(새) | 김종규(무) | 이병학(민) | 김호수(민) | 김종규(무) | 권익현(더민) |
전북 제1당 (국회 의원수) |
민주당 (12/14) |
새정치 국민회의 (13/14) |
새천년 민주당 (9/10) |
열린우리당 (11/11) |
통합민주당 (9/11) |
국민의당 (7/10) |
더불어 민주당 (9/10) |
지방자치가 부활한 이후 치러진 일곱 번의 전국 동시 선거(재·보궐선거 제외)에서 당선된 도내 단체장은 총 95명이다. 이중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보는 총 25명(26.3%)에 이른다. 통계로만 보면 무소속 당선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순수한 의미로서의 무소속, 제3의 정치세력으로서 무소속으로 보기 어렵다. 정당에 몸담았다가 공천에 탈락했거나 공천 가능성이 낮아 아예 무소속으로 출마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선 이후에 입당하는 등 독자세력으로서 무소속이라고 볼 수 없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두 번 이상 무소속으로 당선된 단체장은 이건식 김제시장과 김종규 부안군수, 심민 임실군수 뿐이다. 7번의 지방선거에서 당 공천자가 모두 당선된 경우는 전북도지사, 전주시장, 정읍시장 선거이다. 정당의 영향, 공천의 영향이 가장 크게 미치는 선거구라고 볼 수 있다.
지역 정치 독점을 가능케 한 일차적 원인은 중앙 정치의 대결 구도에 있다.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된 전라도 차별 정책과 이데올로기 공세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지역공동체는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이에 저항하고 내부적 협력관계를 높여 가기 마련이다. 선거에서 ‘줄 투표’로 대응한 것이다. 그러나 희생은 도민들이 당하고 떡고물은 정치권이 챙겼다. 지역 차별과 소외를 팔아 1당 독점, 기득권 정치의 튼튼한 성을세운 것이다. 지역 정치, 지방자치의 자기 결정권을 포기하고 중앙 정치 논리를 따라다닌 결과이고 낙하산 공천, 선거 때만 고향을 찾는 ‘무늬만 지역정치인’의 공천을 용납한 결과가 바로 지역독점정치를 가능케 한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지역독점정치를 가능케 한 원인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지역사회 내부에도 있다고 본다. 지역의 낙후를 극복하고 지역 발전의 역량을 모으기보다는 중앙 정치에 줄 세우기 바빴다. 지역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없고 경쟁이 불가능한 지역사회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지난 30년간 지역 정치를 독점해 온 세력들은 정치 환경에 따라 모양을 바꿔 가며 진화했다. ‘지역의 권력 구조가 어떻게 창출되고 유지되는가’라는 지역의 정치적 역학적인 관계로 볼 때 그 핵심에 관료 집단이 있고 이들을 중심으로 지역 언론, 건설업자를 비롯한 지역 토호, 국회의원 등을 포함하여 교묘한 정치적 연대가 더욱 공고히 되었다고 본다.
지역에서 1당 독점체제가 장기화되면서 선거에서 공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공천이 곧 당선인 선거 구도에서 본선은 그저 형식 절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은 공천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연대한다. 단체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지역 업체 직원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의 산하기관과 민간위탁기관의 직원, 생활체육 동호회 회원에 이르기까지 당 경선 룰에 대해 교육하고 전화 대기 상태에 들어간다. 각각의 후보 캠프에 있는 전화 대기 조원들은 광역단체장 후보부터 기초단체장 후보, 지방 의원 후보를 특정하여 전화 대기를 하는 조직 융합을 마다하지 않는다. 전화 여론조사로 시작해서 전화 여론조사로 끝나는 선거가 어떻게 민의를 반영하고 지역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민의 장이 될 수 있겠는가? 너무나 잘 훈련되고 잘 조직된 이들에 의해 지역 선거가 결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쟁과 견제가 없는 1당 독점체제가 낳은 결과이다.
지역 선거에서 가장 큰 영향력과 지분을 갖고 있는 사람은 현역 단체장이다. 최근 행정 관료 출신들의 단체장 진출이 더욱 많아졌다. 수요가 많은것보다 공급(출마자)이 많은 것 역시 사실이다. 민선 6기와 7기 단체장의 경력을 살펴보면 도지사를 포함한 도내 15곳 단체장 중 8명(53.3%), 9명(60.0%)이 행정 관료 출신이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전라북도 정부부지사 경력이 있으나 행정에 처음부터 입문한 것이 아니므로 관료 출신으로 구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개방직 공무원인 대외협력국장과 정무부지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관료적 성격이 짙다고 볼 수 있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의 경력자들은 관료 경력자에 포함하였다.
<표-4> 민선 6기 단체장 주요 경력
구분 | 성명 | 주요경력 | 행정관료 경력 |
전북도지사 | 송하진 | 고려대학교, 전라북도 기획관리실 실장, 전주시장 | ○ |
전주시장 | 김승수 | 전북대학교, 전라북도 대외협력국장, 정무부지사 | |
군산시장 | 문동신 | 단국대학교, 농어촌진흥공사 사장, 농업기반공사 사장 | ○ |
익산시장 | 정헌율 | 전북대학교, 전라북도 행정부지사 | ○ |
정읍시장 | 김생기 | 전북대학교, 통합민주당 중앙당 사무부총장 | |
남원시장 | 이환주 | 한양대학교, 전라북도청 전략산업국 국장 | |
김제시장 | 이건식 | 육군사관학교, 민주정의당 조직부장 | ○ |
완주군수 | 박성일 | 전북대학교, 전라북도 행정부지사 | ○ |
진안군수 | 이항로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진안읍 읍장 | ○ |
무주군수 | 황정수 | 중부대학교, 제8대 전라북도의회 의원 | |
장수군수 | 최용득 | 1대/3대 장수군의회 의원 | |
임실군수 | 심 민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임실군 부군수 | ○ |
순창군수 | 황숙주 | 전북대학교, 감사원 국장 | ○ |
고창군수 | 박우정 | 건국대학교, 민주당 전라북도당 부위원장 | |
부안군수 | 김종규 | 전주대학교, 전라중학교 교사 |
※ 자료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 재구성
<표-5> 민선 7기 단체장 주요 경력
구분 | 성명 | 주요경력 | 행정관료 경력 |
전북도지사 | 송하진 | 고려대학교, 전라북도 기획관리실 실장, 전주시장 | ○ |
전주시장 | 김승수 | 전북대학교, 전라북도 대외협력국장, 정무부지사 | |
군산시장 | 강임준 | 한국외국어대학교, 6대/7대 전라북도의회 의원 | |
익산시장 | 정헌율 | 전북대학교, 전라북도 행정부지사 | ○ |
정읍시장 | 유진섭 | 전남대학교 행정대학원, 5대/6대/7대 정읍시의회 의원 | |
남원시장 | 이환주 | 한양대학교, 전라북도청 전략산업국 국장 | ○ |
김제시장 | 박준배 | 전북대학교 대학원, 전라북도청 새만금환경녹지국 국장 | ○ |
완주군수 | 박성일 | 전북대학교, 전라북도 행정부지사 | ○ |
진안군수 | 이항로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진안읍 읍장 | ○ |
무주군수 | 황인홍 | 국립한밭대학교, 구천동농업협동조합 조합장 | |
장수군수 | 장영수 | 전북대학교 행정대학원, 8대/9대 전라북도의회 의원 | |
임실군수 | 심 민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임실군 부군수 | ○ |
순창군수 | 황숙주 | 전북대학교, 감사원 국장 | ○ |
고창군수 | 유기상 | 전북대학교 대학원, 전라북도청 기획관리실 실장 | ○ |
부안군수 | 권익현 | 전북대학교 행정대학원, 8대/9대 전라북도의회 의원 |
전라북도지사는 중앙행정 관료 출신인 강현욱 지사와 지방행정 관료 출신인 김완주, 송하진 지사의 재임 기간을 합하면 민선자치 21년 중 14년, 전주시장의 경우 12년이다. 더욱이 김완주 전주시장이 도지사로 가고, 송하진 전주시장이 다시 도지사로 갔다. 김승수 시장은 김완주 전 도지사의 핵심 인물이다. 전북 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높은 도지사와 전주시장의 자리가 하나의 공식화된 룰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표-6> 민선자치 부활 이후 전북도지사, 전주시장 재임기간
구분 | 민선1기 | 민선 2기 | 민선 3기 | 민선 4기 | 민선 5기 | 민선 6기 | 민선 7기 | |
도지사 | 유종근 1995.7.1~2002.6.30 |
강현욱 2002.7.1 ~2006.6.30 |
김완주 2006.7.1~2014.6.30 |
송하진 2014.7.1~현재 |
||||
전주시장 | 이창승 1995.7.1 ~1996.5.31 |
양상렬 1996.7.20 ~1998.6.30 |
김완주 1998.7.1~2006.3.10 |
송하진 2006.7.1~2014.3.3 |
김승수 2014.7.1~현재 |
선거 결과로 보면 전북 도민들이 행정 관료 출신을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행정 경험이 있는 단체장이 안정적인 행정을 펼칠 것이라는 생각과 행정과 예산을 잘 알기 때문에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을 잘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감 등이 그 이유로 추측된다. 이러한 기대감은 지역 차별과 소외라는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와야 지역을 개발해서 발전시킬 수 있다는 논리가 작동한다. 지역 문제의 해법을 여전히 중앙 정치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행정 관료 출신 정치인들은 ‘안정적인 관리’가 몸에 배어 있다. 때문에 관료 출신 단체장들은 시대 변화에 둔감하고 도전적인 정치 행위를 잘 하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6. 다시 지역 정치
전북 지역 정치는 두 가지 측면의 과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중앙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이자 기득권 정치를 유지시키고 있는 ‘영·호남 지역분할-지역독점정치를 청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역의 발전과 지역 문제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지역 정치 역량을 더욱 성숙시켜 나가는 것이다.
첫 번째 과제는 영·호남 지역분할-지역독점정치의 본질을 아래 영·호남 시민단체 정치 개혁 공동성명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 영·호남 시민단체들은 절박한 심정을 담아 선거제도 개혁을 강력히 요구한다. 지역분할-지역독점정치는 지역에 견고한 정치적 이익집단을 만들어 지역사회를 중앙 정치에 줄 세우고, 지역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등 지방자치의 근간을 심각하게 흔들어 왔다. 뿐만 아니라 중앙 정치의 대결 구도를 지역으로 그대로 옮겨 와 영·호남으로 편 가르고 갈등과 분열을 일으켜 왔다. 지역분할정치는 영남과 호남에서 각각의 특정 정당이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이것이 지역분할-지역독점정치의 본질이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정치 개혁이라 할 수 없다. 2015년 전국의 시민단체들의 협의체인 ‘전국시민사회연대회의’는 정치 개혁의 우선 과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했다. 현행 국회의원 소선구제는 투표에 반영된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유지시키는 제도이다. 또한 영·호남 지역분할-지역독점정치를 유지시키고 있는 선거제도이다. 이른바 ‘텃밭’은 정치적 기득권 중 가장 큰 기득권이다. ‘여당의 표는 여당에게’ ‘야당의 표는 야당’에게 돌아가게 하자는 것, ‘투표 가치의 등가성’을 실현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맞다.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개선하지 않고서 한국 정치의 미래는 없다. 비례대표제 포럼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13대부터 19대 총선까지 발생한 사표는 총 71,626,533표이며 지난 19대 총선에서만 10,366,043개의 사표가 발생했다.
지역 정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역 정치의 다양성이 만들어져야 한다. 양당 정치, 기득권 정치 세력이 손에 꼭 쥐고 놓지 않는 것이 바로 ‘정당법’이다. 거대 정당, 전국 정당만 만들 수 있고 그들만 만들 수 있는 정당만 법으로 허용하고 있다. 지역에 뿌리내리고 소수의 시민들도 정당을 만들어 지방선거에 나갈 수 있고, 이러한 지역당들이 전국적 연대를 통해 기득권 정치를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행 정당법에 규정하고 있는 ‘5개 시·도당에 각각 천 명 이상의 당원을 두어야 하고 중앙당은 서울에 두도록 규정’을 고쳐서 정당 설립의 진입 장벽을 낮추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극단적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공정’과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이는 승자독식 정치 풍토가 빚어낸 갑·을 관계 등의 불평등한 관행과 인식을 청산하고,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한 다양한 세력의 정치적 참여가 보장될 때 가능하다. 하지만 현행 정당법은 오히려 정치적 다양성을 가로막고 지역독점정치와 거대 전국 정당의 기득권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당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5개 시·도당에 각각 천 명 이상의 당원을 두어야 하고 중앙당은 서울에 두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도한 정당 설립 규제가 소수자의 정치 참여와 정치적 다양성 형성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처럼 정당 설립의 기준을 낮추거나 정당의 진입 장벽을 과감히 없애야 한다. 정당설립 기준을 낮추어 다양한 지역 정당의 출현을 가능케 함으로써 풀뿌리 지방자치를 완성해 나갈 수 있다. 특정 정당의 지역독점정치로부터, 비교 가능하고 경쟁과 변화가 가능한 지역 정치, 주민들과 호흡하는 풀뿌리 지역 정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중앙 정치의 폐해가 지역까지 연결되는 분열과 대결의 정치 역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영·호남 시민단체 정치 개혁 공동성명」 중에서, 2015.03.31.)
두 번째 과제는 최근 전북 지역 선거에서 살펴보았듯이 1당 독점, 공천에 대한 도민들의 인식에 변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정당이 공급한 것을 소비하거나 선거 때 심판하는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지역 정치조직이나 정당의 출현을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정치 소비자의 권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기존 정당에 변화를 요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2016년 7월 현재, 전국 총 당원수가 260만 명에 이르고 전북 46만 명, 광주 24만 명, 전남 36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전북과 광주·전남 당원이 절반에 가깝다. 전북과 대구의 당원수가 다르고 당에 대한 참여도, 정서가 모두 다른데 전국의 모든 지역의 공천 룰이 똑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13
미국의 경우에는 주마다 경선 룰이 다르다.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혹은 두 가지를 혼합한 형태의 선거 방식을 각 주의 당원이 결정한다. 중앙 정치의 그늘에서 벗어나 지역이 자기 결정권을 갖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 정치, 지역 정당 이야기만 하면 지역주의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지역당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당의 난립, 지역주의 정치 활보를 이유로 들고 있다. 거대 기득권 정당들의 지역주의 정치에는 침묵하면서 지역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선거는 철저히 지역 투표로 진행된다. 영·호남은 물론이고 자신의 출신 지역에 따라 여·야로 나뉘어 투표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야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소극적인 것은 ‘텃밭’이라는 기득권을 놓치기 싫은 것이고 그것은 보수 여당의 속내와 같다. 지역주의 정치가 판치는 상황에서 호남만으로 정권을 창출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때문에 김대중은 DJP연합을 통해 정권 교체를 이루었고, 영남 출신인 노무현은 호남의 선택을 받음으로써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작동되고 있는 프레임이 영남 대통령 후보-호남의 선택이다. 또한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은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얻었음에도 ‘호남당’이라는 말에 절대적인 부담을 갖고 있다.
호남의 입장에서 보면 전국의 과반이 넘는 당원이 있으나 당원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대통령 후보는 영남 인물을 선택해야 하고, 야당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도 ‘호남당’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지지세력을 외면하는 ‘싸가지 없는 정당’인 것이다. 이러한 지역주의 프레임, 야당의 잘못된 전국 정당 프레임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 권역별 비례대표제이다.
7. 결론
지방자치 부활 이후 전북 지역에서 치러진 선거와 결과와 지역 정치세력의 역학관계 그리고 작동하고 있는 정치 프레임과 논리를 종합해서 볼 때 현재 전북 정치의 핵심 현상은 ‘지역독점정치와 아전(衙前)정치’라고 본다. 아전정치는 지역독점정치가 낳은 사생아이다. 아전정치는 지역 정치의 자기 결정권을 부정하고 ‘텃밭 기득권’을 공유하고 이것을 유지하기 서로 공조한다. 대세를 관망하다가 뒤늦게 편승하고 ‘지역’을 외면하고 ‘중앙’을 동경(憧憬)한다. 14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독점정치 구조에서 지방선거는 중앙 정치 무대에 올라가는 국회의원들의 지역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인물로 채워졌다. 공천 경쟁은 잘 훈련된 선수(전화 여론 대기)들에 의해 민심을 여전히 왜곡하고 있고 중앙 정치에 적극적인 봉사자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행정 관료 출신 단체장들의 ‘보신주의’, ‘관리적 리더십’은 이러한 기득권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
아전정치에는 지역 정치가 없다. 30년 동안 지지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것은 ‘호남당’이라는 비난을 받을 뿐이다. ‘싸가지 없는 정당’에 호된 소리도 못하고 정권 교체를 위해 그저 참고 인내해야 한다. 이러한 아전정치에 반발한 민심이 20대 총선 결과로 나타났다고 본다. 그렇다고 아전정치 현상이 끝났다고 볼 수 없다. 내년 대선의 결과에 따라 지역 정치의 판도가 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 정치세력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으로 나누어졌을 뿐 정치세력 교체나 인물 교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전정치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본다. 하나의 정치적 현상은 지역사회가 처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형성된 것이지 그 지역사회의 본질이나 정체성으로 결론지을 수 없다. 때문에 아전정치를 곧 전북 정치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한다. 지역 정치에 대한 성찰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전주정신과 관련하여 논의되고 있는 ‘은근과 끈기’에 대한 의견이다. 전주 사람이라면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정치적 영역에서 ‘은근과 끈기’는 정치적 승자에게는 그럴듯한 말이지만, 역사의 변방에서 차별과 소외를 당해 온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들릴 것인지살펴보아야 한다. ‘이제까지 그래 왔듯이 잘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은근과 끈기’를 이야기하면서 그 뒤에 ‘동학정신’, ‘저항정신’을 전주정신이라고 덧붙이고 있기는 하지만…. ‘은근과 끈기’가 지역공동체 안에서 정치적인 역동성을 가지려면 “…으로부터의 은근과 끈기”, “…를 향한 은근과 끈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왜, 무엇을 인내하고 살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메시지가 분명히 살아 있어야 한다.
(끝.)
- 사람들이 자기의 일상 세계로 인식하는 문화공간으로서 해당 지역의 소위 토박이의 정의에 의해 규정된다. 지역사회란 행정적 단위를 넘어선 사회 및 문화공동체로서 개인의 정체성 을 결정한다.(김광억, 『문화의 정치와 지역사회의 권력 구조』,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2 [본문으로]
- 중앙과 대비되는 개념, 서울 이외의 지역 [본문으로]
- 민주자유당 양창식(남원), 황인성(진안·무주·장수) [본문으로]
- 신한국당 강현욱(군산을) [본문으로]
- 무소속 이강래(남원·순창) [본문으로]
- 무소속 정동영(전주덕진), 신건(전주 완산갑) [본문으로]
- 통합진보당 강동원(남원·순창) [본문으로]
- 무소속 유성엽(정읍) [본문으로]
- 새누리당 정운천(전주을) [본문으로]
- 무소속 이용호(남원·임실·순창) [본문으로]
- 2002년 새천년민주당 도지사 후보 경선 룰을 놓고 강현욱, 정세균 두 후보 측에서 유불리 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 대의원 및 당원 50%(지구당별 동수 배정)와 공모 당원 50%(도민참여경선인단, 인구비례 배정)로 합의했다. [본문으로]
- 경선 당시 전주덕진지구당에서 강현욱 후보의 선거 참모가 관련된 ‘경선인 명부 바꿔치기’ 가 밝혀져 관련자들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본문으로]
- 2015년 2월 기준,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연합의 당비 내는 당원(권리당원) 약 25만 명, 이중 56%가 호남권이며 30%는 수도권이다.(최광웅, 「전국정당론은 만병통치 약?」, 『미디어스 컬럼』 2015.06.19.) [본문으로]
- 아전이라는 말은 군수·현령 등 지방 수령이 근무하는 정청(正廳)의 앞에 그들이 근무하는 청사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으로 중앙의 행정을 담당하는 하급 관리(서리)와 지방의 하급 관리(향리)를 합하여 부르는 말임. 오늘날 행정 관료로 해석할 수 있음. 조선 시대에, 중앙과 지방의 관아에 속한 구실아치. 중앙 관서의 아전을 경아전(京衙前), 지방 관서의 아전을 외아전(外衙前)이라고 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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