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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참여예산제도와 주민자치회

글 | 박우성 (투명사회국)


  전라북도 홈페이지에 ‘2021년도 주민참여예산제도 지역밀착형 주민제안 공모 안내’라는 공지가 게시된 것은 지난 9월 14일이었다. 신청기간이 열흘 남짓에 불과하고 시민에 대한 홍보나 접근성 측면에서 충분한 고민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지자체의 예산 편성과정에 주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지방재정의 민주성·책임성·투명성을 강화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도 주민참여예산이라는 명목으로 심의, 선정되는 사업의 내용들이 과거 재량사업비 폐지 전의 선심성 예산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은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참여예산제도는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이래 자치분권의 확대와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지방재정 독립, 그리고 행정의 투명성과 시민의 감시를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라는 점에서 시민사회로부터의 지속적인 도입 요구를 받아왔다. 이에 따른 논의는 거버넌스(협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각 지자체들에서 더욱 활발하게 개진되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참여예산제도는 이를 위한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기 이전인 2004년경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이후 다른 몇몇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예산제도의 도입이 시도되며 연구와 분석이 함께 이루어지는 과정을 거친 끝에 지난 2011년 3월 모든 지자체가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운영하도록 의무화 하는 내용으로 <지방재정법>이 개정되었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 중 실천과제의 하나로 ‘주민참여예산제도’의 확대를 명시하였고 이를 통해 참여예산제도의 시행은 더욱 탄력이 붙게 되었다.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절차>




  이렇듯 참여예산제도의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차근차근 마련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런 제도가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설사 이름은 들어봤다손 치더라도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시행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할 뿐더러 “주민이 참여하는 제도”라는 설명에 혹해서 관심을 갖게 되어도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제안’ 하나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응모’하는 온라인 게시판에 올리거나 주민센터에 서류를 접수하고 일방적인 처분을 기다리는 정도가 전부다. 몇몇 우수 사례 외에는 대부분의 지자체가 이 정도 수준의 형식적인 제도를 갖추는 것에 머무르고 있다.


  전라북도의 경우 2018년부터 별도로 편성하기 시작한 주민참여예산 규모는 2018년 82억 원에서 2019년 175억 원으로 대폭 늘었다가 2020년 185억 원 정도로 책정되며 주춤한 모습이다. 추진되는 사업의 대부분이 앞서 언급한 공모를 통해 선정된 것들인데다가 선정된 사업의 내용도 도로나 배수로 정비, 체육시설 등 개발공사 비용이거나 경로당 등 기존 시설에 투입되는 보조금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한계가 뚜렷하다. 각 시·군 지자체 역시 자체 예산으로 해결해 왔던 민원성 사업비를 일부 충당하는 것에 몰두하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곤 한다.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의무화에도 불구하고 제도 자체에 대한 담당 공무원들의 어려움과 불신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시민들의 요구가 모아지고 협의되는 과정에 대한 성공 사례들이 각 지역의 행정에서 받아들일만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의사 표현과 높은 수준의 시민 의식을 전제로 설계된 참여예산제도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확대하고 촉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목표가 된다. 따라서 참여예산제도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주민의 자치역량을 강화하는 일이 그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아직 관료주의와 행정편의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정부 조직에게 이상적이기만 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비춰지고 있다.


  참여예산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이 지방의회의 예산심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생각하는 지방 의원들의 거부감이다. 이 거부감은 단순히 지방의원의 권한에 대한 침해 때문만이 아니라 예산심의 권한을 통한 금전적인 이득을 박탈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뻔뻔스럽고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 지역의 지방 의원들이 연루된 2017년의 재량사업비 비리사건이다. 이 사건은 전북도의회와 전주시의회 전·현직의원 7명을 포함해서 모두 21명이 기소되었던 대형 비리사건이었다. 방송과 신문을 가리지 않고 모든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큼 큰 비난에 휩싸인 도의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고 지방의원들의 생색내기용 쌈짓돈으로 사용되던, 법적 근거도 없는 재량사업비 폐지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도의회가 표명한 공식적인 입장과 의원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8년 의장으로 선출된 송성환 의원은 의장 선출 공약으로 재량사업비 부활을 공공연하게 내세우기까지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새롭게 도입된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엉뚱하게도 지방의원들이 예산 편성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주민센터를 통해 접수된 도민제안 신청서가 선정·제출되는 과정에서 주민자치위원회가 합의한 사업이 의원의 개입으로 제외되거나 내용이 변경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고 이를 항의하는 시민에게 동별로 책정되는 사업은 사실 의원 몫의 ‘재량사업비’인 것을 몰랐느냐며 핀잔을 하기까지 했다는 제보도 이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행정의 비협조와 지방의회의 거부감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참여예산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한 방법이 채 강구되기도 전에 이번에는 <지방자치법> 개정이 코앞의 현실로 닥쳐왔다.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새롭게 구성하게 될 ‘주민자치회’는 참여예산제도의 또 다른 동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일부 지자체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와 시범 사업으로 실시된 주민자치회를 연계해 운영하는 사례들이 있는 만큼 앞으로 참여예산제도는 주민자치회 도입 이후 이루어질 마을 계획이나 주민 총회 등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주민자치회를 통해 주민참여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갖게 된 주민자치위원이 참여예산제도에 참여하거나 주민자치회가 축적한 정보를 지자체의 예산과정에 직접 반영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따르면 주민자치회는 지자체 별로 조례를 제정하여 운영하는데 정부의 표준조례안에 주민자치회가 자치기구로서의 구체적인 업무를 담당할 수 있도록 역할과 권한, 구성 방안이 명시되어 있다. 또 주민자치회 위원에 대해서도 주민자치 역량강화 기본교육을 이수한 사람 가운데 추첨을 통해 선발하도록 하며 전담공무원과 사무국을 운영할 수 있는 인력과 사무공간을 지원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도 마련하는 등 주민자치회 운영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일반 주민의 참여가 미흡하다는 점, 지방예산 및 재정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는 점, 지역 현안 발굴과 우선순위 설정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 주민자치회와 연계한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하나의 제도를 통해 단기적으로 확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종합적인 시각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운영 및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은 정부 역시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자체마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자율적인 제도 운영을 보장하는 한편 행정의 조직과 인력들도 유연하고 탄력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체질을 개선하는 일도 시급한 일이다.


 주민자치회의 역할 – 표준조례 제5조(기능)


(협의업무) 읍·면·동(또는 동, 읍·면) 행정기능 중 주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에 대한 협의

(수탁업무) 시·군·구 및 읍·면·동(또는 동, 읍·면) 행정기능 중 주민자치센터의 운영 등 주민의 권리·의무와 직접 관련되지 않는 업무의 수탁 처리

(주민자치업무) 주민총회 개최, 자치(마을)계획 수립, 마을 축제, 마을신문·소식지 발간, 기타 각종 교육활동, 행사 등 순수 근린자치 영역에서 수행하는 주민자치업무



  주민참여예산제도는 각 지역의 상황에 맞추어 끊임없이 개선·보완되어야 하는 열린 제도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참여예산제도의 목표가 예산 편성 자체가 아니고 이러한 예산 과정에의 참여를 통해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을 경험하여 시민 역량을 강화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자치분권을 활성화하는 것에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방 재정의 독립성이 강화되는 일부터 행정에 대한 시민의 신뢰 및 협력, 예산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지역 사회의 이해 등 참여예산제도가 자리 잡기 위해 함께 이루어져야 할 조건들을 생각하면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따라서 참여예산제도가 현재의 정체 상황을 벗어나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참여예산제도가 시민들에게 어떤 구체적인 이득이 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방자치법이 개정되고 주민자치회 시범사업 조례가 설치되면 우리 지역에서도 본격적으로 주민자치회 구성과 관련된 사업이 추진될 것이 예상된다. 정부부처의 방침에 따라 형식적으로 끌려가는 사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 스스로 주민자치회 사업 시행의 주체로서 주민자치 역량을 높이는 준비를 할 때다. 우리 지역의 다양한 주민 조직 및 시민사회 단체들이 참여하는 <주민자치회 추진협의회 준비위원회>가 이번 달 발족을 앞두고 있다. 주민자치와 관련된 시민 교육에서부터 조례 제정과 관련된 토론회 등 주어진 과제가 적지 않아 앞으로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반, 무거운 책임감에 걱정이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