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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글] 서씨(氏)로 3일

글 | 서용운 (회원)



  얼마 전 3일 동안 일용직 노동일을 했습니다. 코로나 덕분에 시간의 여유가 생겼는데 마침 아는 친구가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길래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전에는 일본말로 ‘노가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일용직 노동자라고 합니다.


  제가 했던 일은 공원 묘지에서 잔디도 깎고 잡풀도 걷어내고, 삽질도 했습니다. 더러는 일을 시키는 사람이 이것 하라 하면 하고, 저것 하라 하면 또 했습니다. 첫날 가서 인사를 나누는데 일을 시키는 사람이 저를 뭐라고 부르면 좋겠느냐고 해서 그냥 ‘서씨’라고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아닌 서씨로 3일을 지냈습니다. 정확하게 아침 8시에 일이 시작되고 점심시간 한 시간을 가진 다음 오후 5시까지 하루 여덟 시간 일을 했습니다. 그래도 매일 교회일을 해온 것이 있어서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고 몸도 많이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세 명이 한 조가 되어서 일을 했는데 사십 대 후반의 ‘신씨’와 오십 대 후반의 ‘이씨’였습니다. ‘신씨’는 영국에서 유학 중에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초·중·고에 다니는 아이들 셋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내도 방과 후 교실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일당을 받으면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제비 새끼 같은 아이들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고, 명절이 다가오니까 양가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신씨는 뭐가 남는 거야?”하고 물었더니 대답하는 것이 참 말본새가 있습니다. “저는 형님이 남았잖아요. 3일 동안이요.”합니다. 별다를 것도 없는 이 사람 ‘서씨’를 형님으로 대해주니 참 좋았습니다. 일하다가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노래 한 곡을 들려주는데 얼마 전 키보드를 한 대 사서 두 부부가 부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을 하늘 아래 시원한 바람 속에서 들으니 참 곱고 감미롭기 그지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울텐데 굴하지 않고 밝게 사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속으로 금년 가기 전에 신씨에게 형님 노릇 한 번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십 대 후반의 ‘이씨’는 김제 어디쯤에서 나라 땅 삼천 평을 세를 주고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본업이 있기는 하지만 시간 나는대로 그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금년 농사로 고추와 콩을 심었는데 헛농사가 되어버렸다고 한숨을 쉬면서 연신 담배를 태웁니다. 고추는 워낙 비가 오랫동안 많이 내려서 곰팡이병이 들어 거둘 것이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콩을 또 심었는데 새들이 땅 속에 들어있는 것을 어떻게 용케도 알고 죄다 먹어버렸다고 새들이 그렇게 영리한 것을 이제야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한 마디 끼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새대가리, 새대가리라고 하는지 몰라. 새가 들으면 겁나게 기분 나쁘겠어”하면서 함께 웃었습니다. ‘이씨’말이 자기는 이렇게 힘든데 아들이 작년에 무슨 공부를 더해보겠다고 독일로 유학을 갔다는 것과, 제발 가지말라고 사정하고 붙잡았는데도 자식을 이기지 못했다고 하면서 또 쓴 웃음을 짓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그래도 유학까지 갔으니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겠어?”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전에 내가 힘들어죽겠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잘 붙잡고 사는 것 같아 보여서 좋았습니다. 


  3일 동안 몸은 좀 힘들었지만 높고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더러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황홀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지구라는 별에 선풍기를 틀어주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땀을 흘리니 바람 한 줌도 물 한 모금도 정말 특별하고 소중했습니다.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은 12시 점심시간이고 오후 5시 일이 끝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렇겠구나 하는 것을 ‘체험학습’한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도 자식과 아내와 부모를 생각하면서 건강한 땀을 흘리면서 일하겠지요. 


  잔디를 깎고 깎은 것을 버리면서 또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조종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훈련이 필요한 것인데, 그래서 조종사가 되었는데 하루 아침에 회사가 문을 닫고 비행기는 서고 그 대신 자동차 운전대를 잡고 대리 운전을 하고 있다는 해고 조종사의 이야기, 학습지 교사로 10년 혹은 20년을 일했어도 퇴직금 한 푼 없다고 하소연하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 코로나로 교회 헌금이 줄어들자 부목사, 전도사부터 쫓아냈다는 인터넷 기사도 생각이 났습니다. 수해를 입은 사람들은 또 어떤가? 얼마나 복구가 되었을까? 추석을 어떻게 지낼 것이며 금방 추워질텐데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내가 지금 뭐하는 것이지? 내 아버지 산소 벌초는 하지 않고 지금 남의 집 벌초하고 있는 것 아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늘 교회라고 하는 울타리 안에서 ‘목사’라는 이름으로 지내다가 울밖에서 ‘서씨’라는 이름으로 3일 동안 지냈습니다.  저도 ‘체험학습비’ 받아서 아내에게 명절에 고기라도 두어 근 사라고 건네주었습니다. 그 3일 동안 이야기를 이렇게 한번 적어보았습니다.




서용운 목사는 전북대학교와 한신대학원을 졸업하고, 전주 임마누엘 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metase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