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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돌아가고 있어

글 | 이주희 (회원)




  전주에 있지만 작은 학교여서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 온다. 널따란 운동장을 가로질러 성큼성큼 걸어오는 바쁜 아침 나의 발걸음이 보이면 먼저 온 1학년 아이들이 교실 창문으로 우르르 모여들어 창 아래로 겨우 얼굴을 내밀고는 손을 흔든다. 흐릿하게 보이던 아이들이 또렷해질 때 즘 되면 알게 된다.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는 걸.

 

  20여 년간 많은 것들을 좇고 살아왔다. 중요하다, 해야한다, 따라가야 한다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삶의 중심과 무게를 두며 살아왔던 것들, 지금 어디에 있는가? 누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었는가? 누군가 내가 서 있는 판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스스스 오른쪽으로 갔다가 뒤쪽으로 기울이며 뒤로 쏠려가 있곤 하는데 그러면서도 이렇게 하는 것이 열심이고 괜찮은 선생님이다 생각하였다. 그런데 나는 이제서야 나를 열심히 움직이게 했던 힘이 아이들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열심을 부려왔던 일들, 내 자신과 그것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열심에 비례하여 얻어질 성과나 결과에 집착할 때가 많았고 아이들은 그걸 이루어야 하는 존재 쯤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니 아이들 하나하나가 보일 리 없다. 한명 한명이 담고 있는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 볼 리가 없다. 

 

  중심으로 돌아가 나와 함께 있는 아이들이 어떤 존재인지 더 깊이 알아가고 깨달아 갔다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운 마음. 그렇다면 이제 그렇게 하면 되겠다 하였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이들을 알아간다는 건 어떤 제품의 사용설명서를 읽고 아는 것이나 공부하여 지식을 얻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누군가 아이들은 이런 존재야 라고 말해서 아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온전히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만이 알아져 가고 깨달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를 하면서 가장 오래 마음속에 품어 온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아이들을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거나 혹은 아이들과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지만 어느 결에 아이들은 저쪽에 나는 이쪽에 보이지 않는 정확한 선을 그어 놓고 홀로 섬처럼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 섞이어 하나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또렷하게 분리되어 버리는 것이 교실안의 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생기는 문제가 있다. 좋은 분위기와 평범한 상황속에서는 아이들과 좋은 교감과 소통을 하다 결정적 순간, 교실 상황속에서 생기는 좌절, 실패, 부정, 갈등 등의 문제가 생겨난 순간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향해 출발할 때에는 잘할 수 있어 라는 격려와 응원을 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하다 보면 생기는 뜻밖의 어려움과 문제 앞에서 아이가 짜증을 내거나 싫다는 반응을 보일 때, 그리고 제대로 하지 않는 걸 보면 슬금슬금 화가 나기 시작한다. 예전 같았으면 야단을 치거나 따끔한 한마디로 열심히 할 것을 종용했을 텐데 지금의 나는 좀 더 화는 참고 한번 더 해볼 것을 제안해본다. 그런데 이건 화를 내고 안 내고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속은 같다. 아이의 그런 반응이 여전히 부정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내 속에서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힘들다, 잘 안 된다 짜증 부리는 아이를 비아냥거리며 비난하고 싶은 욕구가 치미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안 그런 척 친절의 탈을 쓰고 말하는 가식까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알고 그 아이가 알 것이다. 선생님이 지금 나를 비난하고 있다는 걸.


  아이가 탁 주저앉을 때, 넘어질 때, 내 생각과 기대와 다른 모습을 보일 때 그때가 바로 나에게는 더없는 기회라는 걸 생각한다. 그때 손잡아주고 그때 일으켜주고, 안아주고 업어주면 아이가 진정한 격려와 지지를 받게 된다는 걸 말이다. 아무 일도 없을 때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순간, 못나고 부족해 보이는 그 순간은 외면하고는 네가 잘했어야지, 네가 열심히 했었어야지 라며 모든 책임과 비난을 돌리며 아이를 혼자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나는 못난 선생님, 못난 사람이 된다는 걸 말이다.


  다른 곳을 좇았던 시선을 이제야 겨우 아이들에게 돌리고 다가서고 함께 어우러지려 애쓰면서도 내 안에서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고장 난 마음의 일부가 작동하면 아이들을 다시 밀어내고 외면하고 마는 것이다. 여전히 그런 내가 슬프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내 속의 고장난 그 부분이 딱해서다. 


  그러는 중에도 아이들과 함께 하나 되는 경험을 할 때면 얼마나 행복하고 충만한지 모른다.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 내 마음으로 들어오고 내 마음이 그대로 아이들에게도 들어간다. 그러면서 고장 난 내 마음도 조금씩 조금씩 고쳐지는 기분이 든다. 아이들이 나를 고치고 있구나라고 느낄 때, 다시 한번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 웃고 이야기하고 뛰고 공부도 하면서 아이들이 어떤 존재인지 몸으로 마음으로 알고 깨달아 가자. 그러면서 나를 가로막는 나를 넘어, 있는 그대로의 아이와 만나게 되는 귀한 순간들을 위하여 다시 일어서보자, 다시 걸어가보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