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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시]수라(修羅) - 백석 作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서울 사는 동생이 내려온다는 말에 엄마 빼고 온 가족이 화들짝 놀랐다. 딸아이는 ?’ 곤두선 반응을 보이고, 아들녀석도 할머니는 어떻게 해?’ 걱정이 태산이다. 나서지 못하는 오빠들을 대신해 조심스레 말을 넣었더니 지난 설 이후 못 내려온 동생은 조심하고 있다고 하고, 막내딸이 보고싶은 엄마는 앞으로 2주 너희들이 오지 말라고 하실 만큼 뜻을 굽히지 않는다. 언제 좋아질지, 아니 어떻게 더 나빠질지 알 수 없다 보니 무작정 말릴 수도 없다. 그 마음을 알듯도 하여 마음만 울컥, 콧등만 시큰해진다. 아수라(阿修羅)가 이러지 않을까 싶다.


글 | 이형월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