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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회원기고

[사람과도시] 청년 그들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장, 이를 위해 우리는 도시를 무엇으로 옷 입혀야할까?

글 | 황지욱 회원



‘500억에 사서 5000억에 판다’ 네덜란드 축구팀 아약스가 지예흐라는 선수를 4천만 유로의 이적료를 받고 첼시에 판다는 인터넷판 기사의 제목이다. 뼛속까지 상술로 가득 차있는 나라가 네덜란드인 듯하다. 왜 서두에 이 이야기를 꺼내는지 독자들은 궁금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최근에 독일과 네덜란드로 출장을 다녀오면서 그곳의 도시와 사람들에게 받은 느낌이 너무나도 다채로워 이것을 나는 그곳의 도시와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이라고 간주하면서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독일과 네덜란드를 다녀왔다. 지난해 말 교육부에서 ‘지역혁신’이라는 주제를 놓고 대규모 공모사업을 제시할 거라는 보도를 접했다. 그래서 “대학이 주체가 되어 지역사회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는 출장이 계획된 것이었다. 유럽은, 특히 독일이나 네덜란드는, 선도적 모델로 손꼽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일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 20여년이나 지났건만 변한 것이 거의 없었던 점이다. 우리처럼 고밀도 논쟁이나 지가 논쟁이 벌어지는 초고층아파트가 들어서지도 않았고, 옛날 건축물이라고 때려 부수고 새 건물을 지어놓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로 네다섯 시간을 걸려 프랑크푸르트에서 드레스덴으로 이동하는데도 눈에는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들판의 농촌풍경만 들어왔다. 어디를 가나 자연이 그대로가 남아있었다. “도대체 이런 변화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무얼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아니야, 하지만 독일의 통일 이후 최고의 도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작센 주의 드레스덴에 가면 뭔가 정말 달라진 것을 볼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거의 25년 만에 찾아간 드레스덴. 실망스럽게도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함께 간 교수들이 뭐라고 그럴까? 나를 욕하지나 않을까? 최첨단 도시 뉴욕 어디에서 살았느니 하며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교수는 도대체 뭐라고 할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최소한 겉모습을 보면서는 말이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며 그리고 계속 이어진 회의의 열기 속에서 내 생각은 기우였음이 하나둘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탄탄한 기본’에 충실했다. 건물 하나하나의 기초와 기둥 그리고 외벽은 모두 철벽같은 느낌이었다. 100년이 가도 뜯어내거나 부술 필요가 없이 탄탄하고 견고했다. 이미 1,000여 년 전부터 말이다. 그러다보니 오랜 세월이 오히려 거의 모든 건물을 문화재로 만들었고, 도시경관 자체가 문화재라고 해도 다름이 없을 정도로 고풍스러웠다. 드레스덴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엘베강 유역을 기반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19세기 낭만주의 양식의 문화유산 도시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여기에만 안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실리콘 작센’이라고 부르며 드레스덴 대학을 중심으로 다국적 반도체 기업과 연구소를 유치하여 젊은이들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산학연 협력의 끊임없는 변혁과 첨단기술 벤처기업의 태동을 돕고 있었다. 드레스덴 대학은 독일의 최고명문 공학계열 대학그룹이라는 ‘TU 9(Technical University 9)’에 속하며 지역발전을 선도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특히 초정밀 & 나노전자기술, 전자극 & 소재부품, 의생명 & 첨단공학, 인문사회과학 그리고 정밀기계 제조의 5대 학문분야를 중심으로 미래세대를 육성하며, 한편으로는 연구기관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체에 젊고 유능한 고급인력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었다. 


이러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자 주정부와 지방정부는 관학연+산업계의 4각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도시 동서남북에 미나폴리스(마이크로·나노전자 산업), 바이오폴리스, 사이언스폴리스, 매트폴리스(소재 기술·산업)라고 불리는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는데 행·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협력체계로 말미암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학연구소가 자라났고 수많은 젊은 창업가와 실질적인 산업협력이 진행되어 왔다. 무엇보다 대학캠퍼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World Trade Center’를 조성하여 정부기관의 협력부서와 민간기구가 입주하여 행정에서부터 법, 재정 문제의 해결 그리고 국제협력에 이르기까지 one-stop service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협력체계의 결실은 2020년 현재 드레스덴의 첨단클러스터 산업단지에 1,500여개가 넘는 유럽의 강소벤처기업과 연구소가 입주한 것이다. 드레스덴은 독일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외형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건물을 초현대식으로 개조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온갖 현란한 네온싸인 광고판으로 덕지덕지 치장하지도 않았다. 





화려하거나 두드러진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지역사회의 혁신과 젊은이들의 사회진출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업무활동은 눈에 뜨일 정도로 두드러졌다. 대학이 기업과 진취적인 연구개발(R&D)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예산을 편성하고, 적재적소에 지원하는 방안을 찾고 있었으며, 적절한 협력 기업을 찾아 연결해 주었으며, 수요자의 필요를 적기에 충족시켜주기 위한 협력연구&산업공간을 제공해 줄 길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독일 연방정부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작센 주정부와 드레스덴 시정부의 협력체계는 상상 이상으로 끈끈했다. 전북대 교수 네 명이 방문했을 때에도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소개하며 대학, 연구소, 기업과 회의일정까지 잡아주며 국제적 협력방안을 제시했다. 그들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그것을 넘어 전북대와 TU Dresden의 학생교류, 연구공유 등 더 큰 그림인 세계적 협력을 꿈꾸고 있었다.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던 1990년 동독지역은 사회주의 국가의 병폐가 고스란히 남은 생산성제로의 회생불가 지역이나 다름없었다. 그 중심에 서있던 드레스덴이 현재는 통일독일 연방의 기술혁신을 이끌어가는 핵심도시 중의 하나로 발돋움하고 있다. 나는 이번에 그들을 만나며 그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통일은 아무리 빨라야 사회주의라고는 겪어보지도 못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30년 뒤에나 제대로 시작될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달랐습니다. 통일이 이뤄진 지 30년이 된 지금 저는 독일 통일은 완벽하게 완성되었다고 봅니다. 바로 드레스덴 여러분의 노력과 집념의 결실이라고 믿습니다.” 이 말이 감동적이었던지 그들은 연신 “Danke, Danke”(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무엇보다 드레스덴 시장의 아내가 한국인이란 사실은 우리와 협력이 더욱 짙어질 수 있는 또 다른 촉매임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겉모습은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협력’이라는 사회체계와 ‘젊은이들을 위한 창업활성화’라는 화두는 얼마나 사회체질이 단단하게 다져지고 있는지 느끼게 하였다. 올해 9월에 드레스덴 대학의 연구팀과 드레스덴 공무원이 함께 전북대를 방문해 더욱 구체적인 협력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하였다. 이때 전북지역의 공무원들도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면 정말 제대로 된 ‘협력’의 성과가 도출되지 않을까?




드레스덴을 떠나 다시 700~800km를 달려 네덜란드의 바헤닝언(Wageningen)에 도착했다. 네덜란드에는 총 8개의 대학이 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바헤닝언 대학은 2016년부터 농생명분야 세계 1위 대학(대학평가기관 QS 기준)으로 특화되어 우리나라의 농진청과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었다. 물론 독일에 있는 104개의 국립대학(university)도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특화의 길을 걸어왔으나, 네덜란드의 대학은 훨씬 혁신적이었고 집약적으로 특성화를 달성하고 있었다. 아예 도시 전체가 농생명과학으로 특화되어 있었고, 도시반경 50km 안에 농생명분야의 세계적인 연구기관, 기업 1,500여개가 밀집해 있었다. ‘농생명’이라는 깃발 아래 이와 연관된 모든 연구와 산업이 다 모인 농생명 생태계를 이룬 것이다. 따라서 네덜란드 정부는 2004년 이곳을 '푸드밸리'라는 식품산업 클러스터로 지정했다. 


푸드밸리의 전체 기업 매출은 연평균 480억유로(약 64조원)로, 네덜란드 GDP의 10%에 달한다. 기업들이 모여든 이유는 바헤닝언대학과 연구소(WUR)의 우수한 연구인력 양성과 혁신적인 연구 덕택이다. 이로 말미암아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몰려왔고, 이러한 연구력과 젊은 인재들을 보고 기업들도 찾아왔으며, 기업들이 모이니 연구는 더욱 활성화됐다. 현재는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데이터 농업을 실현하기 위해 전문가 양성에 집중하며 연구실과 현장을 연결하는 ‘살아 있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데 관심이 높다. 2009년에 중국 베이징에 지점을 열었으며, 브라질 상파울로 대학, The Brazilian Federal University of Viçosa (UFV) 등 다양한 대학과 MOU를 체결하고 국제적인 공동연구와 협력사업을 진행하는 바헤닝언 연구소(WUR)를 보면서 농생명 기술이 도시를 옷 입히는 혁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게 되었다.




네덜란드도 초고층건물이나 네온사인 등으로 도시를 화려하게 치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사적 건축물을 잘 보존하면서도 현대적 양식의 새로운 건축물을 짓고 배치하는 실험정신은 독일보다 돋보였다. 이런 실험정신은 네덜란드 출신으로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건축가인 렘 콜하스나 독일 메르체데스-벤츠 박물관과 뫼비우스 하우스 등을 건축한 벤 판베르컬 같은 건축가들의 건축 작품만 보더라도 잘 느낄 수 있다. 이는 독일, 프랑스 또는 영국과 같은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뛰어난 틈새전략이 될 수 있었으며, 그들이 놓친 것을 붙잡아 그들보다 앞서 세계의 변혁을 주도하는 전략이기도 했다. 이렇게 그들은 ‘농업’이라는 단일 종목을 세계 최고의 ‘농생명 산업’으로 육성하는데 독일보다도 한 발짝 앞서 나가고 있었다.


도시계획가로서 나는 독일과 네덜란드를 돌아보고 전문가들을 만나며 여기서 그들이 ‘클러스터 모형’을 기반으로 끊임없는 혁신과 발전을 위하여 추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는 동종이나 유사업종의 산업을 하나의 단위공간에 집적시키면서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이다. 쉽게 말해 ‘인사동’ 전략이다. ‘인사동’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키워드를 한마디로 말해보라고 하면 아마 십중팔구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관련된 모든 것이 있는 곳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 ‘인사동’은 그렇게 쉽게 각인된 것이다. 그리고 진짜 그곳에 가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것이 거의 다 있다. 이렇게 지역을 특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그곳에서 산업과 비즈니스의 다양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소비자가 굳이 멀리 다른 어느 곳을 찾아갈 필요도 없다. ‘한국적인 것’은 그저 인사동 하나만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찾아가면 된다. 그러면 다 해결된다. 이것이 클러스터 모형의 사례이다. 




21세기가 바로 시작하려던 무렵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정책을 표방하면서 ‘행복도시와 혁신도시’ 계획안을 발표했다. 이것은 단순히 국토의 불균형만을 해소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 국토를 ‘클러스터 모형’에 근거해 혁신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가볍게 대했는지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전라북도가 대한민국에서 왜 농생명분야 최적의 지역인지를, 왜 그리고 어떻게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식품산업클러스터 등등이 위치해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이제 다시 제대로 된 ‘클러스터 모형’으로 옷을 입어야 한다. 짧은 세월동안 ‘선택과 집중’의 옷을 입다가 그쳤지만 이제는 젊은 인력을 양성해 내면서 실속과 내실을 다져야 한다. 자꾸 모든 것을 다 가지려 하지 말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를 집중적으로 제대로 키워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국립대든 사립대든 모든 학과를 가지고 몸집을 키우는 게 목표였다. 도시도 서울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정말 우리만이 내세울 수 있는 그 하나를 찾아야 한다. 그것으로 도시를 옷 입힐 때 경쟁력이 생기며, 지속가능한 성장이 이뤄질 것이며, 대한민국의 변혁을 주도하는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각국은 이러한 역사적 전통과 다양한 첨단기술 무엇보다 젊은이들이라는 재원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도시의 옷을 입히고 있음을 보았다. 겉보기에 화려하지 않은 듯했지만 실속이 가득한 그들만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적 자산이기도 했다. 이미 30년전 그러니까 내 나이 20대 중반에 나는 이런 모습들을 보았고, 이런 모습이 부러웠다. 그것을 우리 사회에 빠르게 이식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라고 떠든게 언제부터였는데, 여전히 무너지고, 부서지고 그래서 뜯어고치고 있는 나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의 도시를 옷 입힐 것인가? 


글을 마치기 전에 한마디만 덧붙이고 싶다. 지금 내가 보고 느끼고 쓴 글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20~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길거리 아무데서나 담배를 물고 다니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독일, 상점이나 호텔에서도 손님에 대한 서비스정신이 없이 시건방진 말투와 태도를 보이는 종업원들이 허다한 독일, 식당에서도 물 한 잔 거저 주는 일이 없는 돈독이 든 독일이나 네덜란드, 게다가 공공화장실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나라, 이런 것들 이야기는 왜 안 하냐고 따질 수도 있다. 그렇다. 그런 것들을 겪다보면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나라 같기도 하다. 뭣 하러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에게 그리 친절하게 대하는가 하면서 화도 난다. 그러나 바로 이런 면에서 한국인의 친절과 아시아인들의 겸손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또 다른 ‘세기의 상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를 기쁘게 만들고 웃음 짓게 만들 수 있는 상술, 이것은 일회성 상술보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오랫동안 녹일 수 있는 상술이 아닐까? 이런 점에서 ‘친절과 겸손을 갖춘 아시아인의 가치’는 또 다른 차원의 비즈니스 정신이요 도시를 입히는 옷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세계는 바로 이 ‘친절과 겸손’의 옷을 입고자 우리나라를 찾을 것이다. 이번에 드레스덴 대학에 갔을 때도 그들은 “전북대와 공학분야의 교류뿐만 아니라 인문학분야의 교류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들이 살아가는 도시에 이러한 인문학적 가치로 옷을 입혀주면 좋겠다. 이 옷을 5,000억 유로 아니 5조 유로에 제공해 주는 시대를 열길 기대해 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