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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회원기고

[마음시]허공 - 이덕규

글 | 이형월 회원







자라면서 기댈 곳이


허공밖에 없는 나무들은


믿는 구석이 오직 허공뿐인 나무들은


끝내 기운 쪽으로


쿵, 쓰러지고야 마는 나무들은


기억한다 일생


기대 살던 당신의 그 든든한 어깨를


당신이 떠날까봐


조바심으로 오그라들던 그 뭉툭한 발가락을


 



 





 


딸아이는 많은 영화를 나랑 보고 싶어 한다. 나도 딸아이랑 함께 하고 싶은 영화가 많다. 아이는 무섭고 괴기스런 것을, 나는 잔잔한 웃음과 이야기가 있는 것을 좋아한다. 취향이 다르다 보니 딸아이는 매번 서운하고 서럽고, 나는 또 늘 미안하고 안쓰럽다. 둘이 딱 맞는 영화를 만나기는 여간해서 쉽지 않다.


지난 해 딸이 “82년생 김지영”을 찾아 읽고 엄마도 읽었어 물었다. 응 대답만 하고 또래들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거니 싶어 아이의 감상을 묻지는 않았다. 얼마 전 영화가 나오자마자 딸아이가 보고 싶어 해 둘이 보았다. 보는 내내 우리 엄마와 언니의 삶이 떠올랐다. 특히 내 아이 둘을 키워주시고 지금도 여전히 뒤치닥거리중인 엄마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나의 생각은 왜 김지영스럽지 못했을까.


한참 사춘기인 딸아이는 옆에서 영화 처음부터 눈물바람이다. 엄마는 안 울었어? 뭐가 그렇게 슬퍼서 울었어? 할머니가 생각나서, 할머니가 불쌍해서. 딸아이는 제 엄마나 자신의 삶은 김지영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듯하다. 물론 내 생각은 다르다. 딸아이도 나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경우와 정도가 다를 뿐 편견과 차별 속의 김지영이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대처하고 표현하는지만 다를 뿐이다.


아직 어린 딸아이에게 나는 든든하고 튼튼하니 기댈 수 있는 존재다, 우리 엄마처럼. 딸아이는 기댈 허공이 있고, 그 허공 속에서 거리낌 없이 뿌리를 내리고 어깨를 키우며 한 나무로 성장하고 있다. 내가 우리 엄마의 허공 속에 기대어 살아온 것처럼 우리 딸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허공 속에는 수많은 엄마와 딸들의 세상이 존재하고 또 사라진다.   


아이들은 혼자 사는 할머니를 가끔 걱정하며 눈물짓지만, 나는 불시에 찾아올 엄마의 부재를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짐짓 모른 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