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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탐방] "저작권이 없는 사람" 이강주 신임대표



인터뷰·정리 | 김숙


부스스한 머리,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얼굴, 세련된 믹스매치를 찾기 어려운 그의 모습 속에 무언가가 보일 듯 알 수 없는 그 무언가. 오늘 한번 찾아보자. 



라포(rapport)형성

대표님 요즘 제일 관심사가 뭔가요? “공부요.” 

공부가 취미인 이상한(?)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신기한 존재들이라 생각했는데, ‘공부’가 제일 관심사라는 신기한 이 사람. 지난 1월 우리단체 정기총회에서 공동대표로 선출된 이강주 대표다.


“치의학 관련 공부 하는 거 있어요. 처음에는 치아가 뾰족뾰족하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닳아요. 그 닳은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분석하고...아무튼 너무 어려워요. 고고학이 나오고...핑거프린트라고 하는데 분석 하는 게 따로 있더라고요.” 성장하고 싶다면 공부하라고 했던가. 그는 전공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다면서 연신 어렵다고 고개를 젓는다. 듣고 있는 우리도 너무 어려워 패스.


이미 눈치 챘겠지만 그는 치과의사다. 좀 더 보태자면 나의 주치의다. 5년 전인가, 심한 치통으로 동네 병원을 찾았더니 삼차신경통일 수 있다면서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것이다. 산고의 고통보다 더 심하다는 삼차신경통. 당혹스러운 마음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몇 마디 증상을 들어보더니 분명하고 확신에 찬 한마디 “아니에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 희망의 메시지란.  그 후로 한 시간 넘게 운전하고 한두 시간 기다려 진료받기를 몇 년째. 의사가 주는 신뢰는 장거리 운전의 번거로움도 개의치 않게 된다.


그의 병원을 찾을 때면 예약시간 보다 늦게 진료를 받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진료를 하다보면 돌발 상황이 생기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환자에게 설명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진료를 받기 위해 가득히 모인 사람들을 보면 조급한 마음이 들만도 하려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요? 제가 설명을 길게 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저는 그냥 환자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을 해야 될 거 같아서요. 그래도 환자가 본인 상태는 정확히 이해하고 가야죠.” 


환자들은 의사와의 시간이 필요하다. 의사와 환자사이에 믿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환자의 병세가 호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병원을 찾는 이들은 10년을 훌쩍 넘긴 단골환자들이 많다. 15년 이상 된 환자들의 엑스레이 영상도 시리즈별로 다 보관되어 있다. 의료법상 환자의 영상 보관기간이 5년임을 감안한다면 15년의 보관은 그야말로 환자에게 있어서도 역사기록이다. 10년, 20년 된 환자의 기록들은 환자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분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진료 시 어떤 환자들이 불편하냐고 물었다.

“특별히 불편한 환자들은 없어요. 환자들이 원하는 게 있으면 의견을 들어주고 웬만하면 환자들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되니까요. 다만 너무 많은 의학정보로 인해 의사들과 충돌할 때가 있죠. 모르면 병이 아닌데 앎으로 해서 병이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검증되지 않은 무분별한 의학정보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할 때 조금 힘들죠. 특히 의약품 광고가 가져오는 폐해는 다양해요. 소비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심어주어 오히려 건강을 악화시키는 의약품 광고는 허용해서는 안돼요.”


광고는 검증된 근거만을 가지고 하지는 않는다. 두통약의 대명사가 된 ‘게00’이 안전성 논란으로 인해 퇴출위기에 놓인 적이 있었다. 소비자들은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약 광고는 심의에 걸러져서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리 생각하고 있었으니.



진료철학

이쯤 되면 치과의사로서 추구하는 진료 철학이 궁금하다. “우리 병원 방침이 있어요. 포괄적인 예방진료에요. 쉽게 표현하면 정기검진이죠. 치과라는 의료분야가 후처치가 아닌 선처치도 가능하기 때문에 병원 목표로 삼고 있어요. 지금도 환자 반절정도는 예방진료를 하고 있어요. 우리 치과 오면 양치를 다 해주잖아요. 그게 예방진료 차원에서 하는 거예요. 환자의 엑스레이영상을 시리즈로 보관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예방진료하면서 환자의 모든 상태를 기록 하는 거죠.”


그는 개원 후 10년이 지났을 무렵 교정 전문인 일본인 의사를 알게 되면서 치과 진료에 대한 방향을 잡게 되었다. 물리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점수에 맞추다 보니 치대를 선택하게 되었고, 학생운동하면서 학교를 9년이나 다녔다. 개원하고도 진료하기 싫어서 고민이 많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일을 하면서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가치를 찾지 못하는 일이 재미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때는 병원 생각 안 하고 그 일본인 의사만 쫓아다녔죠. 그때부터 예방진료를 하게 된 거예요. 치아교정도 테크닉을 보는 게 아니고 가치를 많이 넣어서 진료를 하죠. 치아 하나 할 때 6개월 걸려서 하기도 했어요. 예방진료 시작하면서 병원이 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기본 진료비만 받고 예방진료를 하고 있으니... 지금도 환자의 반 이상이 이만 닦고 가요. 양치 전담 치위생사만 따로 있어요. 적자죠(웃음)”


예방진료에 대한 중요성은 요구되고 있으나 제도가 뒷받침 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는 예방진료 활성화를 위해서는 예방진료비체계를 연간 구강관리비 개념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치아 통증 등 구체적인 증상이 있어야만 치과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예방진료는 누구나 받아야 하는 보편적인 진료인데 그렇게 되려면 국가에서 나서서 해줘야 하는 거죠. 청소년 구강통계 자료를 보면 강남에 사는 아이들이 시, 군 단위에 사는 아이들보다 우식발생률이 낮거나 치아상태가 더 좋게 나왔어요. 구강건강수준은 연령과 경제적 상황과 관계가 있어요. 경제적 불평등이 건강불평등과 비례하거든요. 보편적 예방진료가 이뤄지면 치아 상태가 다 비슷해지겠죠.”


그렇다면 건강불평등을 해소하려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죠. 지역마다 특성에 맞게, 예를 들어 군 단위는 고령인구가 많으니 거기에 맞는 예방진료 프로그램을 만들고. 틀니 지원 사업은 큰 의미는 없다고 보거든요. 관리차원에서 보면 미흡하죠. 해주고 끝이니까. 학교에서는 양치시설도 마련해놓고 보건소나 병원과 연계해서 구강위생검사, 홈 메우기, 치석제거 등 기본 검사 후 사후관리가 이뤄줘야죠.”


WHO에서는 가장 저렴하고 효과적인 예방진료정책이 수불사업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지자체 마다 수불정책을 하면 좋을 텐데요? “수불사업을 하는 지자체도 있기는 했는데 지금은 거의 정지상태죠.” 아니 왜요? “독극물이라고, 불소자체는 불산이라고 해서 산의 일종인데 그게 강한 거죠. 그런데 불산 자체를 물에 넣는 게 아닌데 그것을 독극물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거죠. 아까 얘기한 잘못된 정보의 폐해인거죠.”



단체와 인연을 맺다

불소얘기에 열을 올리던 그때, 억울한(?) 인연의 시작이 느닷없이 떠오른다.

“하이고, 제가 수불사업 때문에 단체와 인연을 맺게 되었잖아요.(웃음) 2001년도인가 제 스승님이 불소사업을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는 과정에 김영기 대표를 소개 받은 거죠. 잘못된 인연이죠. 하하하, 그러더니 어느 날 운영위원을 하라는 거예요. 우리 단체의 특유의 포섭방식 있잖아요.(웃음)”

아무렴, 그 억울한 심정 이해한다. 나도 그렇게 포섭되었으니. 동기야 어찌되었건, 운명이다.


그리고 이제는 대표를 하란다. “제가 1년 넘게 단체 활동이 뜸했었잖아요. 그래서 일 열심히 하라고 벌로 시킨 거 같아요.(웃음)” 지난 총회에서 회원들의 승인을 얻어 공동대표가 되었지만 ‘대표’로 불리는 게 어색하고 쑥스럽다. 대표로서 하고 싶은 일이 무어냐고 물었다.

“대표로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 많이 해봤어요. 다른 대표님들보다 제가 제일 한가한 것 같아요.(웃음) 그렇다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겠다 싶었고, 그게 회원들과의 만남이더라고요. 회원들과 만나서 맛난 것도 사드리고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청탁(?)도 받고요. 가능하다면 일 년에 회원들 다 만나고 싶어요.”


청탁이요? “시민단체가 생활정치를 하듯이 회원들 삶 속에 들어가서 민원과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함께 방안을 모색하고... 나아가서는 길라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요.”


회원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그는 회원과의 만남 속에서 단체 사업의 아이디어도 나온다고 귀띔해준다. “누군가는 회원을 만나서 얘기 들어주는 역할이 필요할 텐데 제가 그 역할을 하고 싶어요. 결국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해요. 사람 속에서 답을 찾아야한다고 봐요. 농담 삼아 하는 얘기지만 아들, 딸들이 20대가 된 회원들이 많아요. 그들이 회원활동 할 수 있게 해야죠. 그래야 단체가 젊어지죠.(웃음)”



시행착오의 경험들은 우리를 확장시킨다

올 해 단체가 스무 살이다. 20대 청년 시절 함께 출발한 회원들은 중년이 넘었고, 변화 없이 변화를 이끌지 못한 단체는 노년이 되었다. 올 해가 우리단체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요?

“변화는 토대가 중요해요. 변화는 축적된 게 있어서 변화가 가능한 거죠. 어느 순간에 터닝포인트가 된다는 건 힘들어요. 제 치과 경험으로 보면, 디지털 시스템을 바꾸는데 2억 가까이 들었어요. 병원 망하는 거 아닌가, 불안하기도 했는데 날려 먹을 각오로 변화를 시도했어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죠. 시행착오를 버려진다고 생각하지 말고 쌓여간다고 생각해야 해요.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쌓이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야 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변화의 순간이 있을 거예요. 우리 단체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패, 어려움 등 시행착오를 쌓아가는 계기를 많이 만들어야 해요.”


시행착오의 경험들은 그를 확장시켰다. 실수들이 쌓이면서 변화와 성숙으로 이끈다. “직원들에게 환자를 대할 때, 책임을 져야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회피하는 발언을 하면 안 된다고 늘 강조해요. 대신 저도 그러한 과정에 발생되는 실수가 있어도 뭐라고 하지 않고요. 실수했다고 뭐라고 하게 되면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만 만들게 되거든요. 두 번 다시 무언가를 도전하지 않는 거죠.”


백번 공감. 아쉽다, 회원탐방 때 처장님과 위원장님이 함께 계셨어야 하는데. 하하하.


회원과의 만남을 위해서는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 돈은 누구에게나 소중할 텐데.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등등. 그러자 돌아온 그의 대답. 

“전 원래 저작권이 없는 사람이에요. 돈을 가지고 있으면 필요 이상 많이 사게 되고 사치만 하게 되거든요. 내가 벌었다고 내 돈이 아니에요. 내가 벌어서 남한테 준다고 생각하면 힘들겠죠.(웃음)”


인터뷰 도중 그는 ‘가치’란 말을 여러 번 했다. 그가 생각한 가치란 억지로 꾸미지 않아 어색한 데가 없는 ‘자연스러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