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우리는
이주희
“곱셈 배울 차례가 돌아오니 슬슬 구구단 좀 해야지 않겠어?”
으아~~하는 아이들의 소리.
“내일부터 시작한다.”
다음 날 아침 교실에는 구구단 외우는 소리가 가득하다. 2학년 때 외운 구구단이 쉽게 생각나는 아이들은 4명 정도. 나머지는 자꾸 삐끗하며 틀린다. 육팔의 사십육, 칠구육십사, 팔사이십사.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반응도 재밌다. 아 하는 탄식을 하기도 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진짜 왜 그러지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연습할 때는 잘했는데 하다 보면 틀리게 된다며 구구단이 이상하다고 하는 아이도 있다.
우리반 희준이는 4단에서 무려 열 번이나 틀려 다시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신중하게 4단을 외우기 시작한다.
사...일은.... 사. 사...이....파..알....사...삼...시입...이. 이렇게나 찬찬히 읊어가는 희준이의 얼굴에는 구슬땀이 흐르고 드디어 4단은 막바지에 다다른다.
사..... 파알의.... 삼...시입......이......사.......구..우.......삼..시..입......치일!
그 순간 희준이는 삼십육이 아닌 삼십칠을 말한 걸 깨닫고 아 하며 머리를 움켜쥔다. 내가 다 안타까워서 이를 어쩌냐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속상하고 화가 날 텐데도 희준이는 다시 땀을 흘리며 4단 연습에 돌입했고 결국 그날 사... 구.우.. 삼...시..입.......육! 을 성공했다.
우리반은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나와 간단한 책 대화를 나눈다. 소원떡집을 읽은 도준이와 책 대화를 시작한다. 소원떡집은 볼품없는 외모로 친구가 없는 꼬랑쥐가 사람이 되고 싶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 삼신할머니의 심부름을 하게 되는 이야기책이다. 각각의 소원이 담긴 떡을 보고 그 떡이 꼭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 배달해야 하는데, 꼬랑쥐는 아이들의 표정과 발걸음 등을 보고 꼭 맞는 소원떡을 배달해간다. 책 이야기를 하다 도준이에게도 소원떡이 필요한지 물으니 필요하다 한다. 그래서 어떤 떡이 배달되면 좋겠냐고 하니,
“꼬리가 자라는 떡이요.”
“앵? 꼬리가 자라는 떡?”
“네, 저희집에 다람쥐가 있는데 아빠가 다람쥐 잡으려고 꼬리를 잡았다가 꼬리가 끊어져 버렸어요. 다람쥐 꼬리에서 피가 났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꼬리가 짧아요. 꼬리가 자라는 떡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위한 소원을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불쌍한 다람쥐를 위한 소원을 이야기하는 도준이. 나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오늘 밤 도준이네 집에 그 떡이 꼭 배달오면 좋겠다는 말을 진심으로 한다.
5월 어버이날을 맞아 아이들은 예쁘게 편지지도 만들고 정성을 담아 부모님께 편지를 쓴다. 우리반 아이 중 한글이 서툰 아이가 있는데 평소 활동을 하면 저는 몰라요 못해요 하기 일쑤다. 그런데 그날은 공책을 들고나와서는 글자를 써 달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걸 써볼까 하니,
“엄마, 나 때문에 많이 힘들지? 미안하고 고마워요.”
나는 공책에 이 말을 따라 써주었다. 아이는 들어가서 내가 적어준 글자를 한 자 한 자 옮겨 적는다. 그러고 다시 나와, “엄마 회사 다니느라 얼마나 힘들어? 고생했어요. 내가 엄마 회사 다녀오면 어깨 주물러 드릴게요.” 도 적어달라고 한다. 공책에 아이의 말을 받아 적는데 아이가 엄마에게 어떤 마음의 말을 하고 싶은지 느껴져 뭉클해진다. 나 때문에 힘들 엄마 그리고 회사 다니느라 고생하는 엄마를 위로하고 싶고 힘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잘 못 쓰는 글자를 천천히 옮겨 적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는 한글은 몰라도 분명 큰 사랑의 언어는 가지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
“선생님, 효찬이 울어요!” 하는 소리에 효찬이를 보니 안경을 벗어 던지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효찬이랑 대화가 필요한 친구가 있는지 물으니 수한이가 손을 든다. 둘은 할 말이 많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효찬이는,
“나도 놀이에서 더 쎈 캐릭터를 하고 싶은데 너만 하고 나는 못 하게 했잖아.”
“야, 내가 언제!”
“아까 너만 쎈 능력 가지고 공격하고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고 하고, 그럼 나는 언제 다 죽이냐?”
“아, 완전 억울해요!”
엇갈리는 둘의 대화 속에서 진실을 파헤쳐야 할 때면 난감하다. 하지만 그 진실보다 더 깊은 곳에는 분명 웅크리고 있는 마음은 있는 법. 진실을 명확히 밝힐 수는 없어도 깊은 곳의 마음은 끄집어낼 수 있다.
“너만 쎈 캐릭터로 공격하고 내가 잡아도 다시 살아난다고 하니까 내가 몇 번은 참았는데 화가 나고 속상한지 아냐?”
“내가 계속 살아나서 미안해.”
“괜찮아. 다음에는 몇 번만 살아날 수 있다고 규칙을 정하면 좋겠어.”
“알았어. 그런데 나만 쎈 캐릭터 한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사람 중에 가위바위보로 해서 정한 거니까 너를 못 하게 한 건 아니야.”
“미안해. 내가 화 나서 그렇게 말했어.”
“괜찮아.”
아이들은 다시 교실 뒤쪽으로 가더니 ‘레이저 빔’을 외치며 서로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그들만의 놀이를 시작한다. 금방 무슨 일 있었던 거 맞아?
수학 단원평가를 보는 날. 교실은 사뭇 긴장감이 돈다. 진지하게 시험 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예쁘다. 나는 작은 초콜릿을 아이들 책상에 하나씩 놓는다.
“애들아, 이거 마법의 초콜릿이다. 모르는 문제 나올 때 먹으면 잘 풀 수 있게 된대.”
아이들의 얼굴에 소리 없이 환한 웃음이 번진다.
“선생님 저 그런데 모르는 문제가 두 갠 데요.”
“이를 어쩌지, 이 마법의 초콜릿은 딱 한 문제만 쓸 수 있거든.”
아이들 얼굴에 웃음은 다시 피어난다. 거짓말도 진지하게 서로 주고받는 우리.
요즘에 우리는 이렇게 지내고 있다. 시시콜콜한 일들로 웃고 화내고 눈도 흘겼다 화해도 하면서 말이다. 세상의 크고 위대한 가치나 의미보다는 작고도 작은 치사하고 사소한 일들로 복잡하게 얽힌 채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크고 위대한 것들을 생각할 적에 스스로 얼마나 작고 초라해지는지 모른다. 그러나 별것 없는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것도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의 여정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나는 겨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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