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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도시] 밤의 도시와 낮의 도시 (회원통신 2019.01월)

휘황찬란한 밤거리의 네온사인을 밝히며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도시를 상상할 때 과연 우리는 어떤 기분일까?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또 어느 시대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 고도성장기를 살아온 산업역군들은 돈이 돌고, 경제가 돌아가면서 무한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도시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 농촌에서 대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갓 올라온 사람들에게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라스베가스’의 모습으로 그려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늦은 밤까지 귀가하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던 아이들에게나, 가장을 기다리던 아내의 눈에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흥청망청하는 백해무익의 도시로 그려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불야성의 밤의 도시가 아침이 되면 완전히 새로운 공간인 듯 탈바꿈 한다. 어젯밤까지 그렇게 흥청망청하던 공간 어디서도 자극적이던 붉은 빛 네온사인은 찾아볼 수 없다. 과연 그런 것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말쑥하게 차려입고 출근을 위해 바쁜 걸음을 옮기는 회사원들과 학교를 향해 바삐 움직이는 학생들의 등굣길 공간으로 변한다. 간혹 가다가 거리에 흩어져 있는 뭔지 모를 전단지나 과음의 흔적이 보이면 지난밤에 어떤 일이 있었나 상상해 볼 수 있지만 그것도 이른 새벽부터 열심히 청소를 해온 환경미화원들의 노고에 거의 느낄 수 없다.





그러나 24시간 전체를 관통하며 살펴보는 사람에게 하나의 공간에서 두 가지로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은 결코 바람직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도시를 계획하는 사람으로서 이 밤의 도시는 물론 깊은 밤에만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지라도 절대 등하교와 출근이 이뤄지는 하나의 행동반경 상에 이뤄지면 않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을 분리시키는 계획이 도시계획의 용도지역 구분이라고 한다. 즉, 주거용지에는 주거만이 가능하도록 계획하고, 공업용지에는 공장 등 산업시설만이 들어서도록 하여 생산·제조 등의 활동이 이뤄지도록 하며, 상업용지에서는 상업적 행위만을 가능하도록 계획적으로 구분짓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렇게 해오고 있다. 다만 상업적 행위 중에 ‘근린생활시설’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상업용지가 아닌 다른 용도지역에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그곳에 머물면서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규모 안에서 상업행위를 가능하게 허용한 것인데, 바로 여기서 다양한 편법적 일탈이 벌어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근린생활시설 중에 ‘일반음식점’이 있다. 이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된 시설은 대부분 주류를 겸하여 판매하는 시설이다. 그런데 문제는 식사가 주된 판매행위이면서 주류가 부가 되는 그런 식당으로써의 일반음식점이 아니라, 주류판매가 주가 되는 ‘선술집’으로써의 일반음식점이다. 이 경우 영업시간은 밤 12시를 훌쩍 넘기면서도 주택가에서 버젓이 영업을 한다. 사실 이러한 선술집이 도시계획 상 주거지에 허용(?)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 유럽 어디에선가 유학을 했던 정부의 고위관료가 독일의 선술집(Kneipe)같은 것이 집 근처에 있어서 가볍게 한 잔 하고 귀가할 수 있어서 참 편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했었고, 계획가들은 “그렇다면 우리도 도시계획에 반영해 보자”고 했던 결과물이 바로 이것이었다는 기억을 더듬게 된다. 하지만 결과물로서 독일의 선술집과 우리의 선술집은 어떤 차이를 보여왔는가? 우리에게는 가볍게 한 잔이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 일간신문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던 수도권 모 신도시들의 초등학교 바로 옆 단란주점 기사들, 자녀들이 흥청거리는 어른들 사이에서 낯모를 사람과 내 가족이 뒤엉킨 것을 발견하고 경악해 했다는 기사들, 이것이 바로 우리 선술집의 결과물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시설이 바로 학교의 등하교 길과 동일한 동선 상에 놓여있던 것이나 바로 주거지와 학교에 연접해 위치해 있던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한편으로는 도시계획가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무방비의 계획을 수립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도시계획 제도를 아무리 법리적으로 촘촘하게 잘 만들어도 약점과 맹점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법의 맹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탈법이 아닌 합법적 사업수완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예전에 독일인 친구들은 내게 “왜 독일에는 그렇게 많은 법이 있고, 게다가 법조항도 세세한지 아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머뭇거리는 내게 해준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독일사람들, 법의 맹점을 하도 잘 파고들어, 그때마다 법규정을 훨씬 세세하고 정밀하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야.” 일리 있는 말이었다. 게다가 또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아무리 돈을 벌려는 업주가 즐비하더라도 이런 술문화를 즐기려는 술 소비자가 없다면 그 사업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수요를 창출하는 소비자가 늘어서 있고 술문화가 남아있다. 그것도 밤이 샐 때가지 마셔대는 그런 소비자들이 말이다.


이런 사회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고는 있다. 하지만 그런 변화만 바라보기보다 계획가로서 이제 독일인 친구가 말해 줬던 법조항의 개정과 강화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밤의 도시와 낮의 도시가 혼재되어 있는 모습이 21세기가 벌써 20년이 훌쩍 지나는 시점에 와있는데도 남아있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도시의 모습이라고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선진화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이제는 한 단계 더욱 성숙하고, 좀 더 면밀히 사람들의 심리와 행태를 살핀 계획이 수립될 필요성이 있다. 이것이 어쩌면 안전한 사회, 어린이와 가족을 지키고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번 겨울 1월 5일부터 21일까지 전북대학교 학생 30명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모 국가로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이번이 네 번째로 다녀온 해외봉사활동인데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 나라의 수도만 하더라도 지난해와 몰라보게 달라졌다. 새로운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비포장도로가 즐비했던 그곳에 어느덧 뻥 뚫린 간선도로가 들어섰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모델의 새차들도 가득차 있었다. “아니 한해만에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상황을 한 동료에게 말했더니 그는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동남아시아의 국가들이 우리나라의 경제력을 뛰어넘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 말이 그냥 들리는 말은 아니었다. 내가 간 나라 대학의 한 학생은 정부가 조만간 200 여층에 이르는 초고층 건물 건축계획을 선언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이번 방문을 통해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도는 것은 경제성장 이면의 모습이었다. 너도나도 돈을 벌겠다고 수도로 몰려드는 사람들, 집값은 상상을 초월하게 앙등하고 있는데, 반대로 집없고 땅없는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으로 내몰리는 초빈익빈 초부익부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는 상승하고, 매년 땅값이 두배씩 올라 부동산투기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러는 새에 농촌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 인구 과소화의 몸살을 앓고 있으며, 정부가 대도시 개발에 몰두하고 있어 가난한 지역은 헤어 나올 수 없는 낙후와 불균형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 대한민국을 배우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잘못된 도시계획, 경제성장을 본받게 하면 어쩌란 말인가? 밤의 도시와 낮의 도시가 공존하는 모습을 배우게 해서는 어쩌겠는가? 진정한 의미의 포용도시, 배려도시를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글 | 황지욱 회원 (전북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