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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회원기고

[회원의 글] 살림, 업그레이드

| 정우식 (회원)

 

 

[퇴직 교사, 전업주부로 살기 4]

 

지난 12월호에서는 살림 속에서 발견한 민주주의의 원리를 다루면서 가사 독점 욕구라는 비민주성이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음을 성찰한 바 있다. 또 단순한 역할 구분이었던 것이 오래 지속되면 차이로 자리 잡고, 차이가 고정되고 집단화하여 결국 차별로 변질되고 마는 차별의 문명사적 진화 과정도 어설프게나마 짚어보았다.

오늘은 지금까지보다는 좀 더 일차적인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 주제는, 살림을 해나갈수록 절박해지는 살림남의 요구이며 초보 단계를 벗지 못한 미숙한 전업주부의 현실적 고뇌가 담긴 것이니 눈여겨 봐두었다가 아낌없이 조언해주시기 바란다.

 

끼니 걱정이 제1 과제

한 끼 한 끼 해결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요즘 상태가 이렇다. 전업주부 생활이 이제 10개월 정도 지나니 서서히 살림 밑천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밑반찬이며 국거리며 총체적 메뉴 고갈에 직면한 것이다.

된장찌개도 한두 번이지, 김치찌개도 한두 번이지, 미역국도 한두 번이지...’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다. 새벽 밥 먹고 출근해야 하는 시골 교사 아내부터 점점 기력과 삶의 의욕 저하가 눈에 띄게 진행되고 있으신 구순 앞둔 노모, 이제 중3 올라가는 늦둥이 딸, 휴학 중 집에 내려와서 지내는 대학생 작은아들까지 다섯 식구지만 55, 식사 시간과 식성과 하는 일과 라이프스타일이 저마다 다르고 복잡다양한 가족 구성인지라 녹록치 않다. 게다가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중2 막내가 온라인 수업이 많아 종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고민과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대학생 큰아들까지 방학 중 내려와 지낼라치면 여섯 식구 66. 하루에 적어도 4, 보통 5끼 이상 밥상을 차리고 치워왔다. 막내 간식차림까지 따지자면 훨씬 늘어나고...

열 달이면 어림잡아 계산해보니, 하루 네 끼씩만 쳐도 모두 합쳐서 1,200끼 이상이다. 라면 같은 간이식이나 더러 배달음식으로 해결한 것을 빼고도 대략 그 이상은 될 것 같다. 막상 이렇게 수치로 바꿔놓고 되돌아보니 아찔하다. ‘정말 이걸 내가 감당해 왔다고?’ 먼저 나를 격려하고 싶어진다. “애썼구나, 칭찬해.”

 

 

문제는 ’, 돌려막기 회전문 식단

칭찬은 했지만 최근 들어 부쩍 심각해지고 있는 메뉴 고갈 사태를 직시하며 냉정하게 자아비판을 해보려니 새로운 국면이 전개된다.

물론 1,200회 식단을 차리고 설거지해온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지만, 1,200이라는 것은 식사 횟수가 그렇다는 것이지 차림을 기준으로 해서 순수한 끼로 계산하면 하루 3×300일 총 900끼 가량인 것인데, 아직 초보니까 밑반찬의 부실함은 조금 봐줘서 고려사항에 포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900끼 밥상의 질적 수준 자체에 대한 평가까지 칭찬받을 만한 것인지는 스스로도 의문이다.

언제나 문제는 그놈의 이다. 우리 식단에서 늘 해결하기 쉽지 않은 것이 국, 찌개, 탕으로 같은 듯 달리 불리는 국물 있는 녀석들을 챙기는 일이다. 특히 우리 집은 국물 없이 밥 먹는 것이 어색한 국 중심 식단이 대물림되어온 탓에 끼니때마다 제일 걱정거리가 바로 이 문제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 내내 똑같은 된장찌개를 먹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최소한 하루에 두 가지 정도 국거리를 장만해서 하나는 아침, 저녁으로 한 끼 걸러 먹고, 점심은 다른 걸 쓱~ 내밀고라도 해야 주부 체면이 서지 않겠나? [참고로 사전에는 국물 삼총사가 이렇게 풀이되어 있다. ‘: 고기, 생선, 나물 따위에 물을 많이 붓고 간을 맞추어 끓인 음식’, ‘찌개: 고기, 채소, 두부 등을 넣고 간장, 된장, 고추장 등으로 양념을 하여 국물을 바특하게 끓인 반찬’, ‘: 국을 높여 이르는 말, 또는 제사상에 놓는 건더기가 많고 국물이 적은 국’]

 

업그레이드 필요 시점 도래

그런데 찬찬히 따져보니 내가 보유한 국물 가짓수가 넉넉잡아 열다섯 가지 정도라 해도 그것을 900끼에서 나눠보면 한 가지 당 60, 열 달 동안 한 가지 국물 음식을 평균 60차례 이상 반복해서 먹은 것이 된다. 같은 국을 연 60, 한 달에 6끼 이상 먹어야 했을 가족들도 여간 고역이 아니었지 싶다. 그것도 매번 기록을 안 해놔서 그렇지 실제로는 15가지는 고사하고 김치찌개 등 만만한 몇 가지 대표 메뉴는 더 자주 돌려막기 했을 게 뻔하니 더욱 찔리는 대목이다.

그래서 메뉴 업그레이드가 절실하다. 살림의 다른 분야는 앞으로 천천히 익히더라도 당장 시급한 것이 먹거리 업그레이드다. 지금까지는 그냥 60여 년 동안 눈동냥, 귀동냥, 입동냥으로 먹고 보고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내 안에서 쥐어짜내며 버텨왔는데, 이제는 살림 선배들의 도움을 구하거나 따로 공부해서라도 외부 수혈을 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국부터 밑반찬, 주 요리까지 먹고사는 것 관련 노하우면 뭐든 좋다. 레시피까지면 더욱 좋지만 음식 이름만 제시해줘도 큰 도움이 된다. 책 소개도 좋다. 다급하다.

“SOS, 도움을 청한다.”

 

[필자 주] 지난 호 글 말미 부분에서 단어 하나의 위치가 잘못 들어가는 오타가 났음을 이번 글을 쓰면서야 발견하였다. 자칫 오독을 부를 수도 있어 굳이 바로잡는다.

 

처음에는 그저 남녀가 생리적 특성에 따라 여성은 임신과 출산과 수유를 해야 하므로 집과 집 주위 정도로 생활공간이 제한되고, 역할도 대개 그 안에서 수행할 수 있는 것들, 곧 육아와 집안일 따위의 일견 단순하면서 때깔도 잘 나지 않는 일상적인 활동으로 좁아진다. 성적 특성에 따른 제법 합리적인 역할 배분이다.

(다음 문장 맨 앞에 들어갔어야 할 일견이 엉뚱하게도 한 줄 위로 잘못 들어갔다. 일견 성적 특성에 따른 제법 합리적인 역할 배분이다.”로 바로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