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영모(회원)
‘코로나 장발장도 보듬자’. 경기도가 ‘경기 먹거리 그냥드림(코너)’을 열면서 내건 일성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먹을 게 없어 훔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코로나19로 생계위기에 처한 이들을 위한 아낌없는 지원을 호소한 것입니다. 국제 인도주의 기구(Concern Worldwide)는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발생 이전보다 먹거리 빈곤 인구가 2억6,500만 명이나 더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먹거리 배제의 현실
학교급식이 중단되었습니다. 복지시설과 무료급식소도 대부분 문을 닫았습니다. 경로식당도 무기한 휴업했습니다. 공공기관으로 분류되는 푸드뱅크는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먹거리 기부액도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무료급식소에서 나눠주는 밥과 반찬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이제 익숙한 풍경입니다. 배식 대신 밥과 반찬을 나눠주는 몇 안되는 급식소에는 영하 11도 혹한에도 1시간을 걸어 도시락 통을 내미는 어르신들로 북적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버겁고 가혹한 겨울나기입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먹거리 긴급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더욱 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취약계층의 최소한의 먹거리 제공을 유지하던 공적 먹거리 공급체계가 무력화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감염병 위기는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 가장 먼저 큰 타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먹거리 사회안전망이 멈추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먹거리 기본권을 걱정해야 할 상황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이른바 ‘사회적 배제’의 현 주소입니다.
먹거리 돌봄, 지역의 소중한 사례
많은 지역에서 먹거리 돌봄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대전시 대덕구는 한밭렛츠와 지역사회 먹거리 돌봄 협력 네트워크를 맺고,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로컬푸드(한밭가득)를 먹이고 있습니다. 전주시에서는 밥 굶는 아이 없는 도시를 기치로 결식 아이에게 따뜻한 아침밥을 ‘엄마의 밥상’이란 이름으로 매일 전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구로구는 지역에 온종일돌봄센터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의 먹거리 돌봄(급식)까지 역할을 하고 있다.
부천시에서는 마을공동체가 공유부엌을 마련해 학교 밖 아이들과 먹거리 소외계층에 대한 먹거리 나눔을 하고 있습니다. 인천시는 노인돌봄서비스를 통해 결식노인을 찾아내고 어르신들 댁까지 식사를 직접 배달하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먹거리 그냥드림’으로 배고픔을 감내하는 이들의 아픔까지 보듬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지 못하는 많은 먹거리 돌봄의 따뜻한 사례가 무척 많습니다. 코로나19 시대를 버텨내고 살아가는 지역의 ‘사회백신’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농식품바우처, 전면 시행과 확대가 필요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19 재난을 겪으며 사회보장과 복지정책의 지원대상이 되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현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실 결식아동급식, 어르신급식, 푸드뱅크 등의 사업은 지방으로 이양되었습니다. 지역에 따라 먹거리 복지정책에서 지원과 수준의 차이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식품바우처 사업은 지방이양된 먹거리 복지의 격차에 대응하여 국가가 나서서 역할을 높이겠다는 방향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농식품바우처 사업은 중위소득 50% 이하의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게 먹거리와 영양을 보장하는 정책입니다. 먹거리 접근성을 강화하고 건강한 지역 먹거리와도 연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시범사업입니다. 조속히 전면 시행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지원대상도 경제적 취약계층과 사회적 취약계층까지 포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생애주기 과정에서 먹거리 접근에 취약하거나 민감한 시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습니다. 질병, 산업재해, 실업과 실직 등 사고로 어려움에 대응하는 사회안전망과 연계 가능성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바우처 형태로 지원하는 방식에 현금과 현물지원도 결합하면 효과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현물지원을 결합하면 지역의 사회적경제 조직 역할방안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범과 미담을 넘어 사회의 책임으로
얼마 전 외신으로 보도된 내용입니다. 미국의 한 무인 식품매장에서 아이를 데리고 몰래 식품을 훔치다 걸린 엄마가 있었습니다. 직원 신고로 경찰관이 출동했습니다. 그러나 아이 엄마의 딱한 사정을 보고 경찰관은 식품쿠폰을 사서 건네주었습니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엄마의 ‘존엄’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1/5의 가정에서 먹거리 빈곤을 느낀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다시, 코로나 장발장도 보듬자는 경기도의 ‘먹거리 그냥드림’에 주목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범죄를 정당화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파서 부정한 일을 저지르는 일은 막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국가와 사회가 할 일입니다.
먹거리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입니다. 이웃이 배고픔과 영양결핍으로 인간으로 존중되지 못하는 현실을 두고, 우리는 한발 짝도 미래로 나갈 수 없습니다. 지역의 먹거리 돌봄 모범사례를 따뜻한 미담으로 듣기에는 우리 현실이 절박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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