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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회원기고

[사람과도시] 서울민국이 아닌 대한민국의 균형발전이 이루어지는 날을 바라며

글 | 황지욱 회원




  전북현대 축구팀이 K리그 4연패의 빛나는 업적을 달성했다. 전북 축구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만이라도 이런 기쁨을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은 마음에 글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기쁨을 주고 나누는 것은 이리도 쉽다. 그런데 세상은 이런 즐거움 보다 화나고 짜증나게 만드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오늘 글도 그런 안타까움을 나눌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COVID-19로 말미암아 의료인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막중하게 느껴지던 지난 초가을, 전공의 집단파업과 국가고시 거부는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을 사건이 되었다. 권력이든 부든 아니면 지식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들의 사익을 앞세우는 행동은 좋게 비춰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의료전문가들은 정부정책이 너무나 일방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집단행동을 했다고 주장하겠지만 ‘우리는 상위 1%의 남다른 존재야’라는 식의 말투와 행동은 결과적으로 본질을 가려버렸고, 가진 자의 특권의식이 훨씬 커다란 사회적 병폐로 부각되었다. 게다가 환자를 볼모로 삼는 행동은 그 의도가 어떻든 간에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나는 이런 사회모순적 현상 앞에서 단순히 의료인들의 행동을 비난하는 데만 몰입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되어서 가급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떻게 정책을 바로잡아야 하나 고민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현상이든 병폐든 발생원인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한다면 또 다시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 우왕좌왕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매번 언론이 휘두르는 칼날에 애꿎은 국민들만 이리 갈리고 저리 갈릴 것도 뻔하기 때문이다. 


  도시계획가의 눈으로 짚어볼 때 지금 우리사회에서 발생한 의료파업은 의료인 수의 많고 적음을 넘어 사회구조적 모순, 다른 말로 국토의 기형적 불균형성이 핵심원인 중 하나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한다. 즉, 어느 곳은 사람이 많이 살아서 그곳에서는 누가 무엇을 하든 엄청난 돈벌이가 될 수 있지만 어느 곳은 사람이 하도 없어서 그곳에서는 무엇을 하든 망하기 십상인 구조라는 말이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많은 의료인력을 양성하고 공급하더라도 그들이 텅 빈 지역으로 가서 병원을 차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병원개업이란 환자를 돌보는 것과 더불어 일종의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도 인간인지라 경제적 이익을 무시하고 병원을 운영할 수는 없다. 성자나 성인이 아닌 이상 자기가 값비싼 인생의 비용을 들여 성취한 전문지식을 단순히 희생, 헌신, 봉사 뭐 이런 것과 맞바꾸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료활동도 환자가 있어야만 가능하고, 이러려면 넉넉히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 되어야 의사도 안정적으로 의료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의료인력을 증원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구미 선진국뿐만 아니라 OECD 평균(3.3명)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국민 1,000인당 의료인력 수(2.2명)는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보완이 꼭 필요하다. 다만 여기서 ‘국민 1,000인당’이라고 할 때 정말로 1,000인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의료인력 수가 되어야 하므로 1,000인이 안 되는 인구과소지역 또는 인구소멸지역이 즐비하다면 그런 곳의 의료인력은 병원운영에 난항을 겪기 십상이다. 말하자면 값비싼 의료기자재를 드려놓았다가 적자로 ‘둥지내몰림’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지방의 환자들조차 고속철도를 타고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치료받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이 시급함으로 신속하게 추가적인 의료인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롭게 양성된 의료인력이 대도시로 집중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지금과 같은 인구구조 상황에서는 새롭게 양성된 의료인력도 지방소멸의 시대에 다시금 대도시로 몰릴 수밖에 없음이 불 보듯 뻔하다. 악순환 고리를 끊으려면 제대로 된 제도적 장치, 즉 내적으로는 응급의료인력이 평생 응급의료행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그리고 근본적으로 국토의 불균형이 해소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와 실천적 실행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병행되어 수립되고 발표되는 것이 더 급하고 중요하다.


  국토의 불균형문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한 우리사회에는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집값은 사람이 몰려 사는 곳을 중심으로 극단적으로 더 오를 것이고, 지방대학은 망할 것이며, 인서울(in Seoul)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2등 인생, 평생 촌놈’, 뭐 이런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도권 3기 신도시 정책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어떤 분은 현 정권을 까면 그건 다른 진영논리에 휩쓸리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나를 쏘아 붙였다. 그러나 옳지 않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더 큰 과오가 아닐까? 올해 7월 20일 경에 페이스북에 올린 나의 독설과 같은 글이다.



  “서울에 또 신도시를 만든단다, 어느 머저리들이. 이제 우리나라에는 서울민국만 있을 거다. 도대체 국토 공간구조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가져가려고는 하지 않고 악순환의 굴레에서 아예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들어가 버리려고 한다. 내가 판단한 근거로 수도권의 집값 상승은 좋은 직장, 좋은 대학, 좋은 병원 등 좋은 것은 다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지방에 좋은 곳이 별로 없으니 당연히 사람들이 다 수도권으로 몰리지 않겠는가? 그러니 끊임없이 주택수요가 생성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경기가 좋지 않아서 신입사원을 대규모로 뽑지도 않고, 인구도 증가하지 않아 주택의 신규수요가 거의 없는데도 주택가격이 증가한다면 이는 주택수요자 증가에 따른 주택가격상승이 아니라 시중 현금자산가들의 유동자금이 다른 어떤 곳 보다 안전자산이라고 보이는 수도권의 부동산에 몰리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나는 지금 후자에 강하게 방점을 찍고 싶다. 그런데 수요자가 많지도 않아 보이는 바로 이 수도권에 또 도시를 건설하고 주택을 공급하겠단다. 이 어처구니없는 짓을 대책이요, 처방이라고 내놓는다. 이러면 집값은 떨어지기보다 또 아주 최고의 자금을 모아들이는 투자처가 생겨나는 것이다.”





  수도권의 집값을 안정화시키려면 첫째, 수도권의 좋은 일자리를 지방으로 이전시키던지 지방에 더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해야 한다. 즉 사람은 직장 옆에 살 집을 마련하지, 집 근처로 직장을 가져 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걸 직주근접이라고 하지 않나? 정책결정을 한다는 공무원들은 제발 이런 기초상식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둘째, 시중 유동자산의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주어야 한다. 즉 돈이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아가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투자처가 집이 되고 있으면 그건 경제정책의 실패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일자리가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정부는 다양한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해 민간이 투자하기에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주고, 그래서 그에 발맞춰 인구분산이 이뤄지도록 정책을 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지방에도 인구가 넘쳐나면 그곳에서 병원을 개업하지 말라고 해도 개업이 넘칠 것이고, 지방대학에도 우수한 신입생들이 찾아들 것이며 이러한 형태로 선순환의 다양한 투자가 넘쳐날 것이다.


  얼마 전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할 공간이 없냐며 대통령마저 서울 주변의 개발가용지를 알아보라고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가 진짜 팩트(fact), 즉 정확한 사실을 전달한 것인지는 모겠지만 돌아버리겠다는 생각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랐다. 조금이라도 지방을 다녀보면 널린 것이 개발가용지이기 때문이다. 왜곡되기 그지없는 인구불균형의 시대에 인구분포의 균등화를 이뤄내도록 지방에 있는 개발가용지가 중앙정부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게 신기하다. 아니 어쩌면 다행인가? 이렇게 좋은 땅들이 함부로 파헤쳐지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머나먼, 아주 머나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한 유산이요 자산으로 남겨져 있으니. 차라리 이렇게 글을 맺는 편이 속 편한 것 같다.